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덕 현 편집국장

   
지난호에 5.31지방선거 도지사후보들의 후원금 기사가 나간 후 반응이 참으로 다양했습니다. 실명을 공개한 것에 격려 뿐만 아니라 비난도 많았습니다. 모 후보에게 500만원을 후원한 어떤 분은 “그동안 보너스를 제대로 받지 못한 직원들의 눈빛이 예전같지 않다”며 아주 곤혹스러워하기까지 했습니다. 그 분은 “단순히 후보와의 친분 때문에 후원한 것인데…”라며 본인의 실명이 드러난 것에 대해 못내 아쉽다는 말을 남기기도 했습니다.

사실 정치자금이나 후원금을 실명으로 기사화하기엔 많은 부담이 따를 수밖에 없습니다. 특히 좁디 좁은 지역사회의 특성(?)을 감안하면 상황은 더 어려워집니다. 때문에 이번 기사도 독자에게 전달되기까지는 담당 취재기자의 고민과 선관위의 속깊은 자문이 필히 선행됐음을 밝혀 드리고자 합니다.

할 수 없이 실명공개는 고액기부와 사회적 공인에 한정될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러나 엄밀한 의미에서 정치자금이 정말 순수한 목적의 ‘아름다은 돈’으로 평가받으려면 고액보다는 소액의 기부가 활성화되어야 할 것입니다. 이번 취재에서도 다수의 소액기부자가 확인된 것은 이런 측면에서 많은 희망을 안긴다고 봐야 할 것입니다.

이미 다 지난 일이지만 지난 17대 총선과 올 5.31 지방선거는 돈과 정치와의 관계를 새롭게 한 결정적 계기였음을 부인할 수 없습니다. 적어도 외형적으로는 그러했습니다. 일반 시민들도 후보들을 만나면 뭘 바라기 보다는 오히려 밥이라도 사줘야 한다는 말을 공공연하게 했으니 말입니다. 사실 정치자금이나 후원금의 공개는 돈과 정치의 잘못된 만남을 견제하기 위함일테고, 우리는 지난 반세기동안 엄청난 경비를 지출하고 나서야 이런 제도에 비로소 익숙하게 된 것입니다.

하지만 여전히 정치판의 돈은 그 관성을 쉽게 떨쳐 버리지 못합니다. 항상 실망스러운 정치이지만 그중에서 국민들을 가장 당혹스럽게 하는 것은 전혀 예상치 못한 사람들의 뇌물사건입니다. 얼마전엔 국민들에게 잘 알려진 방송인 출신 미모의 국회의원 부인이 이런 추문에 휘말리는 바람에 많은 화제를 낳기도 했습니다. 전혀 그럴 것 같지 않은데도 필히 그런 일이 벌어지는 것은 역시 정치와 돈 관계 때문이 아닌가 생각됩니다. 이번 도시사후보 후원금 내역을 봐도 ‘돈은 권력을 좇음’을 여실히 보여주고 있습니다.

은밀한 돈은 반드시 은밀한 뜻을 지닌다고 합니다. 그래서 정치자금의 공개는 이런 은밀한 돈을 양지로 끌어내려는 국민적 몸부림 쯤으로 치부할 수 있습니다. 그렇다고 얼마나 깨끗해질지는 잘 모르겠습니다. 당사자들한테는 미안하지만 이번 도지사후보 후원금 내역도 과연 그게 전부인지 나 역시 궁금할 따름입니다. 그렇더라도 은밀한 돈을 깨끗한 돈으로 세탁하기 위한 노력은 계속되어야 할 것입니다.

지난 지방선거에서 낙선한 사람들의 “나같이 돈 없는 사람도 한번 출마했다는 것으로 위안을 삼겠다”는 호기를 오래오래 보전키 위해서도 이런 감시활동은 꼭 필요할 것입니다.

본의 아니게 실명공개로 피해를 당했다면 이 자리를 빌어 진심으로 사과드립니다. 굳이 사족을 단다면 지금 우리 주변엔 엄청난 홍수피해로 시름에 젖은 수재민들이 많다는 것입니다. 도지사 후보들에게 후원금을 낸 사람들의 동기가 정말 순수했다면 이들 수재민들에게도 그만한 관심을 가져 주지… 이런 옹졸한 생각을 감히 해보게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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