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한국학술진흥재단에 ‘우암학’이라는 제목 아래, 3개 연구소와 1개 서원이 연합하여 지역학 분야에 이른바 프로젝트라는 것을 내보았다. 충청유학의 거목인 우암 송시열을 재조명하고자 하는 작업으로, 충청북도는 물론, 충남의 교수들도 참여한 제법 큰 시도였다. 국학 관련 40대 학자들이 대거 참여한 의욕 있는 도전이었다. 꽃피는 사월의 전체 회의 때는 우리 학교의 벗나무 아래 봄을 한껏 즐기기도 했었다. 연구비의 지원이라고는 거의 없는 우리 인문학도들에게 나라에서 기회를 준다고 하니 여간 다행스러운 일이 아니었다.
그러나 부끄럽게도 결과는 낙방이었다. 내 잘못이었다. 주제설정의 방만함, 연구보고서와 학술대회의 혼동, 선집(選集) 발간을 재탕으로 오독하게끔 한 설명부족 등, 많은 실수가 있었던 것이다. 그쪽에서 보내온 심사의견, 처음에는 ‘우암학을 통해 기호학의 발전과정과 조선후기 정치사와 사상사를 이해하는데 도움이 크리라고 봄’이라는 평가가, 마지막에는 ‘연구진의 능력은 우수하다고 판단됨‘이라는 평가가 붙어있었지만, 어쨌든 결과는 실패였다. 전화를 걸어 알아보니 떨어진 것도 너무 아쉽게 떨어진 것이었다.
어떻게 보면 과욕이 문제였다. 그 정도의 연구비에 인원이라면 이 정도는 해야겠지라는 욕심이 오히려 타당성 평가에서 낮은 점수를 받은 것 같았다. 적당히 할 걸, 하는 후회와 더불어, 나는 이 번 한 학기를 허망하게 날려버리고 말았다. 그럼에도 끔찍히 속상한 것이 있었다. 면접심사 때 평가위원들간의 상반된 질문이었다. 하나는 ‘우암학이 지역학이냐?’는 것이었고, 다른 하나는 ‘이런 연구는 지역에서 지원 받아야 하는 것 아니냐?’는 것이었다. 앞의 것은 ‘우암학은 철학으로 보편적인 것인데 굳이 충청도 운운할 필요가 없지 않느냐?’는 뜻이었고, 뒤의 것은 ‘학술진흥재단은 국가적인 사업을 지원하는 곳인데 지역의 우암학을 도와줄 수 없지 않겠느냐?’라는 뜻이었다. 실제로 평가위원들은 ‘우암이 충청도에 얼마나 살았는데’라든가, ‘지방자치단체가 먼저 나서야지’라는 말을 꺼내고 있었다.
나는 첫 번째 질문에 대해서는 ‘우암학이 지역학이 아니면 퇴계학도 지역학이 아니다’라는 대답을, 두 번째 질문에 대해서는 ‘이번 연구를 토대로 지역에서 지원을 받겠다’는 대답으로 마무리 할 수밖에 없었다. 나 자신도 이해되지 않는 모순을 놓고, 어영부영 대답을 할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우암학 연구를 과거 노론(老論)의 재등장으로 기우하는 사람들도 있었고, 우암이 영향력만큼 학문적 내용이 없음을 책하는 사람도 있었다. 갑자기 내가 노론부흥의 영수로 떠오르는 순간이었다. 내가 추구한 것은 ‘율곡 이후 기호(畿湖) 성리학의 발전’과 ‘조선 근대화의 실패’를 우암학을 통해 규명해보고자 했던 것이었건만, 나는 쓰러져가는 문화의 반동보수적 기수로 보이고 있었다.
화양동 서원 복원을 위해 나랏돈이 150억원 이상 계획되고 있다는 것을 나는 잘 알고 있다. 그러나 너무도 아쉽게도 우암학의 재정립을 위해서는 나랏돈뿐만 아니라 충북의 돈도 한 푼 쓰이고 있지 않다는 것을 나는 또한 말할 수밖에 없다.
화양동 서원이 우암과 관련된 하드웨어라면, 송시열 철학의 연구는 그것의 소프트웨어이다. 그런데도 다들 하드웨어에만 관심 있고, 소프트웨어는 뒷전이다. 그러나 잘 알다시피, 소프트웨어 없는 하드웨어는 사상누각이다. 아무리 ‘관광 충북’이라고 하지만, 인물에 대한 진정한 의미의 탐구야말로 어떤 건물의 복원보다 중요한 것이다. 하드웨어의 중수(重修)보다는 소프트웨어의 재건(再建)이 우선되어야 하는 것이다.
이제 남은 것은 지역의 관심이다. 우암이 충북인에게 어떤 방향으로라도 의미가 있다면, 우리는 그를 재정립하지 않으면 안 된다. 그것이 율곡 이이 이래, 우암을 거쳐, 수암 권상하로 내려오는 충북유학의 역사일진데, 어찌 없었던 일로 삼을 수 있겠는가.
이 자리를 빌어, 이번 연구계획에 동참해주었던 각계의 학자들께 고마움을 올린다. 청주에서 제천까지, 청주에서 대전까지, 청주에서 논산까지 마음을 전할 수 있었던 좋은 기회였다. 다른 한편으로 미안함도 전한다.
이번에도 영남(嶺南)과 근기(近畿) 퇴계학은 2개 과제 이상이 선정되었지만, 충북 옥천에서 태어나고 충북 괴산에 묻힌 우암에 대한 연구는, 이렇듯 나의 부덕으로 늦춰지고 있다. 그래서 너무 슬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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