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뎃잠 1년 매그나칩 하청노조 단식으로 대화 촉구< br>회사측 제기 손배소만 28억원, 나락으로 추락한 생계

아침 체감온도가 영하 10도 아래로 내려간 12월27일 오전 10시30분, 청주산단 하이닉스 반도체 앞에서 꼭 1년 동안 한뎃잠을 자온 매그나칩 노동자 120여명의 목소리가 언 하늘에 울려퍼졌다.

‘대화를 하라’는 노사정협의회의 권고안이 나왔음에도 묵묵부답인 회사측에게 이행방안을 제시하고 직접 대화에 나설 것을 촉구하는 하이닉스 매그나칩 하청 노조원들의 시위였다. 집회 중에 박순호 지회장 직무대행과 임헌진 사무장이 상복을 입고 무기한 단식에 들어감을 선포했다. 1년 동안 충분히 굶주렸지만 다시 기약없는 단식에 들어가는 그들의 진정한 속내는 무엇일까?

박순호 직무대행(사진)과의 인터뷰를 통해 매그나칩 노동자들의 곤한 1년을 되돌아봤다. -편집자 주

비정규직 노조원인 이들에게 크리스마스는 잔인하다. 2004년 12월25일 새벽 4시 직장폐쇄와 함께 거리로 내몰린데다, 올해 또 다시 길 위에서 크리스마스를 맞이했기 때문이다. 사랑을 전하러온 예수의 탄생을 기리는 캐롤의 음률이 끝없이 추락했던 지난 1년을 억지로 추억하게 만드는데 이들은 곱절로 참담함을 느꼈다. 천막 안에서 한뎃잠을 잔 시간만 350일에 이른다.

박순호(39) 금속노조 대전충북지부 하이닉스 매그나칩 사내하청지회장 직무대행은 10월21일 집회과정에서 신재교(35) 지회장이 연행, 구속되면서 직무를 대행하고 있다.
임헌진 사무장과 함께 단식농성에 들어간 박 직무대행은 “이제 대화의 물꼬를 트기 위해 모든 것을 양보했다”며 마르고 부르튼 입술로 힘겹게 말을 이어갔다.

매그나칩 노동자들이 대표자 단식이라는 카드를 빼어든 것은 충청북도 노사정협의회가 12월22일 화해권고안을 냈고 범도민대책위, 충북지방노동위원회 등도 이구동성으로 대화를 촉구하는 등 뒤늦게나마 사태의 해결을 바라는 지역사회의 여론이 불붙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말이 1년이지 나이도 젊고 벌어놓은 것도 없는 우리들에게는 매 순간이 한계상황이었다”는 박순호 직무대행의 말처럼 ‘공장으로 돌아가고 싶다’는 이들의 소망은 절실한 생존의 문제다.

그렇다면 이들은 왜 직장폐쇄로 거리에 내몰려 기약없는 투쟁에 들어갔을까?
이에 대해 박씨는 “회사가 어려울 때 참고 일했고 사상 최대의 이익을 낸 상황에서 최저임금을 보장해줄 것을 요구했지만, 비정규직이라는 이유로 대책없이 쫓겨났다”며, “1년이 되도록 대답없는 메아리만 돌아왔다”고 설명했다.

실제로 2004년 10월 하이닉스반도체로부터 비메모리 분야를 분사해 설립한 매그나칩 반도체는 첫해에 580억원이라는 순이익을 올려 직원들에게 성과급까지 지불했지만 원청이 아닌 하청노조는 이 화려한 잔치에 초대하지 않았던것이다.

1년차와 7년차 월급이 같아
박씨는 올해로 입사 12년이 됐지만 처음부터 ‘찬밥’ 대우를 받았던 것은 아니다. 1993년 당시 LG반도체에 입사했을 때 “회사 관계자로부터 비정규직이지만 대우는 똑같다는 설명을 들었고 실제로도 1998년 9월까지 이같은 약속이 지켜졌다”는 것이다.
그러나 IMF사태의 후폭풍이 반도체 업계를 강타하고 현대반도체와 빅딜이 추진되면서 급여삭감 등이 이뤄진 것이 신호탄이었다.

최저임금 수준에도 못미치는 기본급이 책정되고 ‘윗 벽돌을 빼 아래를 고이는 식’으로 상여금과 수당을 줄여 기본급을 채우는 상황이 지속되다 보니 직장폐쇄 당시의 임금이 1996년 수준 이하로 하락하는 현상이 발생한 것이다.

그는 “1년차와 7년차 임금이 동일한 수준일 정도니 어떻게 일할 의욕이 생겼겠냐”며 “최소한의 인간적인 대우를 요구하기 위해 노조를 만들었는데 직장을 문닫고 대화에도 응하지 않으니 참담한 배신감만 느끼게 된다”며 울분을 토했다.

사측과 대화하기 위해 ‘부당해고 구제신청’ 등 최후의 보루까지 철회한 이들의 목표는 이제 공장으로 돌아가는 것이다. 비정규직이라는 약자의 조건에서 1년을 투쟁한 만큼 ‘자존심’만 지켜준다면 다시 일터에서 희망찬 아침을 맞고 싶다는 소망 뿐이다.
박씨는 27살의 나이에 첫 직장으로 당시 LG반도체에 취업했으며 온·습도 조절과 먼지제거 등 크린룸의 환경을 조성하는 공조파트에서 일해왔다.

나와버리면 차라리 속이 편하지만…
1년을 실직자로 살아온 이들의 살림살이는 어떨까?
그는 이에 대해 “우리야 차라리 농성현장에 나와 버리면 차라리 속이 편하지만 집에 있는 아내와 아이들의 고생은 이만저만이 이루 말할 수 없다”는 말로 고충을 토로했다.

그는 또 “조합원 대부분이 9, 10월까지는 주말에 공사판을 찾아다녔고 택배, 대리운전, 피씨방 아르바이트 등 밤에 하는 일은 안해본 것이 없다”며 생계를 위한 처절한 몸부림에 대해 소개했다.
문제는 대부분의 노동자들이 30~40대로 젊다 보니 벌어놓은 돈도 없을뿐더러 아이들이 어려 맞벌이에 나서기에도 한계가 있다는 것이다. 엎친데 덮친 격으로 집 안에 환자까지 생기면 병수발을 할 사람도 없는 상황이다.

실제로 부인의 암투병을 힘겹게 지켜보고 있는 조합원을 비롯해 산소호흡기를 쓰고 있는 어머니를 손수 간호해야 하는 조합원 등 목메이는 사연은 끝이 없다.
박씨는 “텔레비전에 나오는 단전 단수가 남의 이야기가 아니다. 아이 셋을 키우는 한 조합원이 전기요금을 못내 전기가 끊겼는데 몇몇 조합원들이 돈을 걷어 요금을 내주기도 했다”며 절박한 상황을 설명했다.

이밖에 지난 10월 지회장 연행 시 경찰에 저항하다 목뼈를 다친 변상인(45)씨는 아직도 하나병원에 누워있고, 조합원 대부분이 위장병과 피부병 등에 시달리고 있다.
그는 “사실 더 어렵고 고통스러운 일들이 많겠지만 서로 힘든 것을 알기 때문에 아예 힘든 얘기는 꺼내지도 않는다”고 덧붙였다.

이처럼 이들의 생계는 나락으로 추락했지만 회사측의 법적인 공세로 이들이 짊어져야 하는 부채는 눈덩이처럼 늘어가고 있다. 회사 측이 업무방해에 따른 손해와 집회를 막기 위한 용역비용 등을 모두 노조에 전가하고 있어 현재까지 제기된 손배소 금액만도 하이닉스가 제기한 14억원을 포함해 모두 28억원에 이르는 것.

또 민주노총 관계자 5명을 포함해 12명이 재판에 계류 중이며 10여명이 약식기소돼 부과된 벌금도 1000만원에 이른다. 또 40여명이 추가로 약식 기소된 상태여서 빚잔치만 이들을 기다리고 있을 뿐이다.

박씨는 “회사는 우리가 무엇을 바라는지 알려고도 하지 않고 무조건 깨려고만 했다. 거기에서 모든 문제가 비롯됐다. 원인이 무엇인지 분석하면 해법도 있을 것으로 본다”며 “비록 현실은 힘들지만 미래를 비관하지 않는다”며 의지를 불태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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