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덕현 충청리뷰편집국장

97년 외환위기 때, 그 원인의 하나가 국민들의 정치의식 부족이라는 글을 본적이 있다.

여기서 말하는 정치의식은 지방선거를 앞둔 요즘처럼 눈치빠른 사람들이 이곳 저곳 줄을 서며 실리를 계산하거나, 혹은 고위 공무원이 승진과 출세를 위해 이당 저당 기웃거리는 해바라기 정치성(政治性)을 말하는 게 아니다.

시장경제에 대한 혜안과 식견이다. 글의 전체적 내용은 어? 하다가 국가 파산까지 부른 국가의 아마추어리즘을 질타한 것이다.

신한국창조를 부르짖다가 임기 말 졸지에 나락으로 빠진 김영삼대통령 역시 나중에 자신의 회고록에서 이를 질타해 눈길을 끌었다. 외환상태가 예사롭지 않다는 정보를 들은 김영삼은 당시 대그룹 총수와 경제관료를 일일이 불러 의견을 구했는데, 이들이 건넨 말은 하나같이 “지금의 경제상황이 심각하기는 하지만 앞으로는 전망이 좋다”, “기초가 튼튼하기 때문에 곧 나아질 것이다”였다.

김영삼은 나중에 “학자나 연구기관, 심지어 언론까지 나에게 IMF로 가야할 정도의 위기상황임을 사전에 말해 준 사람은 하나도 없었다”고 후회했다. 그나마 경제부총리를 지낸 충북출신 홍재형의원과 당시 청와대 경제비서관이던 윤진식 전 산자부장관이 막판에 그들의 표현대로 ‘맞아 죽을 각오’로 직언함으로써 대비를 앞당긴 것은 다행중에 다행이다.

충북도 정무부지사 자리가 결국 공석이 됐다. 후임으로 내정된 인사가 친여라는 한나라당의 공세로 임명이 무산됐기 때문이다. 일련의 과정을 지켜보면서 도민들은 과연 어떤 생각을 할까 궁금하지 않을 수 없다.

정무직은 원래 강한 정치성을 띤다. 때문에 그에 주어진 역할도 대(對 )정당이나 언론관계, 그리고 외부행사 참여 등 대외활동이다. 이처럼 정치성을 띠는 자리가 정치성 때문에 공석으로 남아 있다는 사실은 참으로 아이러니컬하다. 결국 충북도는 가장 중요한 시기에 가장 중요한 자리를 비우게 됐다.

조직의 수장인 이원종지사는 불출마와 정계은퇴를 선언했다. 이에 대한 논의는 차치하더라도 선출직의 과도기에 충북도를 대표해 밖으로 나돌(?) 사람이 없어진 것이다. 지금의 상황을 고려한다면 정치성 인사를 배척하기 보다는 오히려 더 그런 인사를 그 자리에 앉힐 필요가 있다.

당초 내정됐던 인사가 한나라당 우려대로 자리를 꿰차고 앉아 여당이나 챙기고 선거에 개입하는 그럴만한 인물이었다면 차라리 내정자가 아닌 이지사가 충북도를 떠났어야 옳다. 그렇지 않다면 지금 한 자리, 한사람이 아쉬운 상황에서 정무부지사를 공석으로 남길 명분은 조금도 없다.

한나라당은 이에 대해 분명한 답을 내야 할 것이다. 이유는 또 있다. 정무부지사직을 초장부터 막판까지 원한 것은 한나라당이다. 만약 내정자가 친여 인사가 아니고 한나라당 인사였다면 어떻게 했겠나. 여기에 대해서도 해명해야 할 것이다.

한나라당에 항상 아쉬운 것이 하나 있다. 정치를 너무 단견적으로 본다는 것이다. 과거 50년의 여당전력이 변화와 추세에 둔감하게 만들었는지는 잘 모르겠지만 결정적일 때 너무 조급하게 집착한다고 지적하면 부인하겠나. 지난 두 번의 대선실패가 좋은 교훈을 안겼는데도 말이다.

정무부지사 공석은 하루 빨리 불식시킬 필요가 있다. 안 된 얘기이지만 선거 때 일수록 지역현안의 해결은 빨라질 수 있다. 그런데 우리는 이 역할을 수행할 사람을 아예 내팽개쳤다. 엄밀한 의미에서 이는 도민들을 기만하는 직무유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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