농촌마을인 청원군 미원면 대신리에 노인·환자·장애인 복지시설이 몰리자 주민들이 반발하고 나섰다. 도심에서 밀려난 복지시설이 과연 설 땅은 어디인가
도시를 벗어나 한적한 농촌지역에 입지한 노인·환자·장애인의 요양·자활시설이 현지 주민들의 민원대상으로 떠오르고 있다. 현대사회에 필연적인 복지시설이지만 농촌 주민들의 기피심리와 상대적 박탈감이 합쳐져 이를 받아들이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그동안 대표적인 혐오시설로 꼽혔던 쓰레기매립장, 화장장, 장례식장 등에 더해 소외된 이들의 복지시설까지 무차별적으로 ‘님비현상’의 대상이 되고 있다.
지난 10일 청원군 미원면 대신리 주민 150여명은 마을 인근에 위치한 말기암 환자 요양시설과 신축예정인 노인휴양시설에 반대하는 집단시위를 벌였다. 12월의 선뜻한 바람에도 불구하고 마을 아주머니들까지 나와 너나없이 국밥을 말아주며 한목소리를 내고 있었다. 마이크를 잡은 60대 후반의 마을 주민은 얼굴이 상기된 채 목청을 높였다. “여기가 사람 죽어나가는 동네여? 왜, 말기암 환자니 노인병원같은 게 이리루 다 모이는거여. 우리 동네 땅값 떨어지고 사람 살 데 못된다구 소문나면 누가 책임지구 보상할껴” 앞서 인사한 도의원보다 더 뜨거운(?) 박수갈채가 터져나왔다.
같은 시간 시위현장과 300여m 떨어진 국도변에 위치한 조계종 소속 정토사(주지 능행스님)의 분위기는 뒤숭숭했다. 뇌졸중, 말기암 환자 등 불치의 병마와 싸우는 환자들을 대상으로 호스피스요양센터를 운영하고 있는 정토사는 지난 2년간 계속된 주민들과의 줄다리기에 지쳐있었다. “나름대로 주민들을 설득하기 위해 최선을 다했다. 주민들이 걱정하는 혐오시설은 유치하지 않겠다고 각서까지 써주었다. 이젠 업보라고 여기며 입을 다물기로 했다”고 능행스님은 말했다. 양측의 주장대로 라면 모두가 피해자인 셈이다.
정토사는 지난해 10월 정식 개원해 만 1년을 맞고 있다. 토지를 매입하고 시설을 준공하기까지 1년이 걸렸다. 산자락의 1000여평 부지에 대웅전과 환자 요양실, 호스피스 교육실 등 3∼4개 동의 시설물을 갖췄다. 대신리 주민들은 ‘당초 정토사가 순수한 사찰로 종교활동만 하는 줄로 알았다’고 말한다. 하지만 환자 요양실을 갖추고 개원하자 반발하기 시작했다. 연차적으로 납골당, 장례식장이 들어설 것이라는 소문까지 나돌아 주민들을 더욱 긴장하게 했다.
“절대 그런 일은 없을 거라고 얘길해도 믿으려 하지 않았다. 그래서 납골당, 장례식장을 설치하지 않고 환자도 결핵, 알콜중독과 같은 일반인이 혐오하는 질환자들은 받지 않겠다는 내용을 각서로 작성해 전달했다. 이후 별다른 마찰이 없었는데, 대규모 민간 노인복지시설이 공사를 재개하면서 주민들의 불안감이 더 커진 것 같다” 정토사 관계자의 설명이다.
문제의 대규모 노인복지시설은 초정리에서 이티봉을 넘자마자 신대리 초입에 부지를 확보했다. 지난 99년 서울 목양교회에서 6900평의 부지를 매입해 청원군으로부터 3200평에 대한 건축허가를 받았다. 하지만 사업진척이 없다가 1년 뒤 착공연기 신청을 냈고 올 4월에야 산림형질변경을 받아 부지조성 작업에 착수했다. 정토사 개원이후 3000평이 넘는 대규모 노인복지시설까지 구체적으로 추진되자 마을 주민들의 상대적 박탈감이 고개를 들기 시작한 것. 99년도엔 장애인들의 재활작업장인 ‘아름마을’이 사회복지법인으로 등록해 대신리에 자리를 잡고 있었다.
“손바닥만한 시골 동네에 말기암 환자시설, 장애인작업장에 노인복지시설까지 들어선다는 것인데 이건 너무한 것 아닌가? 겉으론 사찰이니 복지시설이니 하지만 결국 민간인이 하는 수익사업이 아니고 무엇인가. 더구나 여유부지가 많기 때문에 얼마든지 시설확충을 할 수 있다. 정토사가 장례식은 안 한다고 해놓고 그동안 수차례나 약속을 어겨 주민들이 나서게 된 것”이다. 대신리 혐오시설 유치반대 추진위원회 민준기대표의 항변이다.
특히 정토사의 환자요양에 대해 깊은 불신감을 드러냈다. 불치병의 환자들을 상대로 불법 의료행위를 하고 발생한 적출물을 제대로 처리하지 않고 있다고 주장했다. 또한 정토사가 추가로 인근 부지를 매입한 것은 시설확충을 염두에 둔 것이기 때문에 더 이상 방관할 수 없다는 주장이다. 실제로 정토사는 올봄 인근 밭 1000평을 사들인 것으로 나타났다. 하지만 매입목적은 주민들의 주장과는 전혀 다른 것이었다. 능행스님은 “요양환자들에게 청정한 야채등을 제공하기 위해 자체적인 텃밭이 필요했다. 호스피스요양센터는 전인치료를 하기 때문에 환자 20명 이하가 적합하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연구결과다. 우리도 14인의 병실만을 갖추고 있고 앞으로 더 늘릴 생각도 없다. 병원과 가족들로부터 외면당한 말기암 환자를 영적치유해 평온하게 여생을 마칠 수 있도록 하자는 포교적 차원의 사업이다. 현재 복지법인 등록절차를 밟고 있으며 그렇게 되면 특정인의 소유재산이 아닌 공익적 시설로 기능하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불법 의료행위 의혹에 대해서도 청원군 보건소가 현지조사한 결과 문제가 없는 것으로 나타났다. 보건소 관계자는 “현재 뇌졸중·말기암 환자 8명이 요양하고 있으며 모두 청주 한국병원, 초정 노인병원와 연계돼 처방을 받고 있는 것으로 확인됐다. 정토사 호스피스요양센터에 고용된 간호사·간호조무사 3명이 의사 처방전에 따라 투약을 하는 것이기 때문에 의료법상 아무런 문제가 없다. 처방과정에 주사기등 적출물은 해당 병원을 통해 처리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고 설명했다.
/ 권혁상 기자





정토마을, 어떻게 만들어 졌나
능행스님, 간병인·호스피스 교육등 선교의료 역점

정토란 불교용어로 ‘번뇌의 속박을 벗어난 아주 깨끗한 세상’을 이르는 말이다. 정토마을은 정토사의 호스피스요양센터와 문의면에 위치한 지장정사, 부산의료원 행려병자 보호단체를 통털어 지칭한 것이다. 능행스님은 병원포교의 목적으로 지난 94년부터 지장정사에 충북불교자원봉사교육센터를 설립해 호스피스 교육과 직업 간병인교육을 실시해 왔다. 이미 500명의 간병인들을 배출했고 호스피스교육과정도 14기생을 맞이하게 됐다.
능행스님은 영국 옥스퍼드대에서 6개월간 의료복지 연수를 다녀오기도 했고 꽃동네, 강남성모병원 등 타 종교 시설까지 찾아가 호스피스 교육생들과 현장실습을 하기도 했다. 정토마을은 회원과 환자 가족들이 내는 후원금으로 운영되는 무료 요양시설이다. “말기 환자들은 소문을 쫓아 여기저기서 치료를 받다 희망을 잃고 돈까지 잃은 경우가 대부분이다. 가족들도 더 이상 지탱할 수 없는 처지에 있는 환자들을 우리가 보살펴 주고자 한다. 우리나라가 복지국가라고 자부한다면 정부가 나서서 이런 일을 해야 한다. 하지만 천주교 ‘꽃마을’ 기독교 ‘샘물의 집’등 종교단체에서 말기 환자들의 호스피스센터를 운영하고 있고 불교계에서는 정토마을이 처음으로 시도하게 된 것이다. 후원자를 통한 무료이용의 원칙은 앞으로도 변함이 없을 것”이라고 능행스님은 강조했다.
능행스님은 98년 한국 불교 아미타 호스피스회와 전문 간병인협회를 설립한 데 이어 작년 10월 정토사에 호스피스 전인치료센터의 문을 열면서 한국 불교계의 의료 선교사업에 새로운 이정표를 만든 것으로 평가받고 있다. 결국 오랜 기간 준비해 온 정토의 꿈이 주민들의 불신의 벽에 부딪쳐 뜻하지 않은 시련을 겪고 있는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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