협상에 앞서 민주노총 배제 여부등 입장 정리해야
이 지사, 불출마 위상 축소 됐어도‘최후 해결사’ 기대

1월18일 오전 10시 하이닉스·매그나칩 문제 해결을 위한 충북범도민대책위원회 관계자 5명이 충북도를 방문해 이원종 지사를 만났다. 노사정위원회의 권고에도 불구하고 노사가 직접 대화의 물꼬를 트지 못하고 있는 상황에서 이 지사의 조율이 필요하다는 판단에 따른 것이었다.

이원종 지사는 이날 “하이닉스·매그나칩 문제는 너무 오래 끌어왔고, 양자의 입장이 가까워지지 않아 고민스럽다”며 “시민단체들이 이렇게 나서줘서 고맙고, 빨리 해결됐으면 좋겠다”는 말로 범대위 관계자들을 맞이했다.

이 지사는 또 “불출마 선언을 하고 보니 남은 기간은 얼마 안되고, 욕심 같아서는 이런저런 문제를 다 해결한 뒤 후임자에게 넘겨주고 싶지만 상황이 여의치 않다”고 운을 뗀 뒤 꼭 임기 안에 마무리하고 싶은 세 가지 문제에 대해 언급했다.

이 지사가 숙제라고 언급한 세 가지 과제는 첫째가 오송단지 안에 외국인 전용단지를 조성해 다국적 기업을 유치하는 것이고, 둘째는 혁신도시 후폭풍 정리, 셋째가 하이닉스·매그나칩 문제 해결이었다. 불출마 선언에 따라 차기를 의식하지 않는 발언인 점을 고려할 때 적극적인 역할이 기대되는 대목이었다.

조율할 모종의 역할은 무엇?
이날 회의는 사진촬영 뒤 기자들을 내보낸 채 비공개로 진행됐다. 다만 범대위 실무간사를 맡고 있는 청주 경실련 이두영 사무처장에 따르면 “범대위와 함께 문제 해결에 적극 나서겠다”는 이원종 지사의 의사표명이 있었던 것으로 확인됐다.
이두영 사무처장은 “이원종 지사가 구체적인 방안과 관련해 도 실무자와 협의해 자신의 역할을 찾아달라고 주문했다”며 “그 구체적인 역할이 무엇인지는 조금 더 고민과 논의가 필요한 부분”이라고 밝혔다.

그러나 이원종 지사가 처음부터 노사 양측을 한 자리에 불러 직접 대화를 주선하는 식의 적극적인 중재에 나서지는 않을 것으로 보인다. 1년이 넘도록 직장폐쇄와 농성이 진행되면서 대화를 가로막고 있는 걸림돌이 산재해있기 때문이다.

이에 따라 이 지사의 역할은 범대위가 노사 양측을 따로 만나 대화에 걸림돌이 되는 문제를 해결한 뒤에 협상을 급진전 시키는 ‘최후의 해결사’가 될 가능성이 높다.
이두영 사무처장은 “이원종 지사가 의욕은 가지고 있지만 서울에 본사를 둔 사측의 고위층에게 발휘할 수 있는 특별한 영향력이 있는 것도 아니다. 더구나 차기 불출마를 선언했기 때문에 그 영향력은 더욱 축소된 상황”이라고 말했다.

충청북도 경제통상국 관계자도 “노사문제 중재에 대한 법적 권한이 있는 중앙 노사정위도 제대로 역할을 하지 못하는 상황에서 권한과 책임이 없는 도 노사정위의 활동에는 한계가 분명하다”며 “노사 양측에 대해 성실한 대화를 권고하는 수준에 그치다 보니 자주 답답함을 느끼게 된다”고 밝혔다. 결국 이원종 지사의 역할도 도 노사정위가 가진 권한의 테두리에서 벗어나지 않을 가능성이 높다는 것이다.

범대위, 상황에 따라 누구든 압박
지역의 시민사회단체들로 구성된 범대위는 문제해결에 있어 ‘대화에 소극적일 경우 노사를 가리지 않고 압박전술을 사용한다’는 적극적인 입장을 보이고 있다. 범대위는 또 노·사 가운데 어느 편도 들지 않는 중립적, 한시적 조직이며 문제가 해결되지 않거나 진전이 없을 경우 활동을 중단한다는 원칙도 세워놓고 있다.

압박전술은 각각 교섭의 조건을 제시해 수용하도록 촉구하고 수용하지 않을 경우 강도를 높여 비판하고 압박한다는 것이다. 범대위는 직접 대화를 유도하기 위해 일단 노조 측에 상경 농성을 중지하고 청주 공장 앞에 설치한 만장 등 시위용품도 자진 철거하도록 제안할 계획이다.

또 일체의 교섭 테이블에 민주노총이 나서지 말아줄 것을 요구할 방침이다. 범대위는 이를 위해 민주노총에 협조를 요청하고 공식 입장을 확인할 예정이다. 결국 당사자 뿐만 아니라 제3자도 상황에 따라 압박의 대상이 될 수 있다는 얘기다.

이와 관련해 민주노총은 ‘교섭 테이블에서 빠져주는 것은 가능하지만 교섭 자체가 복직을 전제로 한 만남이 되어야 한다’는 원칙을 분명히 하고 있다.
결국 교섭 테이블에 ‘민주노총의 자리가 마련되느냐’ 여부가 대화의 성사를 결정 지을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이두영 사무처장은 “지금은 인도적 차원에서 접근해야 하는 상황이다. 범대위가 해결 시점을 설 이전으로 잡았고 이원종 지사도 이에 공감했다. 더 자세한 내용은 전술 차원에서 상세하게 밝히지 못하는 점을 이해해 달라”고 말했다.

회심의 정진태 카드 무산 아쉬움
스스로도 말했듯 세 건의 숙제를 남겨두고 있는 이원종 지사는 최근 정진태 산자부장관 보좌관을 한범덕 정무부지사의 후임으로 내정했다가 본인의 고사로 원점으로 되돌려야 했다. 이 지사가 다소 뜻밖의 정진태 카드를 내밀었던 이유는 18일 범대위와의 면담 과정에서 확연하게 드러났다. 숙제 가운데 두 건이 정 보좌관과 연결 고리를 맺고 있기 때문이다.

먼저 오송외국인전용단지의 경우 산자부의 자금지원 등이 과제로 남겨져 있다.
또 서울대 73학번인 정진태 보좌관은 1976년부터 1990년대 초반까지 노동현장에서 노동운동에 투신했던 경력이 있어 정무부지사로 취임할 경우 하이닉스·매그나칩 문제 해결에 일익을 담당할 것으로 기대됐었다.

실제로 정 보좌관은 부지사로 내정된 1월14일 매그나칩 농성현장을 방문해 박순호 직무대행 등을 만나기도 했다.
정 보좌관은 이날 방문과 관련해 “금요일 친지들과 모임이 있어서 청주에 왔다가 농성현장을 찾아본 것일 뿐 다른 의미는 없었다”며 “정무부지사로 가면 자유롭지 못할 것 같아 내정자 상태에서 앞당겨 방문했다”고 설명하기도 했다.
정 보좌관은 또 “회사 측의 중간 관리자를 이미 만난적이 있다”고 밝혀 적극적인 중재역할이 기대됐었다.

그러나 한나라당을 탈당한 이 지사가 친여 성향의 정 보좌관을 정무부지사에 내정한 것과 관련해 한나라당의 비난이 쏟아지자 정 보좌관 스스로 정무 취임을 고사해 이 지사가 내밀었던 회심의 카드는 무산되고 말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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