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조 연산군 시절 한양의 남산에 9999칸 짜리 집이 있다고 소문이 자자했습니다. 시골에서 올라온 사람들이 집 구경을 하려고 남산을 헤맸지만 그러나 어느 누구도 그 집을 본 사람은 없었습니다. 왜냐고요? 그것은 상상의 집이었기 때문입니다.
그때 판서 벼슬을 지낸 홍귀달 이라는 청백리의 집이 남산에 있었습니다. 허백당(虛白堂)이라는 당호(堂號)가 붙은 그 집은 초가삼간도 못 되는 보잘것없는 단칸집 이였습니다. 그런 그가 단칸방에 살면서도 9999칸의 큰집에 사는 것과 똑같이 마음은 항시 넉넉하다고 한 말이 와전되었던 것입니다.
우리나라에서는 부의 상징으로 곧잘 ‘99칸 집’ 을 얘기합니다. 그러나 실제로 99칸 집은 임금이 거처하던 ‘궁’자 붙은 대궐에서나 볼 수 있었을 뿐입니다. 그런데 역대 중국의 황제들이 호사의 극치를 누렸던 북경의 자금성은 실제로 9999칸의 방이 지금도 그대로 보존되고있어 전 세계에서 몰려오는 관광객들의 감탄을 자아내게 합니다. 아기가 태어나 궁 앞문에서 방을 옮기며 하룻밤씩 잠을 자면 27세가 돼야 뒷문으로 나온다고 하니 그 엄청난 규모가 놀랍기만 합니다. 태산을 옮긴다는 중국인들 특유의 호방한 스케일의 일면입니다.
한자에서는 큰집을 옥(屋)이라 하고 작은집을 사(舍)라고 합니다. 큰집은 화(禍)의 근원이기에 경원시하고 작은집이라야 가족이 평안을 누린다해서 지어낸 말입니다. ‘屋’자를 풀어보면 그 집에 사는 사람이 죽음(尸)에 이른다(至)는 두 글자의 합이요, ‘舍’자는 그 집에 사는 사람(人)이 길(吉)하다는 합자인 것입니다. 성현들이 문자를 만들 때 글자 한자 한자에 깊은 뜻을 새겼음을 알 수 있습니다. 지난 날 고결한 선비들이 의식주에서 검약을 미덕으로 삼아 누옥(漏屋)마저 즐겨했던 것은 바로 그 때문입니다.
살아서나 죽어서나 사람의 누울 자리는 땅 한 평이면 족 합니다. 사람이 사지를 벌리고 큰 ‘大’자로 눕는다해도 방이건, 땅이건 한 평을 더 차지하지 못합니다. 그러나 사람들은 내남없이 더 큰집, 더 좋은 집을 갖고자 갈망합니다. 그러기에 호화주택, 대형아파트가 불티가 나는 것입니다. 집이 신분을 상승시킨다고 생각하는 것입니다.
지금 전국의 주택 보급률은 93%라고 합니다. 100가구에 93채의 집이 있는 셈이니 사회 지표 상 좋은 수치입니다. 하지만 내 집을 가진 사람은 64%에 불과하다는 데 문제가 있습니다. 돈 많은 사람들이 2채, 3 채를 소유하고있기에 생긴 일인 것입니다. 심지어 몇 일전 보도는 서울의 어떤 주부가 무려 26채의 아파트를 갖고있고 한 달에 고작 100만원 수입을 올린다고 거짓 신고한 어느 몰염치한 의사는 6채의 아파트를 소유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나 집 없는 서민들을 더욱 슬프게 했습니다. 열 가구 중 네 가구가 셋집에 살며 집 없는 설음을 달래야 하는 것이 오늘 우리 사회인 것입니다.
중종 때 문장가였던 김정국은 “세상 사람들이 집 꾸미기를 즐겨하지만 거처가 사치하고 참람(僭濫)한 자는 잇달아 망하지 않는 자가 없고 나지막한 집에 나쁜 의복으로 자신을 봉양하는데 검소한 자는 마침내 명망과 지위를 얻는다”고 하였습니다. 중요한 것은 99칸 고대광실에 산다해도 단칸방의 마음도 못 갖는 이가 있고 단칸 띠 집에 누워 있다해도 홍귀달처럼 9999칸의 넓은 마음을 갖고있는 이가 있다는 것입니다.
안빈낙도(安貧樂道)를 노래한 옛 글이 있습니다. ‘나물 먹고 물 마시고 팔을 베고 누웠으니 삶의 즐거움이 그 가운데 있느니라’ (飯蔬食飮水 曲肱而枕之 樂亦在其中矣)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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