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내 최초로 설립된 사직주공 아파트 재건축 주택조합이 내부 불화와 사업 실적미비로 2년 8개월 만에 청주시로부터 설립인가 취소처분을 받았다.
재건축조합, 풍림 손배소송 답보, 1년간 대의원회도 없어
지난 3일 저녁 8시, 예정된 회의시간을 1시간이나 넘겼지만 재건축조합 사무실에 나타난 대의원들은 전체 35명 가운데 절반에도 못미치는 10여명에 불과했다. 재건축조합의 인가취소라는 절체절명의 상황에서 1년만에 소집된 대의원회는 결국 정족수 미달로 연기되고 말았다. 이런 가운데 재건축 조합장과 여성 감사가 대의원회 소집과정을 둘러싸고 입씨름을 벌이고 있었다. 지난 99년 2월 도내 최초로 결성된 청주 사직주공아파트 재건축주택조합(조합장 한범순)의 현주소를 적나나하게 보여주는 장면이였다.
청주시는 조합설립 2년 8개월이 지나도록 사업추진이 지지부진한 사직주공재건축 조합에 대해 지난달 27일자로 설립인가 취소라는 극약처방을 내렸다. 특히 3단지 조합원 800명이 재건축조합 탈퇴서를 제출하고 조합해체까지 요구하고 나선 것이 시의 결단(?)을 재촉한 요인이 됐다.
3단지 조합원 200여명은 이미 지난 3월 청주시민회관에서 총회를 열고 기존 조합 탈퇴와 3단지 재건축주택조합(조합장 황안모) 구성을 결의하는등 독자노선을 표방했다.
5000억원의 사업비로 4500세대의 아파트단지를 조성하는 도내 최초, 최대 규모의 아파트 재건축사업. 시공업체 선정을 둘러싸고 주도세력간에 암투와 시비가 끊이지 않았던 재건축 조합은 이렇게 공중분해되고 말 것인가. 조합 설립인가 취소과정과 향후 전망에 대해 알아본다.

최초 재건축조합, 최초 취소

지난 79년 건립된 사직주공아파트는 2850세대(13·15·17평) 규모로 90년대초부터 재건축 움직임이 시작됐다. 하지만 도시계획선 도로로 양분된 2·3단지간에 이견이 생겼고 별도 조합구성을 시도했으나 지분분할의 어려움 때문에 무산됐다. 마침내 99년 2월 단지별 2인 공동조합장 체제로 재건축조합이 결성됐고 조합원에 무상지분 4평을 보장하는 조건으로 시공회사를 찾기로 했다. 시공회사 유치작업은 조합 고문변호사였던 이태화변호사와 박덕민씨, 설계용역을 염두에 둔 꼬레아건축 오수복회장이 주도했다.하지만 IMF여파로 대기업 주택건설업체는 눈길을 주지않았고 이변호사·박씨는 주택공사측과 협의를 진행시켰다. 3단지 황안모 공동조합장도 주택공사의 시공사 참여를 옹호하고 나섰다. 단, 주택공사는 4평 지분보장을 완화시키고 설계부분을 자체설계나 공모방식으로 해야한다는 입장이었다. 그러자 설계용역을 받기위해 조합운영 경비까지 지원해 온 꼬레아건축 오회장과 조합집행부는 주공에 반대해 자체적으로 업체유치에 나섰다.
양측의 내분이 악화일로 치닫는 상황에서 99년 12월 이변호사가 귀가 길에 아파트 주차장에서 괴한들에게 피습당하는 사건이 발생하기도 했다.
청부폭력 의혹이 제기된 가운데 오회장은 조합운영비 지출과 관련 이변호사와 박씨를 고소하기도 했다. 또한 재건축조합은 이변호사를 고문직에서 해촉시키고 3단지 황안모 공동조합장까지 제명했다. 이때부터 재건축조합의 정통성은 무너졌고 파국은 예고된 것이었다.
한바탕 꿈으로 끝난 풍림

2000년 2월 꼬레아건축은 서울 풍림산업을 시공회사로 유치해 조합총회에서 인준을 받았으나 ‘호랑이 새끼’를 품안에 들인 결과가 되버렸다.
풍림은 꼬레아건축과 조합이 체결한 설계계약 단가(평당 3만9000원)이 너무 높다며 꼬레아 ‘밀어내기’의 수순을 밟았다.
실제로 꼬레아의 설계단가는 시중 단가보다 2배이상 높은 것으로 나타났다. 하지만 풍림이 설계가 몇십억원을 아끼기위해 꼬레아을 압박했다고 보기는 힘들다는 것이 주변의 시각이다.
조합관계자 Q씨는 “5000억 공사를 하는 회사가 설계비 몇십억 아끼려고 중매쟁이인 꼬레아에게 반기를 들었겠는가? 풍림은 당시 은행이 요구한 재정 건전도를 맞추기 위해 계약실적이 필요했고, 사직주공을 이용했다고 생각된다. 증권가에 공시해 재미를 봤고, 다른 한가지는 풍림의 재건축 경험상 꼬레아같은 중매쟁이 없이 조합과 직접 통해야한 사업이 수월하다는 점 때문에 밀어내기를 시도한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풍림이 설계계약을 이유로 사업추진을 중단하자 조합측은 청주지법에 10억원의 손해배상 청구소송을 제기했다. 또한 시공회사 유치실패의 책임을 물어 꼬레아건축도 지난해 11월 시행사 계약을 해지시켰다. 결국 이때 열린 대의원회의가 재건축조합 이름의 마지막 대의원회의가 된 셈이었다.
청주지법은 양측의 맞고소 소송에 대해 지난 9월 강제조정을 통해 ‘양측이 주장하는 손해의 내용이 명확치않다’며 풍림이 조합운영비로 계좌입금시킨 3000만원을 되돌려주도록 결정했다. 하지만 재건축조합은 강제조정에 이의제기를 한 상태로 1심 재판이 진행중이다.

휴면조합 정리, 새 출발 기대

한편 조합집행부는 청주시의 조합설립 인가취소 결정 이전인 지난 9월부터 2차례 사전통보를 받았지만 현안문제에 대한 대의원회조차 열지않아 반발을 사고 있다.
대의원 W씨는 “작년 11월에 마지막 회의를 하고나서 1년동안 아무런 연락도 없었다. 인가취소를 막기위해 조합장과 꼬레아건축 오회장이 청주시장도 만났다고 하는데 그렇다면 의결기구인 대의원회는 왜 필요한가? 3단지가 별도 조합을 설립한다고 총회할 때도 아무런 대처를 못했고 조합 인가취소도 얘기 한마디 없다가 취소되고 나니까, 그것도 감사가 나서서 회의소집을 하니 이런 일이 있을 수 있는가? 현 집행부는 도저히 조합원들의 신뢰를 회복할 수 없다. 용단을 내려야 한다”고 지적했다.
청주시의 최종결정에 앞서 한위원장과 오회장은 별도로 나기정시장을 만나는등 인가취소를 막기위해 총력을 기울였다. 하지만 시는 ‘3단지 조합원 800명이 탈퇴를 요청했기 때문에 조합의 내부 수습책과 향후 가시적인 사업계획이 제시되지 않으면 인가취소가 불가피하다’는 입장이었다.
조합 집행부는 군인공제회의 의향서 형식의 협조 회신문을 제시하며 마지막 카드를 던졌지만 청주시의 판단을 되돌릴만한 신뢰감을 주기에는 미흡했다.
이에대해 청주시 관계자는 “사직주공 재건축사업이 3년이 지나도록 아무런 성과도 없이, 잡음만 발생하자 내년 지방선거를 앞둔 민선시장이 부담을 느꼈을 것이다. 언론에서도 ‘청주시가 한 일이 무엇이냐, 직접 나서야 한다’며 시의 역할을 촉구하고 있다. 하지만 두동강 난 조합을 봉합한다는 것은 불가능한 일이고, 결국 백지상태에서 서로 해결점을 찾도록 하는 것이 바람직하다는 판단을 한 것 아니겠는가? 사실상의 휴면조합을 정리하면서 여러가지 가능성의 길을 열어놓은 것”이라고 설명했다.
기존 조합이 해체되면 향후 사업추진을 위해서는 새로운 조합 집행부 구성이 시급한 형편이다.
지난 3일 불발로 끝난 대의원회에서 일부 대의원들이 P개발의 참여의사를 공개하며 조합 재구성 필요성을 제기하고 나섰다. 2·3단지가 통합 집행부를 재구성하고 P개발과 협상에 임하자는 주장이다. 국내 사업실적이 10순위내에 드는 P개발이 구체적인 제안서를 제출한다면 조합원들간에 새로운 구심력이 생길 수 있다는 분석이다. 현재 상태에서 사업 재추진을 위해서는 3단지와의 대통합이 전제조건이라 할 수 있다. 당초대로 공동조합장제를 도입하고 투명하고 공개적인 업체선정 방식을 동원해야 할 것이다. 청주시의 주택건설 경기를 감안한다면 조합이 내세운 무상지분 4평의 전제조건은 무리라는 지적이다. 따라서 참여업체들로부터 조건없이 제안서를 받아 외부 전문가도 참여하는 심사위원회에서 복수의 대상업체를 1차 선정하고 조합원 투표로 최종 시공업체를 선택하는 방식이 바람직하다는 지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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