날카로운 눈과 완력, 범인과의 숨막히는 숨바꼭질, 달아나는 범인을 쫓아 결투 끝에 가쁜 숨을 몰아 쉬며 범인의 손목에 수갑을 채우는 모습. 한 번쯤은 동경해 봤을 경찰의 모습이다.
사회의 악에 맞서 정의를 실현한다는 데에 경찰의 매력이 있는 것이다.
물론 부조리를 일삼고 서민을 보호하기는커녕 군림하려 드는 일부 경찰관이 있는 것도 사실이지만 밤을 낮으로 사는 대다수의 외근 형사들에게 있어서 긍지와 사명감은 경찰관으로서 존재의 이유다.경찰서 형사계와 강력계 등 외근 부서는 그래서 경찰의 꽃이라고 불리어 왔다. 치안의 최일선에서 범죄와 대치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최근들어 경찰서 형사계는 경찰관들의 기피부서가 됐고 형사계에 근무하는 경찰관 중에도 타 부서나 파출소로 자리를 옮기려는 경우가 부쩍 늘고 있다.이유는 한마디로 힘들다는 것.

며칠씩 밤 새우기에는 이력

12월 10일 오전 일선 경찰서 형사계. 10대 후반으로 보이는 피의자 두 명이 고개를 숙인 채 조사를 받고 있다. 이들로부터 조서를 받는 K경장의 눈은 시뻘겋게 충혈돼 있었고 언제 세수를 했는지 얼굴에는 기름기가 잔뜩 배어 있었다. 목소리도 갈라져 범행을 추궁하는 목소리에는 힘이라고는 찾아 볼 수 없을 정도다.
사무실 한 구석 소파에는 한 경찰관이 점퍼를 뒤집어 쓴 채 잠에 빠져 있었다. 그의 책상에는 결재가 되지 않은 구속영장과 피의자의 손도장이 찍혀 있는 조서가 아무렇게나 놓여져 있었다. 얼마전까지 피의자 신문조서 작성을 마치고 곯아 떨어진 듯 하다.“그제 밤부터 한숨을 자지 못했다. 이 놈(피의자)들이 나타난다는 정보를 입수해 이틀 밤을 잠복해 오늘 새벽 검거해 데려온 것이다”
PC방이나 오락실을 돌며 상습적으로 손님들의 돈을 훔쳐 온 피의자들이라고 귀찮은 듯 말하는 K경장의 말에는 짜증이 잔뜩 묻어 있었다. 자신이 조사를 하고 있는 피의자는 범행을 극구 부인해 언제 조사가 끝날지 모르겠다며 애꿎은 담배만 빨아댔다.
일선 경찰서 형사계에 근무하는 K경장의 일과는 빽빽하게 짜여져 있다. 오전 8시면 사무실에 출근한다. 간단한 회의를 마치고 나면 담당하고 있는 구역에 나가 밤새 별 일이 없었나 확인한다. 범죄 발생이 자주 일어나는 번화가는 언제나 눈을 뗄 수 없는 요주의 지역이다.
K 경장의 담당 구역에서 발생, 파출소에 접수된 사건은 모두 K경장의 차지다. 사건 발생이 빠지는 날이 없을 정도다. 많을 경우 6∼7개 사건이 밤 새 일어나기도 해 이럴 때면 자판기 커피 냄새를 맡을 여유도 없어진다.
경찰에게는 정보가 생명이다. 따라서 폭넓은 대인관계와 우범자들의 정보 파악은 외근 형사로서 한시도 소홀히 할 수 없는 것이다. 여기에 일주일에 한두 번 돌아오는 당직, 기동순찰 등은 몸을 녹초로 만들기 일쑤다.하지만 이 정도면 평탄한 일과라는 게 K경장의 설명이다. “파출소에서 올라오는 사건 처리와 당직이나 순찰 등은 아주 기본적인 업무다. 외근 형사의 진짜 업무는 범인을 쫓는 그야말로 피말리는 줄다리기다. 출퇴근이라는게 의미가 없어지는 건 기본이고 일주일이고 이주일이고 식구들 얼굴 한 번 보지 못하는 것도 다반사다”

일 잘하는 형사는 빚더미?

사실 외근 형사들의 이러한 고충은 어제 오늘의 일이 아니다. 거론하기 조차 새삼스러울 정도로 당연시 돼 왔다. 그러나 경찰관들이 외근형사 부서 근무를 기피하는 것은 이런 고충 때문만은 아니다.경찰 경력 20년이 넘었다는 한 고참 형사의 말은 이런 사정을 잘 나타내 주고 있다.“90년대 중반만 하더라도 줄을 대서라도 형사계 근무를 지원했다. 강력사건을 해결 했을 경우 특진의 기회를 잡을 수도 있었고 경찰 하면 외근 형사를 해야 한다는 기본적인 생각이 깔려 있었다. 그런데 지금은 아랫 직원이 언제 부서를 옮겨 달라고 할지 눈치를 봐야 할 지경이다. 형사계 근무를 원하는 직원이 없다. 인사때만 되면 일 잘하는 직원들 붙잡느라고 동분서주한다. 지난번 인사에 파출소로 나간 직원이 있었는데 1년 후에 다시 형사계로 오겠다는 약속을 받고 내보냈다”
경찰관들이 외근부서를 기피하는 것은 일의 고단함과 함께 자기 출혈을 감수하지 않으면 안되는 근무 조건 때문이다.수시로 반복되는 잠복에 정보를 하나라도 더 얻기 위해서는 한마디로 내 돈 써 가며 일하지 않으면 안된다는 것이다.
“호랑이를 잡으려면 호랑이 굴로 들어가라는 옛말이 있지 않는가. 범인 주변인물들을 접촉하고 그 부류 사람들로부터 고급정보를 얻기 위해서는 밤을 낮으로 살아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호주머니를 털어야 하는게 현실이다” K경장의 말이다.
그러나 이들에게 지급되는 수사비는 한달에 20만원 안팍. 그렇다고 급여가 많은 것도 아니다. 여느 공무원과 비슷한 수준이다. 그러니 이른바 정보원들을 만나서 밥 몇 끼 먹기에도 부족하다. 잠복이나 출장 등에는 일부 수사비가 따로 지급되기는 하지만 이 또한 최소의 경비일 뿐이다. 자가용을 주로 이용하는 업무지만 기름값을 감당하기도 힘들다는 것이다.“사실 예전에는 뒷돈이라는게 가끔 있었다. 그러나 경찰 개혁 작업이후 그런 돈은 모두 사라지고 있다. 일 열심히 하는 형사들 치고 빚을 안진 사람이 없을 정도다. 그러니 누가 외근 형사를 하려고 하겠는가” 한 고참 형사의 말이다.일 욕심 많기로 소문난 모 형사의 경우는 이런 사정을 그대로 나타내 주고 있다.
500만원 한도의 마이너스통장이 두 개, 신용으로 은행에서 빌린 돈이 2000만원, 신용카드 5개…. 물론 아파트 융자금은 제외한 것이다. 하나는 잔고가 바닥이고 하나는 고작 70만원이 남은 마이너스 통장의 존재는 아내도 모르고 있다. 이 형사는 아내 몰래 1000만원이 넘는 빚을 지고 있는 셈이다.“상여금을 받으면 신용카드대금 결재하고 아내 모르게 다시 대출 받아 집에 갖다 주는 게 되풀이 되고 있다. 얼마전에는 카드가 막혀 자칫 신용불량자가 될 뻔 했다” 인터뷰를 극구 거절하다 털어 놓는 이 형사의 말이다.
30대 후반의 또다른 외근 형사의 속사정은 더욱 안타깝다. 중학교와 초등학교에 다니는 아이들의 교육비 조차 버거워 형사의 아내는 자동차 핸들 커버를 꿰매는 부업을 하고 있다는 것이다.
핸들커버 하나를 꿰매면 1500원. 잘 들어가지도 않는 바늘을 손에 물집이 잡히며 꿰매야 하루 7∼8개. 1만원 남짓한 금액이다.하지만 이들은 누가 뭐래도 당당한 경찰관임을 강조한다. 이러한 자신들의 처지를 비관하지도 않는다.
“형사는 천직으로 받아들이지 않으면 결코 견디기 힘든 직업이다. 경찰관들 나쁘다. 심지어 도둑놈들이다라는 말을 들어도 꿎꿎이 일을 한다. 빵점 아빠와 남편으로 가족에게는 미안하지만 이게 내 일이며 내가 선택한 일 아닌가”


저작권자 © 충북인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