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나 이제나 권문세가(權門勢家)를 둘러 싼 엽관(獵官)이나 매관매직은 변함이 없는 듯 합니다. 단 과거에는 엽관을 법으로 금지했던 반면 오늘에는 그런 법 조항자체가 없다는 점이 다르다 하겠습니다.

조선의 법전인 ‘경국대전’에 보면 ‘분경금지법(奔競禁止法)’이라는 낯선 용어가 나옵니다. 사전에는 분경이란 분추경리(奔趨競利)의 준말로 아랫사람이 벼슬을 얻기 위해 윗사람의 집에 분주하게 드나드는 엽관운동을 말한다고 적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분경금지법이란 엽관운동을 금지한 법일 터입니다.

실록에는 1399년 정종이 엽관(獵官)운동을 하지 못하게 명을 내렸다는 기록이 있습니다. “만약 억울한 일이 있으면 소속 관서에 고할 것이고 비밀리에 윗사람에게 청탁을 하지 말 것이며 이를 위반한 자는 사헌부(司憲府)에서 규찰(糾察)하여 귀양보내고 종신토록 다시 등용하지 말라”고 엄격히 규정하고 있습니다.

또 태종 때는 왕명에 따라 삼군부(三軍府)와 사헌부에서 관리들이 무신(武臣)의 집이나 정승의 집에 드나드는 것을 철저히 감시했고 명을 어기고 출입한자는 고하를 막론, 이유를 묻지 않고 옥에 가두었습니다.

경국대전에 의하면 친척이 아닌 자가 정승 집에 드나들며 승진 등의 청탁을 해 분경금지법을 위반하면 ‘장일백류삼천리(杖一百流三千里)’라, 볼기 1백대를 때려 3천리 밖으로 귀양을 보낸다고 적고 있습니다. 어느 시대 건 관리들의 기회주의는 있게 마련이지만 그 옛날 이런 엄중한 법이 있었다는 게 놀랍지 않을 수 없습니다.

5·31지방선거가 눈앞에 다가오면서 공직사회 분위기가 매우 어수선한 모양입니다. 그도 그럴 것이 선거에 의해 당선된 새 단체장이 들어오면 한 바탕 인사태풍이 불기 때문에 자치단체마다 잔뜩 긴장감이 감돌고 있다는 것입니다.

신분이 보장된 공무원 조직이긴 하지만 단체장에 따라 청내 분위기가 좌우되는 게 현실이라서 새 인물이 취임할 경우 신분상의 변화에 대해 민감할 수밖에 없는 게 공무원사회이기 때문입니다. 특히 지난 4년 현 단체장에게 신임을 받아 중용 됐던 사람 들 일수록 입지가 불안한 건 당연합니다.

이미 일부 재빠른 공직자들은 당선이 유리한쪽에 은밀히 줄을 대고 ‘충성서약’을 하고 있다는 얘기도 공공연히 들립니다. 매스컴의 여론조사 결과가 수시로 알려져 당선 가능성이 예고되는 것도 한쪽으로 사람들이 쏠리게 하는 원인이 되는 듯 합니다.

그런데 그게 어디 공직자들 뿐 이겠습니까. 일반인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권력자와 가까워야 이권을 챙기는 사람, 권력을 업고 측근행세를 하며 호가호위(狐假虎威)하는 사람, 사업의 방패막이로 권력자가 필요한 사람들은 ‘보험’을 들 듯 당선을 거들면서 미리 접근을 하고 있는 것입니다.

권력을 좋아하는 사람일수록 권력에 약합니다. 그러기에 권력이 바뀔 때면 권력 따라 사람도 이동합니다. 권력이 있는 곳에 사람이 모이고 권력이 떠나면 사람도 떠나는 염량세태(炎凉世態)인 것이지요.

자 그럼, 이번에는 또 누구누구가 도지사, 시장, 군수의 측근이 되고 실세가 되어 목을 곧추세울지 궁금해집니다. 걸기대(乞期待)하시라.
/ 본사고문 yhk939@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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