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액기부자들의 ‘얼굴 감추기’ 여전해
‘큰 손’ 중복 후원 속 ‘개미군단’ 약진

돈이 말을 한다. 국회의원들이 모금한 정치후원금을 들여다보면 해당 국회의원의 성향과 인맥이 그대로 드러난다. 현행 정치자금법은 검은 돈을 매개로 한 정경유착을 막기 위해 1년 동안 한 국회의원에게 120만원 이상을 기부한 ‘고액기부자 명단’을 선관위에 보고하고 요청이 있을 시 열람 또는 사본을 공개하도록 하고 있다.

국회의원들이 1년 동안 받을 수 있는 정치후원금은 1억5000만원. 초과된 모금액은 다음 해로 이월된다. 또 총선이 실시되는 해에는 평년의 2배인 3억원까지 모금할 수 있으며, 16대부터 연임한 재선 이상의 의원은 총선이 실시되는 해에 한해 4억5000만원까지 모금과 지출이 가능하다.

충북이 지역구인 국회의원 가운데 청주권 홍재형(상당), 오제세(흥덕갑), 노영민(흥덕을) 의원의 고액 기부자 명단을 분석해 봤다. 그러나 상당수 후원자들이 직업란을 ‘자영업’, ‘회사원’ 등으로 단순화시켜 기재하거나 후원회에서 선관위로 보고하는 과정에서 상세한 보고가 이뤄지지 않아 기부자의 직업을 확인할 수 없는 경우도 있었다.

이와 함께 대기업이나 지역에 연고를 둔 경제인들이 여러 국회의원들에게 중복해서 후원금을 낸 사례들이 확인됐지만 지방선거 출마자들이 후원금의 형식을 빌어 사실상 공천헌금을 낸 편법 사례는 찾아볼 수 없었다. -편집자 -

홍재형 의원
임광, 신라 등 지역 연고 경제인들 북적
재정경제부시절 서울 인맥 ‘아직도 건재’


▲ 홍재형 의원 홍재형 후원회의 고액기부자들은 청주고 학맥과 재무부시절부터 끈끈히 맺어온 재정경제부 인맥, 건설업 중심의 지역 연고 경제인 등 세 부류로 나눌 수 있다. 이같은 세 부류는 인물에 따라 교집합을 이루기도 하면서 탄탄한 후원자 그룹을 형성하고 있다. 임광수 임광토건 회장, 이석조 금호개발 회장은 지역 연고 경제인이면서 홍 의원에게 청주고 선배들이다. 송승헌 동원건설 회장은 교동초, 청주중, 청주고 후배로 각별한 사이. 송 회장은 2004년에 500만원, 2005년에 200만원을 후원했다. 한국벤처투자에 근무하는 성기홍씨는 24년 연차가 나는 까마득한 고교 후배다. 경청호 현대백화점 사장, 이상열 대한전문건설협회 충북도회장도 모두 청주고 후배지만 이 회장의 경우 청주권 국회의원 3명에게 모두 후원금을 냈다. 1963년 해군 중위로 군복무를 마치고 재무부 외환국 사무관으로 공직생활을 시작해 1994년 경제부총리에 이르기까지 재경부에서 맺은 인맥도 상당하다. 이종남 한국선물협회장은 매달 20만원씩 1년 동안 240만원을 후원했다. 백남학 조흥은행 부행장은 청주중 후배면서 재경부 후배. 제주도에서 온천개발을 추진하다 2005년 11월 배임혐의로 구속된 이준용 신라개발회장은 2004년 500만원을 후원한데 이어, 2005년에도 200만원을 후원한 것으로 확인됐다. 이밖에 홍재형 후원회 고액후원자 중에는 순수한 지역구민도 있다.홍재형 의원실 A보좌관은 “누구라고 밝힐 수는 없지만 큰 것을 부탁하면서 후원의사를 밝혔지만 거절한 사례가 종종 있다”면서 “직접 가져오거나 대가성이 있는 후원금은 돌려보내고 계좌번호를 안내하는 경우도 있다”고 말했다.
오제세의원
청주중·경기고 학맥, 대기업 중심 두드러져
고액기부자만 15명에 5145만원, ‘청주권 톱’

▲ 오제세 의원 오제세 후원회의 고액기부자들은 이름만 대면 알만한 경제인들이 수두룩하다. 이순종 한화그룹 부회장을 비롯해 정성립 전 대우조선해양 대표이사, 구자준 LG화재 대표이사, 청주권 국회의원 모두에게 후원금을 낸 경청호 현대백화점 사장 등은 대기업 임원들이다. 한화그룹은 임직원 8명의 이름으로 국회의원 13명에게 3100만원을 후원했는데, 개인 차원의 후원이 아니라 기업자금이 들어간 이른바 ‘보험’의 성격이라면 불법에 해당된다. 그러나 오 의원에게 200만원을 후원한 이순종 한화그룹 부회장은 학연에 있어서 오의원과 각별한 관계다. 진천 출신인 이 부회장이 청주중에서 경기고, 서울대 법대까지 내리 6년 선배가 되기 때문이다. 구자준 LG화재 대표이사와 지난 1월 일선에서 물러난 정성립 대우조선 대표이사는 오 의원과 경기고 64회 동기동창이다. 이순종 한화회장과 구자준 LG화재 대표이사는 총선이 있던 2004년에도 각각 500만원을 오 의원 후원회에 쾌척했다. 오 의원 학맥의 특징은 청주중학교를 나와 서울 경기고로 진학하면서 충북과 서울에 고른 인적 네트워크를 구축했다는 것이다. 청주특급호텔 ‘라마다 프라자’의 사업주인 송재건 (주)중원산업 회장, 숙취해소음료 ‘여명 808’을 만드는 (주)그래미의 남종현 회장은 모두 청주중학교 선배다. 이밖에 식기류 코렐을 판매하는 (주)오진상사의 승만호 대표이사, 인천공단에서 제조업을 하는 김재형씨 등은 인천 부시장으로 재직하던 시절 관계를 맺은 인사들이다. 이밖에 지역에서 건설업을 하는 이상열(구백건설·대한전문건설협회 충북도회), 이승재(보성건설), 이두영(두진공영) 회장 등도 각각 150만원에서 200만원의 정치후원금을 냈다. 오 의원의 경우 이처럼 대기업 임원 등 경제인들의 고액 후원이 몰리면서 고액 기부금이 5145만원에 달하는 등 전체 기부금액의 3분의 1 이상을 차지하고 있다. 오제세 의원은 이에 대해 “중앙의 기업인이라하더라도 대부분 학교 선후배들로 어떤 대가를 바라는 ‘보험성격’의 후원금은 절대 아니다”라고 해명했다.
노영민 의원
고액기부 7명에 2237만원, 가장 적어
120만원 이상 고액기부 ‘굳이 필요없다’

▲ 노영민 의원 노영민 후원회가 2005년에 모금한 총 모금액은 1억5000만원으로 연간 모집한도를 꽉 채웠지만 고액기부자는 7명, 2237만원에 불과하다. 모금액을 기준으로 15% 수준인데, 그만큼 개미군단의 약진이 두드러졌다는 얘기다. 다른 의원들에게도 후원금을 낸 경청호 현대백화점 사장, 이상열 대한전문건설협회 충북도회장을 빼고는 이름 조차 생소한 경우가 대분이다. 다만 경청호 사장의 경우 다른 의원들에게 준 200만원에 100만원을 더 얹어 300만원을 후원했고 이상열 회장도 다른 의원에게 준 195만원 보다 많은 247만원을 기부했다. 노영민 의원은 “일부 고액기부자는 보좌관 등을 통해 후원금이 들어와 구체적 친분 관계가 없는 경우도 있고, 나머지는 친한 선후배들”이라며 “초·중·고 대학 선후배들의 소액 후원만으로도 충분한 만큼 100만원 이상의 고액 기부를 반기지 않는다”고 말했다. 이처럼 국회의원 후원회에 대한 소액후원의 비중이 높아진 것은 정당이나 정치인에 대한 소액후원금에 대해 감세혜택을 주고 있기 때문이다. 정치자금법에 따르면 정당이나 정치인에게 후원금을 낼 경우 10만원까지는 전액 세액공제를 받을 수 있고 초과되는 금액에 대해서는 소득액에서 공제를 받을 수 있다. 또 주민세도 세액공제 전 20만원에서 19만원으로 감소해 결과적으로는 ‘10만원을 내고 11만원을 돌려받을 수 있다’는 것이다. 실제로 민주노동당 심상정 의원과 한나라당 서상기 의원 등은 120만원 이상 고액기부자가 단 한 사람도 없는 상황에서 후원금 총액을 기준으로 각각 9위와 22위를 기록하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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