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어 봐야 저승을 안다” 한용택군수의 도전 과연 어디까지…

   
보고조차 안 하고 과장 독단으로 인사
대설주의보에 주무계장은 전화도 안돼
6시 땡하면 술먹으러 직행하는 공무원


지역 언론운동의 메카 옥천이 ‘개혁’을 화두로 또 한번 꿈틀거리고 있다. 이번엔 행정쪽이고, 그 발원지는 바로 옥천군청이다. 지난 8일 옥천군 군정업무협의회. 통상 이런 성격의 회의는 군수가 간부들로부터 의례적인 업무보고를 받고 근엄하게 훈시 몇마다 하는 것으로 끝난다.

그러나 이날 참석한 옥천군청 간부들은 한겨울에 인근 대청호의 얼음장이 느닷없이 깨지는 듯한 긴장과 전율을 회의 내내 느껴야만 했다. 한용택옥천군수의 작심한 발언 때문이다. 한군수는 이 자리에서 간부들을 일일이 거명하며 머리카락이 솟구치는 면담식 회의를 진행했다. 예를 들어 이렇다.

“000 과장님, 산하단체 인사를 하셨는데 저한테 보고도 안 하면 제가 어떻게 압니까. 이원면에 갔더니 누가 왔다고 그러는데 저는 까맣게 모르고 있었으니....” 담당 과장이 문화의집 지도사를 인사하면서 보고조차 안 한 사례를 질타한 것이다.

“000 과장님, 대설주의보가 발효됐는데 군수에게 전화 한통 안 하시니.....000 담당님(계장)은 휴일에 위기상황이 발생해 전화를 수십통 했는데도 받지도 않더군요. 그러면 상황대처를 어떻게 합니까.” 이는 관내에 대설주의보가 내렸는데도 담당공무원들이 보고는커녕 군수가 직접하는 전화조차 안 받은 것을 지적한 것임.

“000 계장님 옥천소식지 읽어 보셨습니까. 보셨다면 내용 한번 말해 보시죠. 주무 담당조차 보지 않는 옥천소식지를 군민들이 과연 보겠습니까.” 이 질문에 주무 담당 4~5명이 “못 봤다”고 대답했다.

이 밖에도 한군수는 “군민세금이 얼마고 옥천읍 인구가 얼마인지 아십니까. 주민세는 300억원이고 옥천읍 인구는 옥천군의 54%입니다. 이것도 모르는 주무 담당이 옥천군을 어떻게 이끌어 갑니까. 군청의 계장이라는 사람이 군민 세금도 모르니 정말 철가방이네요.”

“6시 땡하면 술 먹으러 가는 직원이 있습니다. 혼자 야근하면서 사무실 불 다 켜놓고 일하는 공무원도 있습니다. 정부부처에 가면 부이사관도 기안을 합니다. 그런데 6급 계장이 뭐 대단한 자리라고 의자에 딱 앉아서 결재만 하려고 합니까. 공부 좀 하십시요.”

“000 과장님 청산 현대 알루미늄 유치를 하는데 건설과 4개 담당들은 전혀 움직이지 않습니다. 건설과 계장 자리가 얼마나 대단하고 그렇게 센 자리입니까. 군수 과장의 말도 안 들으면 민원인들에게는 어떻겠습니까” 등 등 격정을 토로했다.<이상 옥천신문 참조> 이날 한군수는 ‘복지부동’ ‘이기주의’ ‘철밥통’ 등 공무원들이 가장 싫어하는 어휘들을 거침없이 구사했다.

한용택군수가 지적한 내용들은 대략 보고체계가 제대로 잡히지 않은 조직과 군의 기본현황도 모르는 공무원, 부서와 직렬별로 팽배한 극도의 이기주의, 상하 위계가 없는 공무원들의 철밥통 관념, 특정 부서의 끗발 의식 등이다. 이러한 내용들은 지역의 옥천신문에 해당 공무원의 실명으로 그대로 보도돼 큰 반향을 일으켰다.

이것이 결정적 계기가 돼 숱한 얘기들이 만들어지자 한용택군수는 16일 충청리뷰 기자와 만난 자리에서 “열심히 일하는 우리 직원들을 욕되게 하는 것같아 부담스럽다. 옥천군청 공무원들만의 문제가 아니고 공직사회를 처음 경험한 사람의 솔직한 느낌을 말한 것이다”고 말했다.

이어 한군수는 “나도 취임한지 6개월이 지나면 똑같이 기존의 공무원 사회에 동화될 수 있다. 그래서 6개월 이전에 그동안 느낀 것을 고치고자 한 것 뿐이다. 단언컨대 지금 옥천군청은 많이 달라지고 있다. 물론 내 방식에 거부감을 느끼는 공무원들도 있겠지만 나 스스로 먼저 변하면 반드시 따라 올 것으로 믿는다. 일방적으로 지적하고 질책만 하는 군수가 아니라 변화와 개혁을 직접 선도하겠다”고 말했다. 이를 위해 현재 한군수는 출퇴근시와 공휴일에 직접 운전하기, 군수실 개방, 권위적 회의문화 개선 등 작은 것에서부터 하나하나 고쳐나가고 있다고 밝혔다.

지난 15일자로 단행된 옥천군청 인사는 뜻밖에도 너무 조용하게 지나갔다. 예년에 준한다면 관련 기관, 단체의 홈페이지가 인사문제로 떡칠을 당했어야 정상(?)이다. 이는 인사청탁을 위해 관사로 찾아 오는 직원들은 원천봉쇄한데다 입바른 소리를 잘해 지금까지 인사에서 소외됐던 사람을 되레 핵심 과장으로 앉힌 결과다. 그러잖아도 옥천군은 전임 군수의 인시비리 사건으로 오랫동안 여론에 시달려 왔다.

경쟁과 실적이 철저하게 중시되는 농협 CEO 출신인 한군수가 군수 취임후 가장 뼈저리게 절감한 것은 공무원조직의 경쟁의식 결여와 복지부동이다.

“공무원이라고 해서 사생활을 모두 포기하고 양보하라는 것은 결코 아니다. 그런데 무사안일이 너무 지나치다. 관내에 폭설이 내리고 비상사태가 빚어지면 당연히 알아서 스스로 근무에 임해야 하는 것 아니냐. 군수가 몇 번씩 전화해도 응답이 없다니, 이런 공직자가 어떻게 군민에 봉사하고 민원을 제대로 처리하겠는가.

직원들에게 가장 기본적인 원칙을 강조하는 것이다. 간단하게 해결될 일도 부서간 직렬간 이기주의 때문에 질질 시간만 잡아 먹는다. 내가 민원인이라도 당연히 화가 나고 숨이 막힐 것이다. 그래서 유사 부서를 통폐합하고 팀제로 전환해 업무의 효율을 꾀하라고 했더니 번번이 반발에 부딪친다.

이거 안 되겠다싶어 새해들어 작심하게 됐다. 물론 나에 대한 비판도 많은 것으로 안다. 군수 권위가 떨어진다느니, 임기초에 포퓰리즘을 한다느니 별소리를 다 한다. 분명히 말하지만 직원들을 미워하는게 아니라 나와같이 함께 바꿔보자는 것이다. 공무원 사회도 이젠 변하지 않으면 죽는다”고 말했다.

인사청탁 공무원에 대해 이미 실명공개 및 승진배제 원칙을 밝혀 주목받은 한군수는 향후 군수로서의 운신과 관련, “조직의 권위주의, 권위문화를 들어 내는 대신 일과 업무의 카리스마로 임하겠다”고 밝혀 변화와 개혁의 키를 본인이 직접 잡겠다는 뜻을 분명히 했다. 이러한 의지는 8일 군정업무협의회에서도 그대로 드러났다.

한군수가 “저의 인사권은 옥천 관내 뿐이 아니라 영동군 용화면, 진천군 이월면까지 발령낼 수 있다”고 말해 무사안일하고 일 안하는 공무원들과는 결코 같이 갈 수 없음을 분명히 했다. 옥천군은 이미 지난해 11월 농협 구례교육원을 빌려 산하 공무원들을 대상으로 전문가를 초빙, 공직사회 변화에 대한 정신무장 교육을 가졌다.

이 자리에서 한 군수도 “죽어 봐야 저승을 안다”며 말보다는 행동할 것을 특별히 강조했지만 그동안의 관행이 별로 개선되지 않았다는 게 스스로의 분석이다. 이에 대한 일종의 배신감이 새해 벽두부터 군정업무협의회에서 격정으로 터져 나온 것이다.

본인의 말대로 움직이면 움직일 수록 주변의 시선이 더 무겁게 다가 오고, 때론 심한 고독감마저 밀려 온다는 한군수가 과연 옥천에서 언론분야에 이어 제 2의 행정혁명을 이뤄낼지 두고 볼 일이다. 일각에선 선거법위반 논란으로 한때 선출직의 유지마저 위태로웠던 한 군수가 현재의 변화동력을 가시적 성과로 연결짓지 못할 경우 자칫 조직내의 반발로 큰 어려움에 처할 수 있다고 분석하기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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