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요가원 최아룡 원장
<한겨레>“내가 너를 여인으로 만들어주겠다” 교수의 성폭력 세상에 까발린 뒤 5년. 쉬쉬 외국으로 떠나는 대신 온갖 모멸과 고통 끝 승소한 눈물의 기록을 엮었다. “시나브로 세상 바꾸는 법을 알 듯 해요”

그를 낳기 전, 어머니는 두가지 태몽을 꾸었다. 하나는 인류 첫 달탐사선 아폴로호가 등장하는 꿈이었고, 또 하나는 용이 승천하는 꿈이었다. 어머니는 아들이라 직감하고 아폴로의 ‘아’자와 용꿈의 ‘용’자를 따서 아이의 이름을 ‘아룡’이라 지었다. 천상과 지상을 오가는 긴 터널을 뚫고 세상에 태어난 아이는 딸이었다.
 
최아룡(35·세상속으로 가는 요가원, 서강대 영상대학원 박사과정) 원장. 그는 지난 2001년 ‘서강대 김교수 성폭력 사건 피해자 최김희정(필명)’으로 잘 알려진 이다. 아폴로호가 인류 사상 최초로 달을 방문했듯, 그 역시 신성불가침의 영역처럼 남아있던 교수 성폭력 사건을 세상에 알리면서 자신의 얼굴을 처음으로 드러낸 피해자였다. 교수 성폭력 사건을 형사사건으로 정식 기소한 것도 그가 처음이었다.

“아폴로는 첫 달탐사선이잖아요. 그래서 제가 처음으로 하는 일이 많은 모양이에요.”

그는 지난 4월 교수 성폭력 피해자로선 처음으로 사건 관련 자료집을 펴냈다. 그동안 주위에 알리지 않은 터라 책을 낸 사실이 최근에야 밖으로 알려진 것이다. <“내가 너를 여인으로 만들어주겠다”>(서강대학교 양성평등 성상담실)는 장장 800여쪽 분량. 지난 5년 동안 쓴 글들과 공문서, 서명용지 작성법, 탄원서, 언론 기사, 외국 법률가들의 편지, 재판자료 목록도 함께 실었다. 이 책에 그는 마지막으로 ‘최김희정’이란 이름을 썼다.

“제 인생의 공백이었던 5년 2개월의 시간을 마무리 지은 느낌입니다. ‘피해자 최김희정’에서 벗어나 이제 비로소 ‘인간 최아룡’으로 자기호명하게 된 것 같아요.”

교수 성폭력 사건은 학계의 공공연한 비밀이었다. 가해자는 여전히 ‘학자’로서 살아가지만 피해자는 조용히 학교를 떠나거나 외국으로 나가는 게 일반적이었다. 학계 관행상 공부를 계속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외국으로 떠난 피해자들은 최 원장이 알고 있는 사례만도 5명이나 된다. 반면 그는 끝까지 학교에 남아 공부를 마치려 했다.

“실력 없는 사람이 분란을 만들었다고 손가락질 받긴 싫었어요. 논문자격 시험에서 외국어 과목 만점을 받고 나선 남몰래 울었지요.”

도운 이들도 많았다. 학생들을 주축으로 공동대책위원회가 소집됐고, 2000여명의 학생들이 교수의 처벌을 요구하는 서명을 했다. 가해자는 강제추행 등의 혐의로 형사소송에서 700만원의 벌금으로 유죄판결을, 민사소송에서 2228만원의 배상판결을 받았다. 하지만 해임 결정을 받은 교수는 교육부징계재심의위원회에서 구제돼 학교로 돌아왔다.

아직도 최 원장은 가해 교수가 머무는 건물에 들어가지 못한다. 몸과 마음이 괴로워서다. 하지만 그는 많이 바뀌었다. 몸이 우선 건강해졌고 마음도 더 단단해지고 넓어졌다.

“요가의 힘을 많이 받았죠. 시나브로 세상을 바꾸는 방법을 알게 된 것 같아요. 몸을 웅크려 바람을 빼면 우리 몸이 가장 작아질 수 있을 때 가장 커질 수도 있다는 걸 알게 돼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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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가하며 다시 태어난 최아룡 원장
내 마음이 훌훌 털고 가라더군요

최아룡(세상 속으로 가는 요가원, beautiyoga.com) 원장의 얼굴은 환했다. 눈은 반짝거렸고, 음성도 나직하며 맑았다. 요가원은 넓진 않지만 햇볕이 잘 들어 지친 마음을 풀어놓기에 안성맞춤이었다. 창틀에 놓인 화분 식물은 무성하게 잎을 뻗어가고, 피로에 찌들어 요가원을 찾은 사람들의 얼굴에도 곧 화색이 돌았다. 최 원장이 말했다. “밝아서 참 좋아요.” 한데, 요가원 이름이 독특하다. ‘세상 속으로 가는 요가원’.

“요가는 속세를 떠나 산 속으로 도망치는 게 아니라 세상 속으로 뛰어드는 겁니다. 명상을 하면서 들여다보면 세상의 불합리성을 알게 되고, 마음에 힘이 생겨 침묵하기를 그치게 됩니다. ”

그는 경력 10년의 요가 지도자. 한국요가연합회 기획실장과 요가지도자 자격증 심사위원을 지냈다. 한때는 “분노가 너무 커서 스스로 다스리지 않으면 견딜 수가 없었다”고 했다. 원래 건강이 좋지 않았지만, 피해를 입고 난 뒤엔 몸과 마음이 더 위축됐다. 힘없는 학생 신분으로 근엄한 교수들 앞에서 자신이 겪은 사건 얘기를 했고, 재판 때문에 경찰서 진술을 12번 반복했다. 조금이라도 말이 틀리면 허위진술로 몰릴 수도 있어서 매번 진땀나는 긴장감의 연속이었다. ‘가해자를 음해하기 위한 행동’이라는 음모론과 ‘여자가 처신을 잘못해 사건이 생겼다’는 피해자 책임론 등에도 휘말렸다.

스트레스로 온 몸에 두드러기가 났다. 얼굴이 퉁퉁 부어 얼굴을 알아볼 수조차 없었다. 눈과 입이 비뚤어지고, 오한으로 몇날며칠 동안 사경을 헤매기도 했다. 온 가족이 두드러기와 불면증, 억울감에 시달렸다. 최 원장은 ‘내가 정말 문제일까, 나는 왜 소리치지 못했을까’ 하는 고민을 수도 없이 했다고 한다. 하지만 어느 순간 명상을 하면서 남성 중심 가부장 문화에 짓눌려 살아온 자신과 마주쳤다. 그때 가장 먼저 스스로 용서하고 화해해야 한다는 사실을 알았다고 한다.

“나를 싫어했어요. 어느 순간 나도 사랑받을 수도 있다며 긍정하기 시작했습니다. 이제 다시는 옛날로 돌아가고 싶지 않아요.”

그는 여태 상담 치료를 받고 있다. 다 잊었다고, 용서했다고 생각하면서도 티끌 만큼 남아있는 분노와 적개심에 순간순간 괴롭다고 했다. 스스로 마음을 들여다보면 쑤욱 치밀어오르는 화가 옹이 깊게 박혀있다. 더욱이 이상하게도 그는 다른 성폭력 가해자들과 가족들을 만날 기회가 잦았다. 잊을만하면 마주치는 그들의 존재 자체가 번뇌였다.

‘세상 속으로 가는 요갗의 힘으로 옹이 깊이 박힌 ‘화’를 씻었다. 나를 긍정하자 가해자들의 불쌍한 영혼이 보였다. 성희롱 예방교육 · 피해자 상담…, 성폭력 없는 세상을 위해 세상 속으로 나왔다.

“최근 성폭력 사건 때문에 회사를 그만둔 한 가해 남성은 일이 있기 이전부터 제게 ‘술 취하면 실수를 하니 상담을 받고 싶다’고 했던 사람이에요. 진작 자신을 들여다보고 상담을 받았으면 좋았을 텐데…. 예방이 무엇보다 중요하죠.”

그는 지난해 인도 리시케시 지방의 요가니케스탄 아쉬람(힌두교 종교수행공동체)으로 요가와 명상 여행을 떠났다. 그곳에서 우연찮게 예전에 대학 교수 부인이었던 사람을 만났다. 그 때문인지 구루(인도의 영적 지도자)에게 저절로 질문이 터져나왔다. “어찌 이리도 무겁습니까? 이게 제 까르마(결과를 낳는 행위)입니까?” 그곳에서 그는 “훌훌 털고 가라”는 ‘계시’를 받았다고 했다. 성에 대한 잘못된 가치관을 지니고 여성들에게 성으로 자기 권력을 과시하려 하는 사람들 역시 “불쌍한 영혼들”이라고 알게 됐다. 가해자는 분명히 처벌 받아야 하지만, 그들도 도움이 필요하다는 게 그의 생각이다.

“가해자의 아내들은 ‘내 남편은 공부밖에 모르는 사람’이라거나 ‘남편이 한 행동은 친근감의 표현이었다’고 하지만 자신이 모르는 남편의 모습도 있을 수 있어요. 그 사람을 진정 도우려면 자신을 돌아보게 하고 치유해야 합니다. ”

올해는 여러모로 삶의 전환점이 되는 해였다. 그는 여러번 “새로 태어난 것 같다”고 했다. 사건 관련 자료집을 냈고, 박사논문 자격시험에 통과했고, 어린이 성폭력 피해자 쉼터와 미혼모 시설에서 상담과 봉사도 했다. 남성들을 상대로 성희롱 예방교육과 성인지력 향상 교육을 하기도 했다. 힘이 되는 남자 친구도 만났다. 외국인인 남자 친구는 특히 그에게 큰 의미다. 그는 최 원장에게 “고통을 겪고난 뒤 남에게까지 힘을 나눠주려고 하는 네가 자랑스럽다”고 용기를 줬다.

“저는 행운이에요. 성폭력 피해자들은 자신이 다시는 사랑하는 사람을 만나지 못할 거라고 생각하는 이들이 많아요. 결혼생활에 문제를 겪는 이들도 많고요. 저를 있는 그대로 인정해주는 그 사람에게도, 어려울 때 힘이 돼주신 부모님께도 감사합니다. ”

‘ㅅ대 김교수 성폭력 사건’은 대학 사회의 반성폭력 문화를 일군 결정적 계기였다. 이 사건으로 말미암아 서울 5개 대학이 모인 ‘교수 성폭력 사건 뿌리뽑기 연대체’가 결성됐고 각 대학에 반성폭력 학칙이 제정됐다. 성폭력 사건을 해결하는 대학 내 양성평등성상담실도 속속 문열었다.

사건은 2001년 10월31일 발생했다. 회식자리에서 김 교수는 대학원생인 최씨를 옆자리에 앉히고 손과 뺨 등을 만졌다. “내가 너를 여인으로 만들고 싶다” “너와 네 남편 사이에서 자겠다” “너를 안고 싶다” “키스하고 싶다”고 말하며 뺨에 입술을 갖다댔다. 피해자가 주변에 이를 알리면서 사건이 불거졌지만 도리어 피해자에게 비난이 쏟아지기도 했다.

가해 교수는 2002년 여성부 남녀차별개선위에서 성희롱 결정을 받았으며 1심 700만원 벌금형, 민사공판 2228만원을 선고받았다. 당시로선 최고 금액이었다. 1년 뒤 학교로 돌아온 김 교수는 자신의 연구실이 아닌 최씨가 있는 대학원실에 머물겠다고 해 학생들은 다시 ‘2차 가해에 대한 진상조사’를 요구하며 수업거부를 했다. 대학 당국이 해임을 결정했지만 교원징계재심위의 구제로 학교에 복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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