[오늘을 생각한다] 노블레스 오블리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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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을 생각한다] 노블레스 오블리제
  • 충청리뷰
  • 승인 2003.04.03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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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대통령과 평검사들간의 토론회 이후 유행어가 생겨났다. ‘아버지인 대통령에게 대든 건방진 자식’ 또는 ‘안하무인이며 논리도 없이 자신의 주장을 되풀이하는 사람’이란 의미를 지닌 ‘검사스럽다’이다. 이 신조어가 네티즌을 중심으로 퍼져나가면서 ‘검사 3년이면 부모 형제도 못 알아본다’는 속담(?)으로까지 확대됐다.
또 몇년 전엔 모 TV 드라마가 인기를 얻으면서 ‘장진구만도 못한 놈’이라는 말이 유행했었다. 이 드라마에서 ‘장진구’는 교수라는 직업을 내세워 지극히 권위적이며 속물 근성을 유감 없이 발휘한 남자 주인공이었다. 따라서 ‘장진구만도 못하다’는 말은 지칭대상의 사람이 얼마나 권위적이고 속물인가를 간단히 대변하는 유행어가 됐다.
이런 유행어는 한 시대를 상징하는 언어로 단순히 웃어 버릴 수만은 없다. ‘검사스럽다’ ‘장진구만도 못하다’라는 유행어가 꼬집고 있는 사람은 우회적으로 표현된 ‘검사스러운 사람’이거나 ‘장진구만도 못한 사람’이 아니라 사실은 검사와 교수가 아닌가 싶다. 얼마 전 모 방송국의 토론에서 한 시민이 “검사 집단은 산산이 부서져야 한다”고 일갈한 그 지독한 비난과 ‘돈주고 학위 논문 쓰고, 돈주고 교수가 되는 요즈음 교수의 현실’을 생각해 볼 때 지나치게 논리를 비약시킨 것만은 아닌 것 같다.
검사나 교수라는 직업은 어느 사회를 보더라도 사회 지도층에 속한다. 지도층이기에 다수의 눈총을 받을 수밖에 없고 또 특권이 주어졌기에 그들에 대한 기대치도 높을 것이다. 그래서 지도층은 아마 인정받고 존경받기가 어려운 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지도층이 언제나 비난의 대상이 되는 것은 아니며 지도층이기에 사회에 더 많이 공헌할 수 있으며 또 사회로부터 인정받고 존경받을 수 있다.
롤렉스 시계는 많은 경쟁업체가 수많은 새로운 디자인을 선보이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오히려 본래의 디자인을 고수하면서 세계적인 명품으로 손꼽히고 있는 대표적인 상표다. 이 시계가 세계적으로 유명한 것은 멋진 디자인이나 성능 또는 높은 가격 때문만은 아니다. 사실 롤렉스 시계의 디자인보다 근사한 시계는 수없이 많으며 시계가 패션 제품으로 자리잡으면서부터는 한정된 디자인만 고수한다는 것 자체가 기업의 입장에서는 위험할 수도 있다. 또 성능에 있어서도 롤렉스 시계는 차별적 우위에 있지 않다. 오늘날 2, 3만원대의 시계도 얼마나 정확한가.
이런 점에서 롤렉스 시계는 그렇다 할 디자인이나 성능이 없으면서도 가격이 수백만원대인 점을 감안하면 가치면에서는 경쟁력이 없는 시계일 지 모른다. 그러나 이 시계가 여전히 사랑을 받고 영원한 명품으로 남아 있는 것은 이 시계가 소비자에게 주는 심리적 가치이다.
롤렉스 시계는 유럽 상류층의 가치관을 나타내 주는 ‘노블레스 오블리제’ 즉 귀족의 특권에 맞는 사회적 책임을 다한다는 심리적 혜택을 소비자에게 주고 있다. 다시 말해 롤렉스 시계의 소비자는 단순히 돈이 많다는 것을 자랑하며 거들먹거리는 졸부가 아니며 귀족으로서의 특권을 내세워 타인을 주눅들게 하는 ‘검사스럽지도 또 장진구만도 못한 사람’이 아니라 자신의 부와 특권에 걸맞게 사회적 책임을 성실히 수행하는 진정한 상류층임을 상징적으로 나타내 준다.
이와 같은 유럽 상류층의 참모습에서 상류층-사회적 책임-롤렉스 시계-존경의 관계가 성립됨을 알 수 있다. 이를 우리 지도층이 지향해 나가야 할 참모습에 대입해 보면 지도층-사회적 책임-직업-존경으로 나타낼 수 있다. 이런 관계가 성립될 때 한 사회의 지도층은 진정 자부심을 가질 수 있을 것이며 사회로부터 특권을 인정받고 더 나아가 존경을 받을 수 있을 것이다. 사회 지도층임을 자부하는 검사나 교수가 한낱 시계에 불과한 롤렉스 시계의 가치만도 못한 우리의 현실이 부끄럽고 안타까울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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