또 집 이야기를 해야겠습니다. 유례가 없는 수해에 국민들이 시름에 잠겨있는 것은 아랑곳 없이 싸움질만 계속하고 있는 여야가 이번에는 또 김대중 대통령의 사저(私邸)신축을 놓고 침을 튀기기에 말입니다.
한나라당이 공세를 퍼붓고 있는 사저논란은 ‘주간동아’ 19일자가 그 발단입니다. 골자는 이렇습니다. ‘사저는 지하1층, 지상2층, 연 면적 199평으로 방 8개, 욕실7개, 거실3개, 창고5개, 엘리베이터와 실내정원을 갖추고 있으며 신안건설이 8억3000만원에 공사를 맡았고 10월 중순 완공 예정’이라는 것입니다. 이회창 대통령후보의 빌라문제로 곤욕을 치렀던 한나라당이 그런 아킬레스건을 놓칠 리 없습니다. ‘잘 만났다’고 싸움을 건 것은 너무도 당연(?)합니다.
호재를 만난 한나라당은 즉각 “80이 넘은 노부부가 단출하게 살집이 왜 그렇게 크고 호화로운지 국민은 이해를 못 한다. 국민은 집을 짓는 돈이 부정 축재한 것은 아닌지 의심하고있다”면서 “계약된 건축비는 8억3000만원이지만 실제로는 30억 원이 들 것이라는 얘기도 있다”며 ‘아방궁’이라고 공세를 퍼붓고 있습니다.
하긴 그렇습니다. 사사건건 시비를 거는 게 그렇긴 하지만 ‘호화사저’라면 한나라당이 아니라 누구의 눈인들 곱게 보일 리는 없습니다. 국민의 절반이 제 집이 없이 치솟는 전세 값으로 고통을 당하는 판국에 대통령이 퇴임 후에 살집을 초호화로 짓는다면 비난을 받는다해도 열 번 싸다고 할 수밖에 없습니다.
물론 청와대로선 억울한 점도 있을 것입니다. 8억3000만원의 공사비를 30억 원이 든다고 뻥튀기를 한다든가, 별것 아닌 것을 가지고 실내정원이라고 주장하는 일, 공사비 부정 축재 운운하는 것이 너무하다고 생각할 것입니다. 정치 공세가 분명하다해도 퇴임이 가까운 김대통령으로서는 야속하기 짝이 없을 것입니다.
그러나 어땠습니까. 김대통령이 야당이던 97년 그의 측근들은 김영삼 당시 대통령의 상도동 사저 신축에 대해 “전직대통령 둘을 감옥에 보내놓고 퇴임 후를 신경 쓸게 아니라 대통령의 본분인 국정수습과 민생에 충실하라”고 악담을 퍼부었던 적이 있었지 않습니까. 역사는 되풀이된다? 그야말로 웃기는 아이러니가 아닐 수 없습니다.
하기야 대통령들의 임기 말 사저논란은 어제오늘의 얘기만은 아닙니다. 그것은 전두환 노태우 대통령 때도 그랬고 김영삼 대통령도 그랬습니다. 군부독재 대통령이건 민주투사 대통령이건 예외 없이 사저 논란이 이는 것은 불행한 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
김대통령은 모든 꿈을 이루었습니다. 대통령에 당선되는 천운도 누렸고 노벨 평화상도 탔습니다. 더 무슨 꿈이 있습니까. 그런데 또 무엇을 더 어쩌려고 욕심을 내는지 모르겠습니다. 국민들은 퇴임한 대통령이 화려한 사저에서 콩이니, 팥이니 국정에 참견하는 것을 바라지 않습니다. 임기가 끝나는 날 평범한 시민이 되어 사저 아닌 사가(私家)로 돌아가 귀거래사를 읊고 조용히 여생을 보내는 그런 대통령을 보고싶은 것입니다.
하지만 우리 국민들은 아직 한번도 그런 대통령을 보지 못했습니다. 꿈을 이룬 자가 마음을 비우는 일이 그렇게 어려운 것인지, 초야의 범부로서는 알 길이 없습니다.
사족(蛇足):지난 호 ‘나물먹고 물마시고…’ 내용 중 주택보급률 ‘93%’, 내집가진사람 ‘56%’를 ‘96.2%’, ‘54.2%’로 바로 잡습니다. 통계인용의 오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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