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지망까지 탈락한 917명, 무작위로 임의배정 해
학부모, 근거리 우선 기준 적용해 재배정 요구 거세

청주지역 일반계(인문고) 고등학교 학교배정에서 전산추첨에 의해 임의배정받은 학생·학부모들이 반발하고 있다. 충북도교육청이 1∼4지망까지 희망학교 지원을 받았으나 무작위 전산추첨에 의해 미달학교로 임의배정된 학생이 15%(917명)에 달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들은 집에서 먼 원거리 학교나 올 신설 학교(흥덕·서원·주성고)로 배정되면서 불만이 높아진 것.
이에따라 지난 25일 배정학교가 발표되자 도교육청에 항의성 전화가 쇄도했고 홈페이지에도 불만을 토로하는 글이 집중적으로 올랐다. 일부 학부모들은 도교육청 홈페이지 게시판에 도교육청 항의방문을 제안했고 실제로 27·28 양일간에 걸쳐 100여명의 학생·학부모들이 찾아와 실무 과장·장학사와 면담을 갖기도 했다. 항의방문 학부모들은 별도 모임을 결성해 도교육청을 상대로 재배정 요구집회를 열기로 해 사태 장기화가 우려되고 있다. 하지만 도육청 중등교육과는 임의배정 학생 수를 취재진에 축소발표하는가 하면 29일 현재까지 교육인적자원부에 재배정 가능여부에 대한 질의조차 하지 않은 것으로 드러났다.

학부모 이기주의·교육행정 합작품
도교육청은 올해 신설된 3개 고교를 포함, 청주권 일반계 17개 고교에 총 5917명의 신입생을 배정키고 했다. 하지만 학교지원을 받아본 결과 전통있는 C고와 공립 C고를 비롯해 사립 S고 등에 지원이 집중됐고 신설학교를 포함 4∼5개교는 미달사태가 발생했다는 것. 도교육청은 각 학교별로 1∼4지망 가운데 1지망 50%, 2지망 30%, 3지망 15%, 4지망 5%로 나눠 배정했다. 하지만 4지망 희망학교에도 배정받지 못한 학생들은 무작위 전산추첨 방식으로 미달학교에 배정됐다. 이로인해 총 신입생 5917명의 15%에 달하는 917명이 본인이 지원하지 않은 학교에 임의배정받는 결과를 초래하게 된 것. 특히 아무런 기준없이 임의배정하다보니 거주지에서 원거리에 배정된 학생·학부모들의 반발이 큰 것으로 나타났다.
이들은 현행 임의배정 방식이 ‘학생의 학교선택권과 교육권을 박탈하는 제도’라고 지적하고 재배정을 요구했다.

신설 3개교, 특수상황 결과
가경동에 거주하는 학부모 A씨는 “앞으로 3년동안 어떻게 가경동에서 금천동 학교까지 등하교를 하란 말인가? 고등학생은 O교시·보충수업하다보면 아침 8시까지 학교에 가서 밤 10시에 끝나는데, 3년간 새벽밥 먹여서 밤엔 택시나 봉고차량을 이용할 수밖에 없다. 가족들도 고통이고 학생에 대한 학습권도 심각한 장애를 초래할 수밖에 없다. 그런데도 1천명에 달하는 학생들을 아무런 기준도 없이 임의배정한 것은 교육행정의 무책임한 단면을 보여준 것이다. 업무상 다소 복잡하더라도 최소한 근거리 기준이라도 정해서 임의배정했다면 이런 낭패를 보는 경우는 줄일 수 있지 않았겠는가”고 반문했다. 학부모들은 근거리 학교 재배정과 학생간 배정학교 맞교환 허용 등을 요구했다.
이에대해 도교육청은 현행 교육법시행령에 따라 적법하게 진행된 것이기 때문에 재배정은 불가능하다는 입장을 밝혔다. 임현빈 중등교육과장은 “올해 3개 고교가 신설돼 일반계 신입생이 1130명 늘어났다. 하지만 신설학교를 기피하다보니 대규모 미달사태가 벌어진 것이다. 이같은 사태를 사전예방하기 위해 도교육청은 작년까지 3지망만 받다가 올해는 4지망까지 선택폭을 늘렸다. 적어도 학생·학부모들이 마지막 4지망에서 집과 가까운 신설학교를 지원했다면 임의배정받는 사태는 막을 수 있었을 것이다. 지난해 경기도교육청의 컴퓨터 오류처럼 배정작업 자체에 하자가 없는 한 현행 교육법상 재배정은 불가능하다”고 말했다.
하지만 현재와 같은 무작위 전산추첨 배정방식은 적지않은 문제점이 있다는 지적이다. 어차피 무작위 배정할 바에는 주소지와 최대한 인접한 미달학교를 우선 배정하는 것이 교육적 처사라는 지적이다.
지난해 물의를 일으켰던 경기도교육청 고교재배정의 경우 한시적으로 전학을 허용하면서 다음과 같은 기준을 제시했다. 출신 중학교를 기준으로 배정학교까지 직선거리 5km이상, 대중교통 1시간 이상 통학시간, 지역실정을 감안해 선정토록 했다. 학교 등하교에 장애를 인정할만한 기준으로 판단한 것이다. 단일학군인 청주시의 경우 917명의 임의배정 신입생 가운데 이같은 기준에 해당하는 경우는 별도의 구제책을 마련해야 한다는 지적이 일고 있다.

917명 학습권 포기하나
또한 현행 평준화지역 고교배정 제도상 예외규정의 필요성도 대두됐다. 올해 음성출신 쌍동이 여학생이 청주지역 고교를 지원했으나 임의배정을 통해 청주여고와 흥덕고로 각각 배정됐다는 것. 자매가 학교 가까운 곳에 거처를 정할 경우 다른 학생의 불편이 불문가지인 상황이다. 이에대해 정용하장학사는 “임의배정은 규정에 따라 무작위 전산추첨을 하고 있다. 사전에 이같은 내용을 학생·학부모에게 충분히 고지했고 진학담당 교사에게도 원거리 배정이 최소화될 수 있도록 지도해달라고 당부했었다. 올해 신설학교가 3개교에 이르면서 결과적으로 임의배정 대상이 늘어나게 됐다. 임의배정일 경우 거리기준을 적용하는 것이 필요하다고 판단돼 내년부터 규정을 보완할 방침”이라고 말했다.
청주지역 중학교 현직교사인 B씨는 “학교에서 4지망에는 근거리 고교를 지원토록 지도하지만 학부모들의 ‘내 자식 이기주의’ 앞에는 속수무책이다. 결국 학부모의 이기주의와 도교육청의 안이한 업무처리가 대규모 임의배정 사태를 일으킨 원인이 된 것이다. 결과적으로 15%의 임의배정율은 너무 높고, 신설학교 정원이 1130명이나 늘어나면서 예견된 결과였다. 이같은 특수한 상황을 고려해 교육인적자원부와 협의해 교육적 차원에서 임의배정자 가운데 근거리 미달학교 희망자를 구제하는 방안을 모색해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 고교 재배정 선례, 어떤경우인가
지난 2001년 비리재단 이사진 복귀와 교장 선임문제를 놓고 교육파행을 거듭해온 서울 상문고에 대해 서울시교육청이 처음으로 신입생 재배정을 결정했다. 특히 2, 3학년 학생 가운데도 희망자에 한해 퇴학 등의 절차를 밟아 인근 학교로 전학할 수 있도록 특단의 조치를 내렸다. 상문고의 신입생 재배정은 1974년 고교 평준화로 신입생 추첨배정 제도가 도입된 이후 처음이다.
지난해엔 경기도교육청의 전산오류로 인해 고교 재배정이 실시됐다. 하지만 의왕시 정원고에 재배정된 학생들의 집단 등록거부 사태가 벌어진 것. 이른바 1차 배정과 달리 재배정에서 ‘기피학교’로 뒤바뀌자 경기도교육청의 ‘원죄’를 내세워 학교등록을 거부한 것이다. 이들은 3월말까지 등록을 거부해 학적상실 위기까지 놓였으나 경기도교육청은 막판에 정원고 신입생 전원에게 전학을 허용하기로 해 해결점을 찾았다. 정원고는 올해부터 특수목적고인 외국어고로 개편돼 재개교 했다.
결국 비리재단 문제, 전산오류 재배정을 통해 ‘기피학교’로 몰린 학생들에 대해 특수한 상황을 인정해, 구제차원의 재배정·전학결정을 내린 것이다. 이제 청주지역 3개 고교 동시 개교에 따른 임의배정자 과다발생이 ‘특수한 상황’인지 여부를 냉정하게 가려야 한다. 917명 학생의 3년간 학습권이 걸린 중대사안에 대해 도교육청의 적극적인 해결의지가 필요한 시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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