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9년 5월 3일. 충북은행 대신 조흥은행 간판이 올랐다. 조흥은행은 당초 충북은행등과 합병하며 본점을 중부권으로 이전하겠다고 약속했지만 아직 이행하지 않고 있다.
한동안 수면 아래에 잠복해 있던 조흥은행 본점 이전 문제가 새해들어 지역경제계에 최대의 화두로 급부상하고 있다. 차제에 지역에서는 "조흥은행 본점은 반드시 청주로 와야한다"는 염원이 들불처럼 일어나고 있다. 충북은행과 합병할 당시인 지난 99년 지방은행의 역할을 다하겠다는 약속을 해놓고도 이를 이행하지 않고 있는 조흥은행으로선 본점의 청주이전을 통해 '묵은 빚'을 갚아야 한다는 주장도 나오고 있다. 조흥은행 본점의 청주이전이 지역의 '여망'으로 떠오르고 있는 것이다.
여기에는 조흥은행과 합병과정을 통해 충북은행을 잃어버린 한을 씻어보고자 하는 신원(伸寃) 차원의 지역정서마저 깔려 있어 자칫 과열양상으로 치닫지 않을까 하는 우려까지 제기되고 있다.
*중부권이전=조흥은행이 본점 이전문제를 처음 거론하기 시작한 것은 지난 99년 초로 거슬러 올라간다. 당시 과다한 부실로 생사여부가 불투명하던 조흥은행은 강원은행과 먼저 합병하면서 금융감독위에 "본점을 지방으로 이전하겠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잠정적으로 '대전'을 거론했다. 그러던 중 독자생존을 외치던 충북은행이 끝내 두 손을 들면서 조흥-충북은행간 합병이 추가로 성사됐고, 조흥은행측은 99년11월 경영정상화 계획을 담은 양해각서(MOU)를 정부와 체결하며 비로소 '본점을 중부권으로 이전한다'는 약속을 명문화 했다.
본점이전 대상지가 대전에서 중부권으로 넓어지며 애매모호해진 것. 당시 체결된 MOU는 현재까지 수정없이 유지되고 있는데, 은행측은 본점이전을 2001년말까지 완료키로 약속했었다. 충북은행 등과 합병하며 약 3조원에 달하는 막대한 공적자금을 지원받는 대가로 은행으로선 내키지 않는 본점의 '지방이전'을 약속한 것이다.
그러나 이 약속은 결과적으로 이행되지 않았다. 은행측은 이에대해 "재무개선이란 급선무를 먼저 해결해야 했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공적자금의 회수가 더 급한 처지인 정부 역시 본점 이전문제를 은행에 강력히 채근하지 않았다. 서로의 필요성 때문에 '약속'을 헌신짝처럼 버린 셈이 된 것이다. 하지만 새해들면서 더 이상 이 문제를 방치하는데 정부나 은행 모두 부담을 느끼면서 본점이전 문제가 급부상하고 있다.
이원종 도지사는 이런 가운데 지난 9일 기자회견에서 "충북은행을 잃으면서 도민들은 마음의 상처를 크게 받았다"며 "조흥은행 본점이 충북으로 이전되도록 다각적인 노력을 기울이겠다"고 발빠르게 대응했다. 이지사는 특히 "위성복 조흥은행장과 수시로 대화를 갖고 있으며 도내 유일한 지역은행이었던 충북은행이 조흥은행과 합병됐기 때문에 본점이 충북으로 이전돼야 하는 당위성과 2004년 전국체전에 앞서 옛 충북은행 수영팀의 부활문제에 대해서 협의하고 있다"고 말해 두 사람간에 구체적인 말들이 오갔음을 내비쳐 관심을 끌었다.
이에앞서 충북도의회는 지난 8일 위성복 행장에게 보낸 건의문을 통해 "충북은행과 조흥은행간 합병이후 도민들은 조흥은행을 지역의 대표은행으로 인식하고 있다"며 "조흥은행 본점의 청주이전을 도민들은 간절히 여망하고 있다"고 청주로의 본점이전 희망을 전달했다.
청주상공회의소 윤성일사무국장은 "충북은행이 합병된 이후 지역상공인들은 지역은행의 상실로 인해 많은 불편과 설움을 당해왔다"며 "조흥은행 본점은 반드시 청주로 이전돼야 하며 그런 의미에서 지역상공업계에서는 애정을 갖고 조흥은행을 따뜻하게 맞을 준비가 돼 있다"고 밝혔다.
이에대해 조흥은행 박찬 기획부장은 "아직 본점 이전지를 확정하지 않았다"며 "하지만 은행영업의 특수성을 고려할 때 산업과 금융의 중심지인 수도권을 버리고 본점의 모든 조직을 지방으로 이전하기는 곤란하다"고 말했다. 박 부장은 "이에따라 은행의 영업기반을 흐트러뜨리지 않는 범위에서 인사 기획 콜센터 조직 등 본점의 20%에 달하는 후선조직만 옮기는 방안이 유력하게 검토되고 있다"며 "이는 결국 은행의 대주주인 정부가 결정할 일"이라는 입장을 밝혔다.
지금 조흥은행 본점의 청주이전을 바라는 지역의 열망은 뜨겁다 못해 들끓고 있다. 정부와 은행의 선택이 지역여망을 전폭 수용하는 쪽으로 결정날 지 오는 3월 개최예정인 조흥은행 정기 주주총회에 이목이 집중되고 있다.
/임철의기자


"후선조직만 옮기는 건 안된다""후선조직만 옮기는 건 안된다"서로 엇갈리는 전술적 이해
조흥은행 본점이 청주로 이전할 경우 기대되는 효과는 적잖다. 우선 지역구 출신 국회의원이나 이원종지사 나기정청주시장으로선 정치적·상징적 효과를 만끽할 수 있을 것이고, 비록 후선조직으로 본점 이전이 국한되더라도 300명 안팎에 이르는 인구이동의 효과뿐 아니라 세수증대, 구매유발, 추가 고용창출, 각종 지원에 있어서 지역에 대한 우선적 고려 등으로 상당한 부수적 효과가 뒤따를 것으로 보인다.
이런 때문인지 청주이전이 결정되지도 않았는데 지역에선 벌써부터 본점 이전의 실질성을 놓고 전략적·전술적 견해차이가 발생하고 있어 눈길을 끈다. 일각에서는 "은행측이 중추적 영업조직은 뺀 채 기획 인사 콜센터 등 비영업부서 위주로 본점을 형식적으로 이전한다는 것은 약속위반"이라며 본점의 완벽한 이전을 촉구하고 있는 반면, 또 다른 일각에서는 "일단 본점이 청주로 내려오는 것이 중요하다"며 정반대의 목소리를 내고 있다. 그런가 하면 "은행이 정말 본점을 지방으로 이전하겠느냐"는 의구심을 떨쳐버리지 못하는 시각도 엄존하고 있다.
여기서 본점의 청주이전을 먼저 성사시키고 봐야 한다는 측은 "일단 본점이 청주로 내려오기만 하면 다른 문제들은 그때 가서 충분히 해결할 수 있다"는 실리적 계산법을 깔고있다.
한편 청주이전이 은행 내부적으로 결정됐느냐 안됐느냐도 현시점에서 궁금증을 일으키는 대목. 여러 정황상 결정됐지만 타지역의 반발 등을 고려해 오는 3월에 열릴 주총때까지 공표하지 않는 것 같다는 추측과 더불어 본점의 지방이전을 바랄 리 없는 은행에서 무엇하러 이 문제에 대해 벌써 결론을 내렸겠느냐는 주장이 엇갈리고 있다.
/ 임철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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