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덕 현 편집국장

전라남도 진도에 가면 우선 색다른 분위기를 안기는 게 하나 있다. 입구쪽의 야산에 만들어진 진도개 형상물이다. 큰 도로 옆이다 보니 항상 오가는 사람들의 시선을 끈다.

흥미있는 것은 이 진도개 형상에 대한 해석이 천차만별이라는 사실이다. 물론 진도 특산품인 진도개를 상징하는 것인데도, 사람들은 여러 얘기를 만들어 낸다.

집나간 진도개가 몇 년이 지나 주인 찾아 온 것을 기념했다느니, 물에 빠진 주인을 구하고 장렬하게(?) 익사한 충견을 기리는 것이라느니, 하여간 전설같은 얘기가 많다. 공통점이 있다면 주인에 대한 개의 충성심이나 충직함이 항상 스토리의 알맹이가 된다는 점이다. 이는 얘기를 만들어 내는 사람들 스스로 이미 진도개와 충성심을 하나로 보기 때문이다.

꼭 애견을 탐하거나 선천적으로 동물을 사랑하는 것은 아니지만 그동안 여러번 애견을 길렀고 지금도 기르고 있다. 단독주택에 살다 보니 지인이 아파트로 이사가거나, 아주 멀리 떠날 때 키워 달라고 맡긴 것 들이다.

사실 여러 마리와 동고동락했는데도 내가 직접 구입한 것은 하나도 없다. 애견의 종류에 대해선 자세히 아는 게 없다. 다만 지금까지 나를 거쳐 간 시베리안 허스키, 코커스파니엘, 비글, 맹인견(종류는 모름) 등은 여전히 기억에 선하고, 거리를 지나다가 애견센터와 부딪치기라도 하면 내가 길렀던 애견 종류에 특히 시선이 많이 간다.

나 역시 개에 대한 선입견은 ‘참 충직하다’로 각인돼 있다. 일찍 들어가 건 늦게 들어가 건, 맑은 정신으로 들어가 건 술에 절어 들어가 건, 늘 일관되게 반기는 것은 오로지 문 앞에 웅크리고 앉아 기다리던 ‘개’다. 개에 대한 최고의 찬사, 사람보다 낫다는 말은 한번 개를 길러본 이면 언제든지 실감한다.

간혹 자신이 기르던 도사견에 물려 주인이 비명횡사하는 소식도 전해지지만 내가 아는 한 이는 개의 본성이 아니다. 주인의 사랑이 배제된 채 오로지 판매용으로 사육되는 개에서만 나타나는 ‘일탈’에 불과하다. 개는 주인의 사랑과 관심에 반드시 충성으로 보답한다. 이것이 아니면 주인 잃은 개가 식음을 전폐하는 이유를 도저히 찾지 못한다.

2006년 개띠의 해엔 개의 충성심과 충직함이 우리 사회에 충만했으면 하는 바람 간절하다. 너무 안 좋은 모습을 많이 봐 왔기 때문이다. 과학자로서 국가에 대한 충직함이 남다르게 비쳐졌던 황우석박사가 졸지에 추락하는 모습은 참으로 국민들을 고통스럽게 만들었다. 그러면서 사람들의 믿음이 저렇게까지 형이하학적일까, 상실감을 떨쳐 버리지 못하는 것이다.

개인적으로도 지난 한 해는 우리 사회의 충직함에 대해 많이 생각하는 시간이 됐다. 특히 한 때 상사로 모셨던 분과의 각종 송사는 정신까지 황폐하게 하는 것같아 정말 내키지 않았다. 아무리 이해관계가 다르다고 해도 어떻게 사람들이 저렇게 뻔한 거짓말을 쉽게 할 수 있을까, 도저히 이해되지 않았다.

“사람들아 송사하지 말라”는 선인들의 가르침을 곱씹으면서 마음 한 구석에 항상 떠올렸던 것은 다름 아닌 사람 사이의 믿음과 충직함이다. 하지만 이것이 수시로 표변할 땐 안타까움을 넘어 큰 좌절감으로 가슴에 못질을 당하는 기분이었다. 그래서 올해는 간절히 바란다. 한번 믿었던 사람끼리는 마지막까지 ‘충직함’을 버리지 말자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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