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간을 잃어버린 마을 수동’① 남기성씨와 오래된 이발관

매일 새벽 우암산 오르며 휴지 줍는 우암산지기
이발 요금 4000원, 경기도 안성에서도 단골손님


충청리뷰가 지역신문발전기금 우선지원대상으로 선정됨에 따라 저술분야에 대해서도 지원이 결정됐다. 이에 따라 ‘시간을 잃어버린 마을 수동(글: 이재표 사진: 육성준)’이라는 제목으로 수동에 남아있는 자생적 주민자치의 원형을 기록한 저술서가 2005년 12월 중에 출간될 예정이다. 원고 가운데 ‘수동사람들’이라는 제목으로 실리게 될 4장의 일부를 8차례에 걸쳐 나누어 싣는다. / 편집자주

청주시 상당구 수동 338-6번지(상당보건소 맞은 편 골목)에 있는 남기성(65)씨의 주중이발관은 ‘오래된 이발관’이다. 이발사 보조 경력은 빼고도 40년을 훌쩍 넘긴 오래된 이발사가 머리를 깎고, 이발기며 머리빗, 드라이어까지 모두 세월의 흔적이 잔뜩 묻어나는 것들이다.

▲ 50년 경력의 이발사인 남기성씨가 구형 면도기로 면도를 하면서 이야기의 실타래를 풀고 있다. 그의 이발관에 있는 물건들은 모두 오래된 것들이다. 무엇 보다도 오래된 손님들이 긴 의자에 앉아 순서를 기다리면서 쥔장과 나누는 대화부터가 빛바랜 옛날이야기다. 이야기의 주인공은 간혹 세상을 떠났고, 때로는 그 이름마저 가물가물하지만 누구도 입찬 소리는 뱉지 않는다. 이발소 안을 둘러보면 더욱 가관이다. 때 절은 등잔받침부터 램프에 이르기까지 오래된 조명기구를 비롯해 나무절구와 맷돌, 쇠방울, 각종 놋그릇 등 지금은 세월의 뒤란으로 사라진 어느 농가를 그대로 옮겨 왔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렌즈가 이안(二眼)인 ‘야시카’ 카메라와 금도금, 은도금 시계 등 귀중품들도 세월의 이력을 과시하며 한 구석을 차지하고 있으니 이발의자만 치우면 어엿한 생활사 박물관이다. 1000여점은 족히 넘는 남씨의 소장품들은 수집경로도 특이하다. 쓸만한 물건을 버리는 것을 눈뜨고 보지 못하는 성격 탓에 거리를 청소하며 하나 둘 주워 모은 것이 그 시초가 된 것이다. 남씨는 “살아오는 동안 편지봉투도 허투루 버리지 않고 글씨를 지워 경조사용으로 재사용했다”며 자신이 잡동사니(?)들을 모아 온 내력을 밝혔다. 재미있는 것은 남씨의 이런 수집 내력을 알게 된 단골 손님들이 수집을 돕기 시작하면서 이발관이 만물상이 됐다는 것이다.
老목수가 준 ‘거도’는 최고의 애장품
1000여점이 넘는 소장품 가운데에서 남씨가 가장 아끼는 물건은 50년도 더 된 무반동 이발기나 구형 헤어드라이어가 아니라 목재를 켜는데 사용하던 대형 톱인 ‘거도’다. 제재소와 회전톱이 등장하기 전에는 반달 모양의 거도로 목재를 켰는데, 아흔 살을 바라보는 늙은 목수가 거도와 대자귀, 대패 등 목공구를 남씨에게 기증했다는 것이다.

남씨는 “그 老목수가 거도를 사용하는 목수는 노임도 두 배에 달해 이 거도 하나로 6남매를 거뜬히 키웠는데, 그 중에 의사도 나왔고 박사도 나왔다고 자랑하더라”며 거도의 내력을 전했다.

남씨 역시 슬하에 3형제를 뒀는데, “교수 아들도 있고 대기업 간부도 있다”며 슬그머니 자식 자랑을 덧붙이는 것을 빼놓지 않았다.

결국 남씨가 거도를 유난히 아끼는 것은 분야와 도구는 다르지만 손기술 하나로 일평생 가족의 생계를 책임진 장인의 자부심이 통한 셈이다.

우암산 청소 50년, 통장 30년 ‘봉사인생’ 청원군 강외면 오송이 고향인 남씨는 1950년대 후반 이발 기술을 배우기 위해 청주로 나온 뒤 3년여만에 자신의 이름을 딴 기성이발관의 주인이 됐다. 수동에 둥지를 튼 것은 1963년. 지금이야 미용실에 밀려 손님이 크게 줄었지만 1960년대는 그야말로 황금기였다. 수동에서 개업 3년만에 방이 8개 딸린 가옥 2채를 손에 넣을 수 있었다. 그러나 남씨는 자만하지 않고 자원봉사를 통해 지역사회에 기여했다. 의용소방대에서 37년 동안 일한 것을 비롯해 30년째 통장을 맡아오고 있는 것이다. 이사 한 번 가지 않고 그루터기처럼 한 자리를 지켰지만 수차례 통·반이 조정되고 법정동이 통합되면서 통 이름은 숱하게 바뀌었다. 30대 초반에는 6통장으로 시작했지만 지금은 10통장이다. 남씨는 특히 매일 새벽 5시 우암산을 오르며 등산로에 떨어진 쓰레기를 치우는 것으로 유명하다. 50년을 한결같이 해온 일이다. “우암산을 좋아하니까 하는 일입니다. 내 산이요, 정원이라는 마음으로 살아왔습니다” 우암산 자락에서 우암산을 기대고 살아온 우암산지기의 고백이다. 남씨의 인생에 있어 마지막 봉사는 다름아닌 이발이다. 주중이발관의 이발요금은 노인 4000원, 청년은 5000원으로 다른 이발관의 요금과 비교해 딱 ‘반값’이다. 이발가위를 들고 굳이 양로원이나 고아원을 찾아가지 않아도 늘 봉사를 하는 셈이다. 동네사람들의 주머니 사정을 뻔히 알다 보니 사실은 미주알 고주알 따지지 않고 상황에 따라 받는다.
정기휴일인 매주 수요일을 제외하고는, 우암산 청소를 하고 돌아오는 새벽 6시30분에 문을 열어서 저녁 8시까지 남씨의 이발가위는 멈추지 않는다.

“괴산, 진천, 보은은 물론 경기도 안산에서도 단골 손님이 옵니다” 단골 손님이 안산으로 이사를 갔지만 한 달에 한 번 계모임에 참석하러 청주에 왔다가 꼭 이발소에 들른다는 것.

남씨는 “비록 동네 이발관이지만 전국에서 가장 고객층이 넓을 것”이라는 해설까지 덧붙였다. 이쯤되면 남씨는 자신의 인생을 통해 ‘범부의 삶도 위대할 수 있다’는 것을 충분히 보여준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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