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신헌법이 제정될 당시 나는 시골 중학교의 반장이었다. 어느날 교장선생님이 반장들을 모두 불러 모으더니 장황하게 얘기를 늘어 놨다. 당시를 정확히 기억해 낼수는 없지만 결론은 분명했다. 유신헌법에 대한 찬반을 묻는 국민투표가 반드시 통과돼야 한다는 것이었다. 다음날 아침, 전체조회 때 연단에 오른 교장선생님의 목소리엔 더욱 힘이 들어갔다. 각자 집으로 돌아가면 부모님들께 꼭 찬성표를 던지도록 설득하라는 훈시였다. 만약 유신헌법이 통과되지 않으면 북한이 당장 쳐내려 올지도 모른다는 얘기가 곁들여졌다. 그때 나는 장날 때문에 늦게 귀가한 아버지를 향해 교장선생님의 지시를 충실히 이행했다. 유신헌법이 어떤 것인지는 몰랐어도 전쟁에 대한 공포심은 어린 나에게도 크게 다가왔다. 나중에 알았지만 아직도 이름을 기억하는 그 교장선생님은 그후 도교육청으로 올라가 승승장구했다.
서울 인근의 수색에서 군생활을 하던 어느날, 나와 동기는 중대장한테 호출돼 참으로 헷갈리는 주문을 받았다. 미국의 대통령에게 편지를 쓰라는 것이다. 강한 미국, 위대한 미국을 기치로 전직 배우답게 현란한 액션으로 미합중국을 열광시켰던 레이건이 취임할 때였다. 어리둥절해하는 우리들에게 중대장은 “위로부터 할당을 받았기 때문에 대학을 다니다 온 너희들이 맡을 수 밖에 없다. 이건 국가차원이다”며 다그쳤다. 중대장의 요구는 좋은 얘기만 쓰라는 것이었다. 군(軍)의 생리상(?) 마지못해 편지를 쓰면서 레이건을 ‘당신’으로 표현하자 왜 ‘각하’가 아니고 당신이냐는 중대장의 질책에 동기와 나는 짧은 실력으로 “어차피 영어의 유(YOU)로 독같이 번역된다”고 박박 우기던 기억이 지금도 생생하다. 문제의 편지작성이 과연 국가차원이었는지, 또 실제로 레이건에게 전달됐는지는 알 수가 없다. 다만 광주의 ‘피’를 뒤집어 쓰고 권력을 틀어쥔 전두환씨가 전국의 장병들에게 알록달록한 훈장을 일제히 하사한 웃지 못할 일이 벌어진 시기가 바로 이 때다.
노무현당선자가 취임도 하기전에 북핵과 반미문제로 시험대에 올랐다. 정권쟁취에 실패한 한나라당이 열받을 수밖에 없는 저간의 사정은 이해하지만 그렇더라도 “대통령인수위를 주사파가 점령했다”는 식의 언사는 너무 지나치다. “반미를 선동하는 자들은 모두 북한의 하수인”이라고 목청을 높이는 자칭 이나라의 보수세력들도 마찬가지다. 솔직히 말해 우리나라에 진정 보수가 있었는지 묻고 싶다. 분명한 것은 우리나라 정치권엔 보수가 없다는 사실이다. 레드콤플렉스를 부추겨 이를 악용하려는 정권욕이 보수로 위장됐을 뿐이다. 원래 보수는 나쁘지 않은 것이다. 말 그대로 기존의 질서를 존중하고 과거로부터 물려 받은 가치관과 지혜를 보전하는 것이다. 그러나 극우 멘탈리티의 소아병적 증세가 결코 보수일 수는 없다. 북핵과 전쟁을 부추기는 것은 미국의 패권주의이지만 오히려 국내의 이런 수구반동적 파시스트 이데올로기가 더 문제다. 내가 중학교 때 들은 우리사회의 레드콤플렉스는 30여년의 시공을 넘어서도 이들 극우 냉전론자들한테는 여전하다. 개혁과 민족자주의 21세기형 리더십이 언론을 장식하는데도 오히려 빨간 바이러스가 더 준동하는 단절의 사회에 지금 우리가 황망하게 서있다.
LA 폭동 때 미국은 한국인들을 버렸다. 그래서 우리 동포들은 할 수 없이 총을 잡았다. 자기 목숨을 지키기 위한 본능적 방어의식의 발로다. 그러나 효순이 미선이의 죽음을 항의하던 우리 국민들은, 미군들이 낄길대며 지켜보는 가운데 같은 동포인 전경들한테 무참하게 얻어터지고 깨졌다. 아직도 우리에게 미국은 감히 범접할수 없는 신성한 나라다. 그래서 할 수 없이 총이 아닌 촛불을 잡은 것이다. 이조차 맹방 미국을 자극해 큰 일이 날것이라고 난리들이다. 군인들을 동원해 정권을 인정해 달라고 미 대통령에게 편지를 쓰며 아부한 결과가 결국 정당한 주장조차 그들의 눈치를 봐야 하는 속국(屬國)의 비애만을 가중시켰다. 그러나 실망할 필요는 없다. 운동권 학생과 일부 재야의 전유물로 여겨졌던 반미정서가 지금처럼 전국의 어린이부터 노인에까지 공유될 줄은 감히 누가 생각했던가. 한국이 지레 겁먹을 것이 아니라 오히려 미국이 두려워해야 할 상황이다. 그래야만 지난 50여년간 우리를 상실감으로 몰아 넣었던 그들의 오만함이 고쳐지지 않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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