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덕현 편집국장

김남원사건은 경찰로선 치욕이다. 변명의 여지가 없는 비위사실에 경찰조직 내부에서조차 긴 한숨을 숨기지 못한다. 그런데 더 아쉬운 것은 사건이 터지고 나서의 경찰 움직임이다.

이 사건을 빌미로 승진인사를 앞둔 고위직들이 벌이는 이전투구가 볼썽사나운 마당에 경찰청장까지 아침 출근길 교통신호조작의혹으로 구설수에 올랐다. 그동안 검찰을 맞상대해 수사권조정을 주장한 경찰의 실체가 이 정도라면 할말이 없다.

김남원 전 서장이 정선 카지노에 들락거리며 패가망신했다는 것은 특정인의, 그야말로 확률상 수천 수만분의 1에 해당하는 일탈일 수 있다고 가정하자. 그렇더라도 그 이후의 충북경찰 모습은 아예 과거로 회귀하고 말았다. 적어도 그동안 경찰에 애정어린 눈길을 보내던 많은 사람들에게 이렇게 비쳐진 것이다.

경찰로선 비상사태를 선언하고 자중에 자중을 강조해도 부족한 마당에, 그것도 특권이라고 청장을 프리패스로 출근시키기 위해 인력을 투입, 교통신호기를 조작했다니.... 특정 사안을 놓고 검찰이 경찰의 목을 조여 오면 경찰은 역으로 광범위한 정보망을 이용해 검찰의 바짓가랑이를 잡고 늘어지던 과거의 근성도 없어진 것같다.

수사권을 요구할 정도로 경찰의 목소리가 커지고 있지만 안타깝게도 검찰이 경찰을 바라보는 시각은 예나 지금이나 크게 달라지지 않았다. 비교우위, 자질론에 있어서의 우월적 인식을 여전히 갖고 있고 이 때문에 경찰의 최근 어깃장에 몹시 불쾌해하는 것이다. 이번 김남원 사건으로 인해 교통사고의 피해, 피의자를 바꿔치기하는 형편없는 집단쯤으로 매도되던 지난날의 경찰상을 검찰이 아닌 일반 국민들에게까지 다시 각인시키지나 않을까 걱정스럽다.

그동안 검찰과 눈높이를 맞추기 위해 경찰이 보여 온 혁신, 간부후보생을 양산하고 경찰대 출신과 고시패스 인재들을 중용하며 전면에 배치하는 등의 피눈물(?)나는 노력이, 지금에서 현직 서장의 임지이탈과 카지노출입, 그리고 교통신호 조작 등과 오버랩될 수 밖에 없다면 국민들은 참으로 당혹스럽다.

조직이 건강하고 강하고냐는 위기상황에서 비로소 확인된다. 평소엔 멀쩡해 보이다가도 위기를 맞게 되면 오합지졸로 변하는 조직이 있는 반면, 유유자적하다가도 일단 일이 터지면 엄청난 내공으로 똘똘 뭉치는 조직이 있다. 이는 리더십과도 무관하지 않다. 진정한 리더는 위기에서 그 진가를 나타낸다. 우리는 김남원 쇼크에 빠진 충북경찰을 대하며 후자를 기대하고 있다. 이래야만 화(禍)를 복(福)으로 전환시키고 다시 민중의 지팡이로 거듭날 것이다.

김남원 사건의 귀착점은 아직 아무도 모른다. 검찰이 ‘메가톤급’을 이미 확보하고 공표시기만을 저울질한다는 소문도 있지만 사건자체가 예사롭지 않은만큼 어차피 그 파장은 클 수 밖에 없다. 경찰 내부에선 이미 드러난 것 외엔 특별한 건(件)이 없다고 안위하면서도 김남원의 ‘입’에 잔뜩 긴장하는 눈치다. 과거 박종철 고문치사 사례에서 보듯 일단 영어의 신세가 되고 나면 심경변화는 언제든지 나타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그의 입에서 앞으로 무엇이 터져 나올지? 걱정스런 것이다.

기자들은 경찰에 원초적인 애정(?)을 갖는다. 서로 사건 현장을 누비며 자주 접촉하기 때문이기도 하겠지만 삶의 최전선에서 민초들의 애환을 같이 목격하고 체험하는데 따른 휴머니즘적 동지애일 수도 있다. 그래서 이번같은 황당한 사건에, 솟구쳐 오르는 비애감을 억누르지 못하면서도 경찰에 대한 믿음을 저버릴 수가 없다. 충북경찰이 교통위반운전자가 가장 무서워하는 전·의경의 초심으로 다시 태어나기를 기대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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