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 혁 상 충북인뉴스 편집장

   
14일 아침 출근길, 전날 한국-토고전의 밤늦은 응원전으로 머리는 무겁고 어깨도 뻐근했다. 하지만 카오디오로 흘러나오는 끊임없는 승리의 환호성에 기분은 상쾌했다. 종종걸음으로 등교 길을 재촉하는 학생들이나, 콩나물 시내버스에서 흔들리는 직장인들도 이날 아침 만큼은 모두 행복해 보였다.

그런데, 필자의 승용차가 청주 상당사거리를 지나는 순간 큰길가에서 팻말을 들고 선 청년들이 눈에 띄었다. 그 팻말에 적힌 ‘한미 FTA 반대’ 문구가 ‘아뿔사’ 뒷머리를 쳤다. ‘월드컵 보러 집나간 이성(理性)을 찾습니다’라는 앤티 월드컵 구호가 떠올랐다. 그래, ‘대한민국은 지금 월드컵보다 더 중요한 일이 많지?’ 서둘러 내 이성을 집으로 불러들였다.

14일 조간신문을 펼치자 사회면 기사 한 줄이 눈에 들어왔다. 롯데역사(주)에 매각돼 문을 닫게 된 청주백화점의 ‘고별세일’에 고객들이 넘쳐난다는 내용이었다. 향토백화점의 대명사였던 청주백화점이 ‘점포정리’ 세일을 한다니, ‘유한 주부’이든 ‘알뜰 주부’이든 어찌 마음이 흔들리지 않겠는가. 하지만 잠시 이성을 가다듬고 청주백화점의 과거를 되짚어 보도록 권하고 싶다.

청주백화점의 모태는 지난 87년 준공된 복합쇼핑몰 ‘청주 원프라자’로 지역 재력가인 성백준씨가 건립했다. 하지만 자금난으로 2년만에 부도를 맞았고 당시 진로유통 가갑손 부사장이 인수작업을 벌이는 과정에서 폭력배들이 개입돼 물의를 빚었다.

이후 진로백화점으로 상호를 바꿔 운영하다 97년 진로그룹 해체와 함께 백화점 부도사태를 맞게 됐다. 이때 개인자격의 가갑손씨가 부채 647억원, 자산 692억원인 ‘껍데기’ 백화점을 ‘선인수 후정산’ 방식으로 인수해 대표이사를 맡았다. 하지만 가씨의 위기관리 능력을 대단했다. 청주백화점으로 이름을 바꾸고 2002년 채권금융기관의 경매신청이란 최대 위기를 ‘전화위복’의 기회로 바꾸었다.

(주)청주패밀리라는 신규법인을 만들어 법원 감정가의 절반인 128억원에 낙찰받게 된다. 특히 380억원에 달하는 금융권 부채를 털어내 안정적인 흑자기반을 만들었다. 실제로 (주)청주패밀리는 주주에게 매년 10%씩 이익배당을 하는 알짜기업이 됐다.

하지만 부도당시 입점자들의 상품판매대금 채권은 전액변제가 아닌 할인변제 방식으로 처리했다. 대부분 원금의 30%이내로 변제해 50억원의 상품채권 가운데 10억원 정도가 남은 것으로 알려졌다. (주)청주패밀리는 롯데역사(주)와의 백화점 매매가에 대해 함구하고 있지만 4년전 법원 감정가를 적용하더라도 100억원이상의 시세차익을 추정할 수 있다.

여기에 제주도 유스호스텔 사업 투자와 경기도 평택 멀티플렉스 사업 진출 등을 감안하면 (주)청주패밀리의 현재 자산가치는 그 이상으로 볼 수 있다. 불과 4년만에 백억대 이상의 수익을 창출한 ‘알짜기업’이 10억원의 소상인 채권때문에 체면을 구기고 있다. 지역 시민사회단체는 직원 고용승계 문제까지 책임질 것을 요구하고 있다. 청주백화점의 부도는 진로그룹의 방만한 재무관리 때문이지만 청주백화점의 회생은 지역 주민의 변함없는 사랑 때문이었다.

소상인들의 눈물과 직원들의 고용불안을 외면한채 탈(脫) 청주를 꿈꾸는 것은 아닌지 많은 눈들이 지켜보고 있다. 부디 이 눈길들을 ‘즈려 밟지말고’ 유종의 미로 ‘사뿐히 정리하고 갈 것’을 기대한다.
저작권자 © 충북인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