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조-“직접 고용하라”, 회사-“법적판단 맡기겠다”

박순호 부지회장, 서문대교 조형물에서 고공시위
‘고용의제’관련, 대법원과 하급심 판례가 다른 것 쟁점


하이닉스·매그나칩 사내하청노조 박순호 수석 부지회장이 3월21일 오후 2시 청주 서문대교 무심천 조형물 위에 올라가 고공시위를 벌이다 7시간만에 민주노총 관계자들의 설득으로 농성을 풀고 내려왔다. 박순호 부지회장은 ‘노사 직접교섭’과 ‘고용보장’, ‘도지사의 중재’ 등을 요구하는 현수막을 조형물에 매달고 조형물의 끄트머리에서 보기에도 아찔한 시위를 벌였다. 서문대교 조형물의 높이는 무심천 하상으로부터 21.7m에 이르는데 끝으로 갈수록 폭이 좁아져 끝부분의 너비는 1m도 채 되지 않는다. 송곳 하나 박을 수도 없을 정도로 좁고 위태로운 조형물의 꼭지점, 운신도 할 수 없는 백척간두의 그 자리가 사내하청노조가 처한 현주소다. 2004년 12월25일 새벽, 직장폐쇄가 단행되면서 거리로 내몰린 뒤 1년이 넘도록 메아리가 없는 투쟁을 해오다 2006년 2월15일부터 하이닉스 사측과 범도민대책위 중재위원 간에 간접대화가 시작돼 그동안 4차례에 걸쳐 간접 대화가 이뤄졌지만 서로의 입장 차이만 확인했을 뿐 다시 원점으로 돌아갔기 때문이다. 하청노조는 ‘파견근로자의 사용기간이 2년을 초과한 경우 사용사업주의 고용의제를 규정’한 파견법에 따라 노동자들을 직접 고용할 것을 요구하고 있다. ‘고용의제’란 ‘사용자와 노동자가 직접 고용계약을 체결하지 않더라도 기간제 근로기간의 초과 등 일정한 요건을 갖췄을 때 고용된 것으로 간주한다’는 의미다. 그러나 무허가나 위장도급 등 불법파견에 대해서도 파견법상 고용의제 규정이 적용되는지에 대해서는 논란의 여지가 있는 것도 사실이다. 문제는 청주지방노동사무소가 하이닉스와 매그나칩의 사내하청에 대해 불법파견 판정을 내리고, 고용안정개선계획서를 제출하도록 요청했음에도 하이닉스와 매그나칩 모두 ‘사법절차에 따른 최종 법적 판단을 받겠다’는 회신을 보낸 상태에서 시간벌기에 들어갔다는 것이다. 하이닉스는 최근 진행된 간접대화에서도 “인도적 차원에서 생계비를 지원하는 것 외에는 어떤 것도 고려할 수 없다”는 입장을 고수하고 있다. 사법부가 누구의 손을 들어줄지는 알 수 없는 일이지만 “항소와 상고가 이어질 것이 뻔한 상황 속에서 그 결말을 기다리다가는 모두 지쳐 쓰러질 수밖에 없다”는 하청노조 임헌진 사무장의 하소연은 시사하는 바가 크다. 판례에 살고 판례에 죽을 지경
직접 고용에 대한 법적 논리 공방에서 승부를 판가름할 쟁점은 불법파견에 대한 ‘고용의제’ 적용 여부다.

파견법 제6조제3항은 분명히 ‘파견근로자의 사용기한이 2년을 초과한 경우 사용사업주에게 고용의제를 규정’하고 있다. 문제는 ‘고용의제는 적법파견에만 적용하는 것이지 불법파견에는 적용하지 않는다’는 대법원 판례가 있다는 것이다.

하청노조원들이 근무했던 (주)인화 등 4개 사내하청업체의 원청회사인 하이닉스와 매그나칩반도체는 하청업체의 인사노무관리와 사업경영상의 독립성이 결여된 것으로 확인돼 2005년 7월 청주지방노동사무소로부터 ‘불법파견’이라는 판정을 받고 고용안정에 대한 개선계획서를 제출하도록 요구받은 상태다. 따라서 회사측에서는 대법원의 판례에 비춰 볼 때 고용의제가 적용되지 않는다는 주장을 펴고 있다.

하이닉스 관계자 A씨는 “고용의제가 적용되지 않는다는 것은 하청노조 측에서도 잘 알고 있다. 법적으로 가면 우리가 무조건 이긴다. 하급심에서 불법파견에 대해 고용의제를 인정한 판례가 있지만 대법에 가서는 뒤집혔다”고 말했다.

그렇다면 왜 불법파견에 대해서는 고용의제가 적용되지 않는 것일까? 불법파견에 대한 책임이 사용사업주에 있음에도 불구하고 불법파견된 근로자는 우산도 없이 장대비를 맞고 있는 이유는 의외였다.

충북지역 일반노동조합의 자문을 맡고 있는 하태현 노무사는 이에 대해 ‘법의 형식주의’가 문제라고 지적했다. 파견법의 해당 법조문에 고용의제의 대상을 ‘파견근로자’라고만 규정하고 ‘불법파견’에 대해서는 언급하지 않았기 때문에 불법파견 근로자가 피해를 보고 있다는 것이다.

하 노무사는 “대법원에서 불법파견에 대해 고용의제를 적용하지 않는 판례를 내린 것은 파견법을 개정할 문제이지 법관이 임의로 해석해 적용시키는 것은 문제가 있다는 취지에서 공을 입법기관으로 넘긴 것일 뿐이다”라고 주장했다.

실제로 고등법원 등 하급심에서는 불법파견에 대해서도 고용의제를 적용하라는 판결을 내린 사례가 다수 존재한다. 이는 불법파견에 대한 책임이 원청 사용주에게 있고 불법파견에 대해서 고용의제를 적용하지 않을 경우 사용사업주의 불법을 부추기는 꼴이라는 판단에 따른 것이다.

하청노조로부터 부당해고, 부당노동행위 구제신청에 대한 사건을 수임했던 노무법인 ‘참터’ 충청지사의 조광복 노무사는 이에 대해 “하청노조가 부당노동행위 등에 대한 제소건을 취하한 만큼 회사도 법리 논쟁에서 벗어나 전향적인 태도를 보여야만 문제가 해결될 수 있다”고 말했다.

하이닉스 고용의제 적용 사례 있지만
하청노조가 직접고용을 주장하는 또 하나의 근거는 하이닉스가 파견근로자에 대해서 고용의제를 적용한 선례가 있다는 것이다.

실제로 하이닉스는 2004년 12월 이천과 청주공장에서 근무했던 여성 파견노동자 100여명을 전원 직접 고용했다. 하이닉스에서 서무직으로 일했던 현대휴먼플러스 소속 파견 여성 노동자들이 직접 고용을 요구해 노동부로부터 ‘불법파견’ 판정을 받자 고용의제를 적용해 이들을 정규직으로 직접 고용한 것이다.

하이닉스 관계자는 그러나 “2004년의 사례는 이번 하청노조 건과 근본적인 차이가 있다”는 주장을 펴고 있다.

“현대휴먼플러스는 2001년 하이닉스의 전신인 현대전자가 구조조정을 하는 과정에서 서무·교육업무를 맡고 있던 파트를 분사하면서 설립된 자회사인 반면, 하청노조원들은 처음부터 우리 직원이 아니었다”는 것이다.

하이닉스 관계자 A씨는 “현대휴먼플러스 직원들은 어려운 전형을 통과해 입사한 우수한 자원들이지만 직접 고용을 주장하는 하청노조원들은 상황이 다르지 않냐”며 “우리가 그들을 고용할 하등의 의무가 없다”고 잘라 말했다.

결국 중재위의 중재 노력에도 불구하고 원청 회사와 하청노조 사이에는 넘기 힌든 거대한 장벽이 존재하는 셈이다.

하청노조 임헌진 사무장은 “이미 모든 것을 다 잃었고 더 이상 잃을 것도 없는 만큼 끝까지 싸우겠다”고 투혼을 불태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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