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 혁 상충북인뉴스편집장

어쩌면, 4일 밤 이원종 지사는 40여년 공직생활 중에 가장 달콤한 잠을 이뤘을지 모른다. 이 지사의 표현대로 “하루도 긴장을 늦추지 않고 살아온” 직업 관료이자 정치인인 그가 자연인 복귀를 선언했기 때문이다. “적절한 시기에 명예롭게 퇴장하는 것이 평소의 소망이었고, 지금이 바로 그때인 것 같습니다”

4일 아침, 도지사의 갑작스런 기자회견 일정이 발표될 때까지도 대부분의 취재기자들은 ‘정계은퇴’ 선언은 예상치 못했다. 당초 1월 중순으로 잡았던 거취표명 시기가 앞당겨진 데 대해 ‘불출마’ 선언 ‘정도’로 판단했다. ‘정도’라도 표현한 것은 불출마 선언이후 또다른 정치적 수순이 있지 않겠느냐는 전제가 깔렸기 때문이다.

고백컨데, 필자도 기자회견 1시간 전부터 이 지사의 불출마 이후 정치행보에 대한 예상기사를 열심히 쓰고 있었다. 하지만 예상은 보기좋게 빗나갔고 사전 작성된 기사는 곧장 컴퓨터에서 삭제됐다. 정치와 정치인에 대한 판에 박힌 고정관념이 일순간 무너지는 묘한(?) 기분이었다. 잠시 머릿속이 멍해졌지만 그 뒷끝은 박하사탕같은 여운으로 채워졌다.

이 지사의 은퇴선언을 그저 ‘신선한 충격’ ‘고뇌의 결단’이란 상투적 표현으로 설명하고 싶진 않다. 최고의 자리에서, 최상의 조건을 거부하고 겸허하게 머리를 숙이는 공직자의 모습은 충분히 아름다웠다. 또한 43년 공직생활의 정점에서 자신을 비울 줄 아는 여유로움이 부러웠다.

또 하나 고백컨데, 지난해 청주청원 통합문제가 지역의 핫이슈가 됐을 때 필자는 이 지사의 아픈 곳에 소금을 뿌린 적이 있다. ‘이원종지사의 떠올리고 싶지않은 기억’이란 제목의 칼럼이었다. “정통 엘리트관료인 이원종 지사가 떠올리고 싶어하지 않은 두가지 기억이 있다. 화재와 부실시공으로 무너진 청주 우암동 아파트와 서울 성수대교다. 청주시 청원군 통합이 이지사에게 3번째의 아픈 기억으로 남지 않길 바랄 뿐이다”

43년 공직생활 중 가장 큰 위기이자 시련이었고 그래서 그 내상이 남아있을 만한 상처를 건드린 것이다. 평소 이 지사는 수많은 희생자가 발생한 두 가지 사건에 대해 추억하기를 괴로워했던 것으로 알려졌다.(그 괴로움을 의도한 ‘발칙한’ 글쓰기에 대해 늦게나마 이 지사에게 사과인사를 드린다) 하지만, 우암아파트와 성수대교의 상처가 그의 청빈한 공직생활에 밑거름이 되지 않았나 생각된다.

그는 자신과 가족들의 축하할만한 경사도 결코 소문내지 않고 조촐하게 치렀다. 자녀들의 결혼식이나 본인의 환갑도 비서진을 함구시킨채 주변에 부담을 주지 않았다.

오히려 이같은 처신이 고도의 정치성을 내포한 것이 아니냐는 오해를 낳기도 했다. 세심한 주변관리가 보신주의적 관료행태로 비쳐지기도 했다. 하지만 이 지사가 충북도백으로 재임한 지난 10년간 어떠한 개인비리 의혹에도 연루되지 않았다는 점을 주목해야 한다. 수천억대의 예산을 집행하고 수천명의 공직 인사권을 가진 도지사의 ‘금도’를 유감없이 보여준 결과라고 생각한다.

마지막으로 이 지사에게 고백이 아닌 부탁의 말씀을 드리고 싶다. 설사 임기를 마치고 정계은퇴를 하더라도 결코 충북을 떠나지 말라는 부탁이다. 후진을 위해 자리만 물려줄 것이 아니라 40여년의 경험과 경륜을 좀 더 전수해 달라는 것이다. 공직은퇴후 ‘상경’이라는 도식에서 벗어나 ‘알쫑이 어른’으로 지역에 터잡아 주시길 바란다. 그렇다면 이 부족한 고향 후배에게도 ‘아름다운’ 선배와 허물없이 ‘티샷’ 한번 할 수 있는 기회가 오지 않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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