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름만 들어도 가슴이 벅차 오르며 혹독한 추위 및 위험이 기다릴 것 같은 이곳 히말라야에 충주의 자그마한 시골 분교 학생들이 출사표를 던졌다.
김영식(충주중앙중학교가금분교장 교사)산악부지도교사를 대장으로 김영민. 방명선(가금분교장 3년)과 이학교 졸업생인 권혁준(중산외국어교1년), 이석희(충주상고1년), 그리고 시각장애인인 박동희(충주성모학교1년)군으로 히말라야로 가는 꿈나무 원정대는 꾸려졌다.
12월 20일. 우리 청소년들에게 꿈과 이상을 심어주기 위한 ‘히말라야로 가는 꿈나무 원정대’는 비행기에 몸을 실었다. 이 비행기에는 엄홍길(8000m14좌완등)지도위원과 표순남(충북산악연맹이사), 이성철(충주성모학교교사), 글쓴이, KBS보도요원 3명도 같이 몸을 실었다.
방콕을 거쳐 21일 오후 꿈나무 원정대는 네팔의 수도 카투만두의 빌라 에베레스트에 여장을 풀었다. 4일간에 걸친 행정처리와 식량과 장비 구입 및 재포장을 마치고 크리스마스날 새벽 카라반 시작지인 베시사르로 향했다. 26일 아침 46명의 포터들에게 짐을 분배하고 카라반길에 올랐다. 시각장애인인 박동희대원은 김영식 대장 및 등반지도위원·다른 꿈나무 원정대원들의 “앞에 돌이 있다. 계단 길, 좁은 길, 내리막길, 발 높이 들어...” 등의 구두 안내를 받으며 카라반을 하였다. 카라반을 하는 동안 내내 동희에게 불규칙한 길의 상황을 설명해 주어야 했으니 꿈나무 원정대는 말을 가장 많이 하며 등반한 원정대라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앞이 전혀 보이지 않는 동희에게 울퉁불퉁한 길의 카라반 자체도 새로운 도전일 것이다. 그리고 동희에게 안내보행을 하는 다른 꿈나무 대원들도 여느 등반팀의 대원들보다 정말 힘든 카라반이었으리라는 생각이 든다. 주변의 경치도 볼 겨를 없이 땅바닥만 보며 하는 힘든 카라반이 계속 되었으나 어린 꿈나무 대원들이 내색도 않고 동희를 도와 열심히 산행하는 모습이 대견하기만 하다. 쉽지 않은 카라반이었지만 그 속에서 장애우와 비장애우가 어우러져 목표를 이루어 낼 수 있다는 것 ‘함께 하는 삶의 소중함’을 체험하고 체득한 그런 소중한 카라반이었다. 이것은 아마도 사회에 만연해 있는 이기주의와 딱딱한 입시위주의 교실환경에서는 상상하지도 못하는 진주 알 같은 소중한 경험이리라.
2002년의 마직막날 하루종일 온천지 하얗게 수놓더니 1월1일 새해 아침이 밝았다. 밤새 내리던 눈도 그쳐 날씨가 화창하다. 새해 새 기분으로 신설을 헤치며 베이스 캠프로 향했다. 밤 새 내린 눈이 50∼60㎝에 이른다.
눈은 그쳤지만 강풍이 불어온다. 겨울의 매서운 맛을 우리에게 가져다 주려는 모양이다. 능선에 쌓인 눈이 날리는 눈보라 속에서 우리는 강행군을 하여야 했다. 맞은편 람중히말에서는 계곡에 쌓인 눈의 힘을 견디지 못해 거대한 눈사태가 일어나 장관을 연출한다. 그 속에 있는 우리를 생각하니 소름이 끼친다. 5시간의 강행군 속에 도착한 4,300m의 베이스캠프는 허허벌판 속에 바람을 막아줄 곳도, 주위에 물도 없는 최악의 둥지였다. 동계시즌의 살을 파고드는 차갑고 매서운바람은 밤새 텐트를 날려버릴 것 같이 포효하다 새벽에야 잠잠해졌다. 다음날 아침 모든 대원들과 셀파들이 함께 모여 무사산행을 기원하는 라마제를 지냈다. 그리고 이곳에서 마주보는 안나푸르나를 향해 우리 고장이 배출한 세계적인 산악인 고 지현옥님과 안나푸르나 산행을 하다 유명을 달리한 악우들에 대한 제사도 지냈다. 그런데 뜻하지 않은 일이 발생했다. 라마제를 지내고 나서 그간 잘 적응한다 싶던 막내 방명선. 김영민 대원이 고소증세를 호소한다. 마을로 내려보내야 한다. (고소증세는 밑으로 내려가면 금새 정상으로 돌아온다.) 어린 학생들만 내려보내기가 부담스러워 내가 같이 내려가겠다 요청을 했다. 피상마을에 도착한 나는 학생들에게 약을 먹여 편히 쉬도록 하고 내일을 위해 기도했다. 다음날 방명선 대원은 적응이 잘 되지 않아 포터 1명을 붙여 마을에 남겨 놓고 김영민 대원만 데리고 베이스로 향했다. 방명선 대원의 눈가에 고이는 눈물이 나를 아프게 했다. 베이스캠프에서는 김영식 대장과 엄홍길 지도위원, 권혁준·김영민대원 그리고 KBS의 김형운 PD, 정하영 카메라감독, 나관주 카메라맨이 하이캠프로 출발하였다.
하이캠프는 양쪽이 절벽으로 이루어진 바위능선 상에 아슬아슬하게 텐트를 설치하여 공간도 협소하고 바람을 피할 곳도 전혀 없다고 한다. 그리고 하이캠프에서 바라보이는 피상피크 정상부위는 바위벽과 청빙으로 이루어진 설벽으로 등반하기가 만만치 않다고 한다. 밤이 되면서 바람은 세차게 몰아친다. 자기의 속살을 뭇 사내들에게 보이지 않으려는 격렬한 몸짓을 연출해 내는 피상의 밤은 혹독하다.
오! 라마신이시여 제발...
간절한 기도의 덕인지 새벽이 되면서 바람이 잠잠해지고 6시 정상 공격조가 출발하였다. 그러면서 무전을 통해 ‘동희가 고소증세(무기력증)가 나타나 상태가 좋지않아 김형운 PD에게 간호를 부탁하고 출발하였으니 후송을 하라’한다. 나는 즉시 키친보이와 포터, 이성철 선생을 먼저 올려보내고 나서 상태가 더욱 안 좋아진다(언어장애와 하체마비)는 무전을 받고 표순남 이사, 김영민 대원도 올려 보냈다. 내 생각에 안정이 제일 중요한 것 같고 무엇보다도 이선생의 목소리가 필요한 것 같았다.
빠른 후송 덕에 베이스에 도착한 동희는 정신이 약간 돌아왔고 이성철선생을 대동해 바로 피상 마을로 하산을 시켰다. 동희는 비록 후퇴 하였지만 최선을 다했다. 정상에 오르지 못했지만 스스로의 정상에 올랐으리라. 비로소 정신을 차리고 쌍안경을 통해 공격조를 바라보니 진행이 너무 느리다.
무전으로 상황을 알아보니 바위벽은 지난번 온 눈때문에 얼음벽으로 변했고 눈사면도 단단히 얼어 청빙형태를 하고 있단다. 또한 휙스 로프가 모자라 밑에서 사용한 것을 끊어서 위로 올리고 있으며, 두 꿈나무 대원이 완전히 지쳐 진행속도가 느리다 한다. 가끔씩 무전을 통해 토해내는 듯한 신음 소리가 들려온다.
나의 두 눈이 계속 쌍안경을 향하고 있는 사이 피상마을에서 동희의 상태가 좋아졌다는 무전이 오고, 공격조는 서서히 정상을 향해 오르기 시작한다. 1시40분. 하이캠프를 출발한지 7시간 40분만에 그들은 드디어 “전대원 무사히 정상에 올랐다”는 무전을 토해냈다. 드디어 우리 꿈나무 대원들이 6,092m의 피상피크에 오른 것이다. 그간의 힘든 일정이 주마등처럼 스쳐 지나가며 부지불식간에 눈물이 볼을타고 주르르 흘러 내린다.
산은 아니 등반은 인내의 예술이다. 그들은 참다운 예술성을 찾기 위해 마지막 투지를 불사르며 정상에 올랐고 그곳에서 충주중앙중학교 가금분교장, 충주중앙중학교, 충주성모학교학생들의 소원을 적은 캡슐을 정상에 묻었다. 또한 정상을 향해 끊임없이 노력한 김영민· 방명선 . 박동희 대원의 눈물도 함께..
히말라야로 가는 꿈나무 원정대 김영식 대장의 장애우와 비장애우가 함께하는 교육, 청소년들에게 꿈과 희망 그리고 도전정신의 소중함을 일깨워 주려는 교육 철학에서 비롯되었지만, 이것은 그만의 철학이 아닌 우리사회 모두의 바람이라는 생각이 들며, 그 철학을 실천한 바 등반을 끝낸 꿈나무 원정대원들은 10년 후 선생님을 모시고 정상에 묻은 친구들의 소원캡슐을 다시 찾아올 것을 굳게 약속하고 ‘10년 후의 꿈’을 기약하면서 힘찬 발걸음을 다시 내딛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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