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충청리뷰 선정 올해의 인물>김승환 충북대 교수

“실천하지 않는 말은 거짓, 문학은 인간학이다”
충청일보 사태 대책위원장으로 기꺼이 가시밭길
역사의 흐름에 마디가 있을 리 없겠지만 분별을 좋아하는 사람들은 시간의 흐름을 토막 내 기념할 무엇인가를 만들어낸다. 특히 연말이 되면 여기 저기에서 선정한 인물과 사건들이 쏟아져나와 인구에 회자되는 것은 어제 오늘의 일이 아니다.

그런데 충청리뷰도 이같은 세태에 가세하기로 했다. 다만 심심찮게 뉴스의 주인공이 됐던 인물을 재조명하거나 지역의 현안을 거뜬히 해결한 해결사를 추켜세우자는 것은 아니다.

대립과 갈등이 상존하는 지역사회에서 치열하게 현장을 누비며 소신있게 한 해를 보낸 ‘그 사람’을 통해 우리를 되돌아보자는 것이다.

충청리뷰 편집국은 그런 의미에서 강단에 머물지 않고 노동운동과 통일운동의 현장을 누비며 왕성한 활동을 보인 김승환(충북대 국어교육학과) 교수를 ‘올해의 인물’로 선정하기로 뜻을 모았다.

처음으로 선정하는 ‘올해의 인물’인 만큼 논란도 있었지만 김승환 교수가 보여준 ‘일관성’ 앞에 결론을 내리기에는 주저함이 없없다.-편집자

   
김승환 교수는 올해 그 누구 보다도 바쁜 한 해를 보냈다. 문학평론이 주전공인 국어교육학과 교수지만 세상을 한 치 건너 바라보면서 그저 ‘관전평’이나 하고 있지 않았기 때문이다.

“문학은 인간학이다. 인간이 인간답게 살지 못하는 고통을 작품과 현실 속에서 동시에 본다”는 것이 평론가인 그가 현실로 뛰어든 이유다. 김승환 교수는 이전에도 지역에서 꽤나 알려진 명사였다. 하지만 지난 1월 텔레비전의 뉴스를 통해 그의 모습은 새롭고도 뚜렷하게 각인됐다.

1월14일 서울 모 호텔에서 열린 충북협회 신년모임에서 “충청일보 사태를 해결하라”고 소리치며 행사를 난장판(?)으로 만들다가 건장한 검은 양복의 사나이들에게 들려나가는 모습이 여과없이 방영됐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이는 서곡에 불과했다.
충청일보 사태와 관련해 충북도민대책위원장으로 활동하면서 충청리뷰 등 언론에 기고한 글이 문제가 돼 지난 2월 형사 건으로 피소된데 이어, 10월에는 민사 건으로 재차 피소되는 등 거듭 송사에 휘말리게 된 것이다.

형사 건의 경우 함께 피소된 다른 피고들은 모두 무혐의 처리된 상태에서 김 교수 혼자 7번째 공판에 임하고 있다. 김 교수는 당초 명예훼손, 비방, 모욕 등의 혐의로 공소가 유지되다가 최근 검찰이 모욕에 한한 것으로 공소내용을 변경하면서 새로운 국면을 맞고 있다.

그러나 김 교수는 전혀 주눅들지 않았다. 오히려 당당하다. 11월9일 청주지방법원에서 속행된 재판에서는 소송의 당사자인 조충 전 충청일보 전무를 증인으로 신청해 직접 증인심문을 하기도 했다. 평론가 답게 치밀하게 준비된 심문이었다.

“실천하지 않는 말은 거짓이다. 스스로 이 것을 지키려 한다”는 것이 때로는 돈키호테처럼 보이는 그의 행동을 이끌어내는 좌우명이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그래서 충청일보 사태에서 비롯된 그의 앞길은 아직도 가시밭길일 것이 뻔하다.

남북작가대회, 베트남 방문 분주
충북민예총 회장이기도 한 김 교수는 지난해 남북 문학교류 때문에도 분주했다. 7월20일부터 26일까지 민예총 작가회의 관계자들과 함께 방북해 평양과 백두산, 묘향산 등에서 열린 남북작가대회에 참석한 것이다.

충북지역 인사로는 김 교수와 함께 도종환, 김창규 시인 등이 방북했는데, 이들은 충북 출신의 월북 작가인 ‘벽초 홍명희 문학제’를 통일문학제의 효시로 만들기로 벽초의 손자인 홍석중씨와 뜻을 모았다. 홍석중씨는 ‘소설 황진이’ 등을 통해 조부 홍명희와 국어학자인 부친 홍기문에 이어 북한 내에서 확고한 지위를 확보한 소설가다. 홍씨는 이북작가로서 2004년 만해문학상을 받기도 했다.

지난 4월에는 충북민예총 공연단과 함께 베트남 퓨엔성을 방문해 마을을 돌면서 공연을 펼치기도 했다. 5차례에 걸친 공연에는 마을 별로 2000여명에서 1만여명이 모여들어 대성황을 이뤘다. 그러나 이는 문화적 시혜의 차원이 아니라 동반자적 관계에서 상호 평화의 관계를 열자는 것이었다.

김 교수는 “우리는 일본에게 사죄하라고 목소리를 높이면서 월남전에서 저지른 과오를 사과하지 않는 것은 모순이 분명하다”면서 “퓨엔성에 평화예술학교를 짓기 위해 지역 예술인들이 기금을 모으는 것도 화해를 추구하기 위한 것”이라고 주장했다.
김 교수의 이같은 사상은 아르헨티나 출신의 의사로 쿠바와 볼리비아혁명에 관여했던 ‘체게바라’나 반 세계화, 반 제국주의 운동을 벌이고 있는 멕시코의 ‘자파티스타’ 운동과 궤를 같이하고 있다. 약소 국가의 해방을 위해 목숨을 바친 체게바라의 일생과 강대국 중심의 세계화에 반대하는 자파티스타 운동이 ‘기득권을 버리고 민중들과 함께해야 한다’는 김 교수의 인생관에 영향을 미친 것이다.

그래서 김 교수는 자신의 글 말미에 ‘충북대 교수’ 보다는 ‘개신골 학사’라는 타이틀을 단다. 가르치는 사람이라기 보다는 아직도 배우는 과정에 있다는 것을 강조하기 위한 것이고 겸손해지기 위한 일종의 자기 암시이기도 하다. 공식적으로 내미는 명함도 ‘교수’가 아니라 ‘교원 김승환’이다. 교수와 교직원을 합쳐 교원이라는 단어가 있는데 굳이 교수와 직원을 편갈라 차별의식을 갖는 것에 대해 스스로 불만스럽기 때문이다. 김승환 교수는 이만큼 고지식하다.

감정의 나쁜 모습은 등산으로 해소
이처럼 오지랖이 넓고 고지식하다 보니 김 교수를 바라보는 편견도 만만치 않다. 연구와 강의에 소흘할 것이라는 선입견부터 ‘편협하다’는 견해까지 보는 이에 따라 오해의 폭도 넓고 속도 깊다.

그러나 김 교수는 자타가 공인하는 학구파다. 무엇을 하든 진지하다. 강단 밖의 일에 진지한 것 이상으로 연구하고 강의하는 일에도 진지하다.

“연구나 강의에 대한 부분은 데이터가 말해준다”는 것이 그의 짧은 항변이다.
김 교수는 등산을 통해 마음을 다스린다. 명상 보다는 준엄한 자연에 부딪히면서 분노와 욕심, 욕망, 슬픔 등 감정의 나쁜 모습들을 떨어낸다. 보통 혼자 등산에 나서는데 최소 16~24km를 쉬지 않고 빠른 속도로 걷는다.

김 교수의 독특한 산행은 이미 지인들에게 널리 알려져 있는데 왜소한 체구에 큰 배낭을 메고 비탈진 산길을 잰 걸음으로 오르는 모습은 퍽이나 인상적이다.

“그 배낭에 무엇이 들었냐”고 물어 보니 “카메라와 로프, 비상식량 등을 챙기는데 대략 20kg 이상”이라는 답변이 돌아왔다.

“20년째 길 보다는 산비탈을 골라 걷는다”는 김 교수의 등산이론은 그의 삶과 너무나 닮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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