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빛학사, 달빛반 등 수준별 학습이 ‘성공 열쇠'
수능 평균도 매년 전국 기준 50점 이상 웃돌아

청주 세광고등학교가 2006학년도 서울대 정시 모집 1차 합격자 발표에서 모두 23명의 합격자를 배출해 전국 일반계 고등학교 가운데 가장 많은 합격자를 배출했다.

세광고에 따르면 2월3일 서울대가 정시모집 1차 합격자를 개별 통지한 결과 서울 영동고, 경기도 안산 동산고와 함께 23명의 합격자를 배출해 특수 목적고를 제외한 일반계 고교 가운데 전국 최고 수준을 기록한 것으로 확인됐다. 그러나 2월8일 2차 합격자 발표에서 영동고, 동산고가 각각 2명씩 추가 합격자를 배출함에 따라 공동 1위에서는 밀려났다.

세광고는 또 수시모집에서 일본 국립 공대 국비 유학생 3명을 배출한 것을 비롯해, 전국 의대·한의대 합격자 20명, 연세대 17명, 고려대 20명 합격 등 입시 전반에서 두각을 나타냈다.
세광고가 전국의 입시 명문고로 떠오른 것은 사실 어제 오늘의 일이 아니다. 하지만 서울대 합격자 등 단편적인 기준을 잣대로 학교 간 비교를 자제하는 교육부 방침에 따라 그동안 전국 10위권(서울대 합격자 수) 안팎을 오르내리는 동안에는 마음 놓고 드러낼 수 있는 상황도 아니었다. 그러나 2006 입시에서는 전국 최고의 반열에 오름에 따라 당연히 언론의 조명을 받게 된 것이다.

1953년 개교 이래 수십년 동안 후기 전형 고등학교라는 그늘에 가려 빛을 보지 못했던 세광고등학교가 ‘야구 명문’에서 ‘입시 명문’으로 발돋움하기까지 그 숨은 비결과 노력을 집중 취재했다. -편집자-

서울대, 주요 대학 ‘알짜배기 합격’
사실 입시성적만으로 학교의 순위를 매기는 것은 반 교육적이다. 더불어 특정 대학에 합격한 숫자만 놓고 학교의 실력을 평가하는 것은 비 과학적이다. 교육의 최우선은 사회에 기여할 수 있는 전인적 인간을 양성하는 것이고 따라서 인성교육이 무엇보다도 중요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일단 인성교육의 수준은 교육 여건 상 우리나라 대부분의 일반계 고등학교가 ‘대동소이’하다는 전제를 깔고 접근을 시작했다.
문제는 특정 대학에 합격한 숫자. 사실 그동안 일부 사립고들이 서울대 합격자 수를 부풀리기 위해 차상위급 대학의 합격선이 높은 학과 보다는 합격선이 상대적으로 낮은 서울대 비인기 학과로 진학을 유도했던 것은 널리 알려진 사실이다.
하지만 세광고 출신 2006학년도 서울대 합격자의 학부·학과를 분석해 보면 이런 ‘부풀리기 현상’은 눈에 띄지 않는다.

합격자 23명의 구성을 살펴보면 법과대학 2명, 약학대학 2명, 전기공학부·컴퓨터공 4명, 국어·수학·과학·국민윤리 등 교육계열 4명, 인문계열1·2 2명, 사회과학계열 1명, 공학계열 1명, 물리학부 1명, 화학생물공학부 2명, 기계항공공학부 1명, 지구환경과학부 1명, 식물생산산림과학군 1명, 바이오시스템조경 1명 등 다양한 분포를 보이기 때문이다.

최종 등록이 이뤄질 경우 다소 변동은 있겠지만 연세대 17명, 고려대 20명, 성균관대 21명, 한양대 21명, 외국어대 12명, 중앙대 8, 경희대 1명 등 수도권 대학 합격자도 상당한 수준에 이르고, 서울대 수준으로 평가되는 전국 의대·한의대 합격자 수도 20명에 달한다.

또 충북대 합격자도 104명이나 된다.
세광고 김시용 교장은 “세광고의 경우 이번 입시에서 90% 이상이 4년제에 진학했지만 대학 모집 정원이 입시생을 웃도는 상황에서 이는 중요하지 않다”면서 “명문대든 전문대든 본인이 희망하는 대학, 학과에 진학하면 그 자체가 축하할 일이 아니겠냐”고 말했다.

입시명문 견인차 ‘평준화’와 ‘한빛학사’
세광고를 입시명문으로 발돋움하게 만든 가장 큰 동력이 무엇인지는 이미 공공연히 알려진 사실이다. 1989년 12월 ‘통학불편’이라는 엄연한 현실을 무릅쓰고 청주의 도심부인 대성동에서 변두리인 미평동으로 배움터를 옮기면서 교육여건을 대폭 개선하고 장학생 전용 기숙사 성격의 한빛학사(당초 한빛숙소)를 운영하기 시작한 15년 전의 약속이 이제는 엄연한 전통으로 자리를 잡은 것이다.

세광고는 1999년 17명을 비롯해 2006년까지 해마다 16~30명씩 두 자리 수 서울대 합격자를 배출해 왔다.
그러나 1998년 별관 형태의 기숙사를 준공하기 이전까지 한빛학사는 별도의 건물도 없었다. 학교 지하 교실을 개조해 숙소로 만든 뒤 당시 오연진 교감을 실무자로 62명의 학생을 선발해 스티로폼과 전기장판을 깔고 생활한 것이 그 시초였다. 초기 한빛학사는 그야말로 반딧불이와 눈(雪)빛에 비춰 책을 읽었다는 ‘형설지공’의 수준. 현 김시용 교장도 초기 대표 사감 출신이다.

김 교장은 “추운 겨울에 자고 일어나면 눈썹에 서리가 앉을 정도였다”면서 “그래도 오전 6시에 기상해 약 3km의 아침 조깅으로 하루를 시작했으며, 식사는 학교 주변 일반 식당에서 월식으로 해결했다”고 당시를 회상했다.

이처럼 개조된 교실을 전전하던 중 1996년 학교 본관에 있던 정독실을 후관으로 이전하고 처음으로 ‘한빛학사’라는 현판을 내걸게 되는데, 이때 소요된 5000여만원의 예산은 22회 윤치환씨 등 동문회에서 힘을 보탰다. 또 1998년에는 마침내 별도의 기숙사인 한빛학사관을 준공하게 되는데, 이는 청주 제일교회가 교회설립 100주년 기념사업으로 기숙사 245평을 지어 기증한 것이다.

세광고는 한빛학사 외에도 차상위급 학생을 대상으로 자정까지 자율학습을 시키는 ‘달빛반’을 학년당 30명 규모로 운영하고 있다. 세광고의 신화는 이처럼 차등화를 통한 경쟁과 함께 고교 평준화의 토대 위에서 가능했다.
또 1995년부터 고교 신입생 선발이 ‘단순 추첨’에서 ‘지원 후 추첨제도’로 바뀌는 것을 고려해 적극적으로 우수 신입생 유치에 나선 것이 도움닫기의 힘을 하나로 모으는 구름판 역할을 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위기를 기회로 바꾼 ‘약속의 땅’
대성동 부지 59억에 팔고 4만여평 미평 새 교정 이전
세광고는 1980년대 중반 재단 운영의 어려움과 이사진의 분열 등으로 위기를 겪었으나 현 이쾌재 이사장이 취임하면서 미평동 이전을 추진, 위기를 기회로 전환시켰다. 훗날 ‘약속의 땅’이라는 찬사를 자아내게 만든 미평동 교정으로의 이전은 1988년 5월 대성동 학교부지를 건설업체 59억4000만원에 매각하면서 급물살을 타게 된다. 이전 부지가 드러날 경우 땅값이 상승될 것에 대비해 극비리에 적지를 물색한 결과 미평동 산 65-1번지 외 29필지, 총 4만여평을 16억96 00만원이라는 저렴한 가격에 매입하게 된 것이다.

세광학원은 1989년 3월 약 34억원에 토목·건축공사를 발주하고 8개월의 공정으로 세광중·고 공사를 마무리해 불과 1년만에 남는 장사를 하며 학교 부지를 넓히고 교사를 신축하는 ‘깜짝 쇼’를 마무리한다. 세광중·고의 이전 프로젝트 성공은 청주시내 일부 사학들이 머뭇거리다가 이전 시기를 놓치고 시설 개·보수 조차 이루지 못한 것과 극명한 대조를 보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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