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주시 신대동 정진철씨 일가, 한자리에서 150년
90살 방순남 할머니 정정, 머지 않아 5대도 가능

급격한 도시화와 경제난 등으로 인한 ‘가족 공동체의 해체’가 사회문제로 비화되는 가운데 4대가 한지붕 아래 사는 비둘기 가족이 있다. 더구나 이들 가족은 아르바이트를 하러 왔던 외톨이 고학생까지 식구로 받아들여 ‘피도 물도 모두 진할 수 있다’는 새로운 사례를 만들어냈다.

새로운 사례의 창출은 여기서 끝이 아니다. 이 집에서 가장 어른인 방순남(90) 할머니가 아직도 손수 농사를 지을 만큼 정정한데다, 20살을 넘긴 증손주(큰아들 진석씨의 아들)까지 있어 머지 않아 ‘5대 한가족’이 현실화 될 가능성이 높기 때문이다.

4대가 한 집에 사는 비둘기 가족의 가장은 청주시 흥덕구 신대동(행정동은 강서2동)의 3통장 정진철(38)씨다. 6대째 내려오는 집에 살고 있는 정씨는 지난 2000년 세상을 떠난 정상규씨와 김애자(66)씨 부부 사이에 3남1녀 가운데 막내로 태어났지만 대학교를 졸업하고 결혼을 한 뒤 고향을 지키며 4대 한가족을 이끌고 있다.

▲ 며느리 3대. 가운데가 방순남(90) 할머니. 텃밭 300평 일구는 1세대 방 할머니 비둘기 가족의 1세대인 방순남 할머니는 아흔이라는 나이가 도저히 믿기지 않을 만큼 정정하다. 누구도 손대지 못하게 혼자서 텃밭에 고추며 상추, 배추, 감자 등을 일궈 밑반찬을 대는데 그 규모가 300평이라고 하니 두 말 하면 잔소리다. 방 할머니는 꼿꼿한 허리에 젊은이 못지 않게 잰 걸음걸이, 소곤거리는 대화까지 참견할 정도로 밝은 귀로 집안의 어른 노릇을 톡톡히 하고 있다. 증손주 셋을 모두 업어키웠는데, 지금도 막내 손자 대연(6)이가 유치원에서 돌아오는 오후 4시면 대문 앞 양지 바른 곳에서 기다리는 것이 어김없는 일상 가운데 하나다. 방 할머니가 충남 연기군에서 신대리 하동 정씨 집안의 종가집 종부로 시집을 온 것은 18살이 되던 1933년. 두 살 어린 신랑에, 시부모는 33살 동갑내기였다. 시조부모 또한 각각 56살, 58살이었으니 방 할머니가 아이(1남1녀)를 낳으면서 이 때부터 ‘4대 집안’의 내력이 시작된다. 그러나 방 할머니의 일생이 마냥 비단길은 아니었다. 신혼초 남편 정일섭 할아버지가 서울로 공부를 하러 떠난 뒤 시앗을 얻어 집으로 돌아오지 않았기 때문이다. 젊은 나이에 청상 아닌 청상이 된 방 할머니는 시 조부모까지 모시고 살았지만 친부모 이상으로 정겹게 지내 기억할만한 시집살이는 없었다고 한다. 방 할머니는 현재 자신의 나이 보다 더 오래된 신대교회(102년 역사)의 신도로 60년을 빠짐없이 새벽기도에 나가는 신자 중에서도 찰신자다. “시집 온 이듬해 까치내 둑을 쌓았고, 오막살이부터 교회를 옮기는 것만 3번 보았다”고 말하니, 할머니가 내뱉는 한마디 한마디가 신대리의 역사다. 대가족 운명 짊어진 정진철씨 ▲ 정진철씨 가족이 이른 아침 한데 모여 식사를 하고 있다. 8식구의 아침식사를 준비하는 부인 김혜영씨의 아침은 오전 5시 30분에 시작된다.
비둘기 가족의 가장인 정진철씨는 38살의 젊은이다. 청주시 체육회 운영과장과 도 전문건설협 사무국장을 지낸 아버지 정상규씨가 세상을 떠난데다 큰형 정진석(45)씨 등 두 형이 객지생활을 하는 가운데 고향을 지키고 있다.

대성중 재학시절부터 유도에 입문했던 정씨는 유도 명문 청석고에서 선수생황을 거쳐 청주대 체육교육학과를 졸업한 뒤 2~3년 사회생활을 하다 6대가 이어살고 있는 신대동 고향집으로 돌아왔다.

경기도 장호원고에서 연식 정구팀을 지도했던 매형의 소개로 당시 고교졸업반 김혜영(33)씨를 아내로 맞아 주연(14), 정연(12) 두 딸과 막내 아들 대연(6)을 낳았다.

아이들과 증조모인 방 할머니 사이에는 80년이라는 세월의 벽이 존재하지만 이들 가족에게는 아무런 의미가 없다. “땅에다 놓지도 않고 업어 키웠다”는 정씨의 설명처럼 증조할머니의 손주사랑이 각별하기 때문이다.

실제로 증손녀 주연이는 “우리 학교에서 증조할머니가 있는 사람은 나밖에 없다”며 증조할머니의 존재를 자랑스러워 한다는 것.
정씨의 어머니인 김애자(66)씨는 사회생활을 하던 남편을 따라 청주에서 생활을 하다 이제는 시어머니, 막내 아들과 함께 4대 가족의 한축을 이루고 있다.

김씨는 시어머니 방씨에 대해 “종가집 종부로 중풍에 걸린 시어머니를 극진히 모셔 효부상을 2차례나 탔다”며 “자신은 객지(청주 시내) 생활을 하느라 그저 드나드는 며느리 였다”고 겸손함을 나타냈다.

이들 가정에는 혈연은 없지만 8년째 한솥밥을 먹는 식구가 있다. 아이들이 삼촌이라고 부르는 권종수(32·가명)씨다. 경기도가 고향인 권씨는 부모를 잃고 도내 모 대학을 다니며 고학을 하던 중 정씨집에 아르바이트를 하러 왔다가 정씨의 아버지인 정상규씨의 눈에 들어 이 집에 눌러앉은 세월이 8년이다.

어려운 상황 속에서도 대학원을 졸업하고 지금은 모교에서 강의를 하며 박사과정을 수료하고 논문을 준비하고 있다. 정씨는 “아버지가 암으로 투병중일 때 밥을 지어 나른 것은 물론이고, 공부가 바쁜 중에도 농사를 거드니 가족과 뭐가 다를 게 있느냐”며 “아버지의 유언도 ‘절대 내보내지 말라’는 것이었다”고 말했다.

권씨도 “형제가 없는 것은 아니지만 원래 이 자리에 있었던 것 같다”며 쑥스럽게 웃었다.

정씨의 집은 이른 아침부터 소란스럽다. 청주의 외곽인지라 주연이, 정연이가 등교를 위해서는 오전 7시 이전에 아침식사를 마쳐야하기 때문이다. 취재를 위해서 찾아간 12월20일에도 여덟 식구가 한데 모여 아침식사를 하느라 분주했다. 강아지들도 덩달아 들떠 주방 문 앞에서 겅중거리며 기척을 했다.

안살림을 하는 정씨의 아내 혜영씨는 오전 5시30분부터 아침식사를 준비한다고 했다. 그러나 “힘들지 않냐?”는 질문에 돌아오는 것은 밝은 웃음 뿐이었다. 온가족의 둘러앉은 밥상머리에서는 즐겁고 유쾌한 이야기들만 오갔다.

“저건 혹여나 아침이 늦을 것에 대비한 비상식량이에요” 젊은 할머니 김애자씨가 가리키는 곳에는 각종 빵이 차곡차곡 쌓여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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