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족의 대이동이 시작됐습니다. 설을 맞아 이미 전국의 모든 도로는 귀성차량으로 홍수를 이루고 있습니다. 총 인구 4800만 가운데 3000만이 모두들 제 고향을 향해 한꺼번에 몰려들 가고 있으니 민족의 대이동이란 표현이 그럴듯합니다.

동물은 원초적으로 귀소본능(歸巢本能)을 갖고 있다고 합니다. 온 종일 하늘을 날던 새들은 해가 지면 둥지로 돌아가고 광야를 헤매던 들짐승들은 굴을 찾아들듯 때가 되면 자신을 낳아준 곳으로 돌아가고자 하는 본능을 갖고 있다는 것입니다. 인간 또한 다를 바가 없습니다.

중국 한나라 때의 시집 ‘한시외전(漢詩外傳)’에 보면 ‘호마의북풍 월조소남지(胡馬依北風 越鳥巢南枝)’라는 구절이 나옵니다. 북에서 온 말은 북쪽 바람을 향해 기대서고 남에서 온 월 나라 새는 남쪽 가지를 골라 둥지를 튼다는 뜻입니다.

죽음에 임하매 제가 난 고향언덕을 향해 머리를 두고 눈을 감는다는 여우의 수구지심(首丘之心) 또한 그와 다르지 않습니다. 한낮 짐승일지언정 제 난 곳을 잊지 못하는 원초적 귀소본능 때문일 터입니다.

중국의 ‘수서(隋書)’에 음력 정월 초하루를 ‘신라의 국경일’이라고 한 것을 보면 우리의 설은 천년이 훨씬 넘는 긴 역사를 이어 오고있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그러나 민족 최대의 명절인 설은 근·현대에 들어와 많은 수난을 당했습니다. 1895년 양력이 도입되면서 신정(新正)에 밀려난 설은 일제35년 동안 금기(禁忌)의 축일이 되었고 해방이 된 뒤에도 ‘구시대의 유물’, ‘생산성 저하’라는 미명하에 역대정부의 억압을 받으며 ‘구정(舊正)’이란 이름으로 ‘반쪽명절’로 명맥을 유지해 왔습니다.

설이 ‘복권’된 것은 1989년. 온갖 ‘탄압’에도 불구하고 민초들에 의해 끈질기게 이어져 온 설은 90여 년만에 비로소 해금(解禁)이 되어 국민에게 되돌아왔고 국민적 사랑 속에 오늘 가장 큰 명절이 되고있는 것입니다.

누구에게나 고향은 영원한 안식처입니다. 땅속에 선조 들이 묻혀있는 그곳에는 부모 형제, 혈육들이 기다리고 있고 어린 시절의 꿈이 살아 숨쉬고 있습니다. 비록 노고지리 우짖던 뒷동산도, 송사리 헤엄치던 시냇물도 찾아볼 수 없는 옛 날 그 고향은 아닐지라도 흙 냄새는 예전 그대로요, 가슴 속 따뜻한 인정 또한 옛 그대로입니다.

고향은 좋은 곳입니다. 그러기에 고향으로 가는 길이 차량 홍수를 이루어 고생길이 되고있지만 그 고생길을 마다 않고 너도나도 고향으로, 고향으로 돌아들 가는 것입니다.

그러나 명절이 즐거운 것만은 아닙니다. 명절이 되면 오히려 더 외로운 사람들이 적지 않기 때문입니다. 남들이 모두 고향으로 가는데 갈곳이 없는 사람들이 있고 가고 싶어도 가지 못하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직장이 없어 거리를 배회하는 사람들이 있고 생활이 어려운 영세민들, 체불노동자들, 보호시설의 무의탁 노인들과 어린아이들에게 명절은 더욱 쓸쓸할 수밖에 없습니다. 우리 사회가 풀어야 할 과제입니다.

어떻거나 명절은 즐겁습니다. ‘도처에 청산이 있다하되, 고향산천 그리움 그칠 줄 있을까.’ 옛 시인의 한마디가 가슴을 더욱 뜨겁게 합니다. 즐거운 명절 되십시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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