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99년 전직 학장의 대학 신입생 입학으로 전국의 이목을 집중시켰던 청주 주성학원 유성종이사장(71)이 4년 과정을 마치고 오는 18일 졸업식을 갖게 됐다. 지역 교육계의 원로로 충북도교육감, 국립교육평가원장, 주성대 학장 등을 역임했던 유이사장. 그는 꽃동네 현도사회복지대학 졸업에 이어 올해 첫 개설된 대학원 과정(복지경영관리 전공)에 진학하기로 해 또한번 주위를 놀라게 했다. “다들, 사람은 죽을 때까지 배워야 한다고 하지 않는가? 그런데 왜 대학 진학하구 대학원가는 게 기이하게 받아들여지는지 모르겠다. 사실 대학원 진학은 내 뜻 보다는 교수님들의 권유로 결정하게 된 것이다. 지난 4년간 평소 관심있던 복지분야에 대해 젊은이들과 함께 공부한 것이 소중한 경험이었고, 조금 더 욕심을 내는 것 뿐이다”
꽃동네 현도사회복지대 입학 당시 전국 언론의 뜨거운(?) 관심이 ‘곤혹스러웠던’ 유이사장은 대학원 진학으로 화제를 옮기자 부담스런 기색이 역력했다. 자신을 드러내기는 커녕 남앞에 나서기조차 꺼리는 그의 ‘조심성’은 오랫 교육경력에서 쌓인 이력일까. “난 순수한 교육자가 되질 못한 사람이다. 30여년 공직생활중에 학생들을 가르친 시기는 10년 남짓밖에 안된다. 개인적으로 처음 교장 발령받았던 충주고 재직시절이 가장 추억에 남는 시기였다. 교육행정가로 부르는 것이 합당할텐데, 그래서 아쉬움이 많다.”

충주고, 지방 최초 교복변경해
자신이 꿈꾸었던 교단 위의 선생님이 되지못한 미련이 낮은 목소리에 배어나왔다. 하지만 유이사장은 공직생활 동안 수차례 정치권의 유혹을 떨쳐버린 소신을 발휘했다. 심지어 83년 5공 전두환정권이 총선을 앞두고 청주지역 조직책을 권유했지만 끝내 거부한 일화도 있다. 지역 정보기관까지 나섰지만 그의 뜻을 꺾진 못했다. “교육감 시절에 충북·제주가 시범적으로 지방자치제도를 도입해서 도지사 선거를 한다는 얘기가 나돌았다. 당시 민태구 지사가 그것 때문에 신경을 쓴다는 말을 듣고 지사가 참석하는 행사엔 일체 얼굴을 내밀지 않았다. 부득이 합석하더라도 교육감 인사말을 하지않는 것으로 했다. 94년에 서울 생활을 정리하고 청주로 내려왔을 때도, 민선지사 선거출마설이 나도는 바람에 맘 고생을 했었다. 주성대에서 ‘여벌의 자리’를 만들어줘 잘있는 사람을 자꾸 선거에 끌어들이는 바람에, 결국 주병덕지사가 도청 간부의 우리 대학 강의를 중단시켰다는 소문이 나돌기까지 했다”
유이사장이 가장 즐거웠다는 충주고 교장 시절에 그는 전국적인 사고(?)를 친 전력이 있다. 그때까지 남학생 교복은 목을 죄는 후크가 일반화된 처지였다. 82년 유이사장은 지방에선 처음으로 양복깃 교복으로 바꾸는 작업을 추진했던 것. “해방된 지 40년이 다 된 마당에 일본식 교복을 그대로 입히는 자체가 문제라고 생각했다. 더구나 목을 죄는 후크를 안채우면 기합을 주고 하는 것이 얼마나 한심한 일인가. 학부모들과 상의해서 이듬해부터 양복깃을 바꾸도록 했다. 그랬더니 얼마뒤에 전대통령이 학생교복을 폐지한다고 발표하더구만, 대통령이 직접 나서서 학생 교복 입어라, 마라 하는 것도 딱한 일이지만…”

교육감 낙점, 하루전에야 알아
유이사장은 지난 84년 당시 51세라는 전국 최연소의 교육감에 선출됐다. 당시에는 도지사가 의장을 맡은 지역교육위원회에서 도지사를 선출토록 했다. 형식은 선출직이지만 실제로는 청와대의 낙점에 따라 교육위는 거수기 노릇을 하는 시대였다. “내가 도교육청 학무국장을 맡았을 땐데, 지사실에서 교육위원회 긴급소집을 요구했다. 무슨 일이냐고 했더니, 도교육감 선출건이라는 거였다. 난 전혀 생각조차 없었는데, ‘사실은 유국장 당신을 교육감으로 선출할 예정’이라고 했다. 결국 하루전에 교육감 낙점소식을 들은 셈이고, 3년뒤에 연임거부 의사를 장관에게까지 밝혔는데도 내 뜻대로 되지 않았다. 남들은 관운이 좋다고 할 지 모르지만, 내 심정은 그렇지 못했다”
이후 민선 교육감 제도가 실시되면서 자칫 3선의 굴레(?)를 면치 못할 뻔 했다. “민선이 진짜 교육감이니, 출마해야 한다고 권유하는 사람이 많았다. 이거 안되겠다 싶어서 걱정하고 있는데, 문교부장관이 부르더니 교육부에 와서 함께 일할 생각이 없느냐고 제안했다. 난 속으로 ‘교육부로 옮기면 민선 출마 얘기는 없어지겠지’ 싶어서 선뜻 응했고 결국 임기 3개월전에 사표를 내고 장학편수실장으로 올라갔다”
93년 김영삼정부 출범과 함께 정무직인 중앙교육평가원장을 사직한 유이사장은 95년 주성대 학장직을 수락했다. 주성대는 그의 중앙인맥과 재단측의 의지에 힘입어 최단 기간 고속성장을 이룬 전문대학으로 손꼽힌다. 그는 자신에 대한 지방선거 풍문을 잠재우기 위해 학장 재임시에도 가능한 외부 행사 참여를 자제했다. 심지어 지역인사 신년교례회에도 얼굴을 비치지 않을 정도였다.
최근 지역 교육계가 민선 교육감 사법처리 등 혼란에 빠진 상황에 대해 질문을 던졌다. 현재와 같은 선출방식에 대한 어떤 의견을 갖고 있으며 개선방안은 없는지. “선거인단 방식은 사전 선거운동으로 좌우될 소지가 많고, 그러다보니 뜻있는 사람들도 출마를 꺼릴 수 있다. 한국 현실에서 재주꾼이나 술수에 능한 사람이 선출직에 당선될 소지가 있다. 지방의회와 교육계 평의원으로 선거인단을 구성해 전문성있는 판단으로 선출하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생각한다” ‘순수 교육자’로 실패를 공언한 칠순의 대학생이 이젠 ‘순수 봉사자’의 길로 성공을 다져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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