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82년 부산 미 문화원 방화사건의 주역인 문부식씨가 최근 낸 책이 모처럼 진보진영의 활발한 논란을 일으키고 있다.
‘잃어버린 기억을 찾아서/ 광기의 시대를 생각함’이란 제목의 이 책은 지난 23일 첫 선을 보였지만 기실 한달전부터 시비에 휘말리는 바람에 이미 큰 관심을 끌었다.
우선 사형선고를 받았던 골수 운동권 출신이 40대 중반의 나이에 처음으로 책을 낸다는 것이 예사롭지 않았던데다 내용중의 한 부분이 진보계 한 축의 신경을 건드렸기 때문이다. 1989년 5월 3일 벌어진 부산 동의대 사건에 대한 서술이 문제가 됐다. 그는 ‘민주화운동 관련자 명예회복 및 보상심의위원회’가 지난 4월 27일 동의대 사건 관련자 46명을 민주화 운동 관련자로 결정한 것에 이의를 달았다. 심의위원회의 결정은 이미 경찰 등 이해당사자간 격렬한 논쟁을 촉발시켰고, 한참동안 언론에도 심각한 화두를 제공했다.
그의 견해를 간추리면 이사건은 피할수 있었던 비극이며, 아직도 당시 화인에 대한 정확한 원인규명이 이루어지지 않은 상황에선 46명을 민주화운동 관련자로 결정하기 보다는 우선 진실규명을 선행시켜야 한다는 주장이다. 그것이 전제돼야 진정한 명예회복이 가능하다는 시각이다. 이 사건은 당시 화재로 인해 7명의 경찰관이 희생됨으로써 여전히 논란의 빌미를 불식시키지 못하고 있다.
그러나 문부식씨가 정작 자신의 글을 통해 줄곧 전하려 하는 메시지는 사회 구성원들에게 자기체화된 폭력, 이른바 ‘우리 안의 폭력’에 대한 끊임없는 자기성찰이다. 그는 아주 명쾌한 사례로 얘기를 시작했다. -(광주학살의 주범) 전두환 노태우가 구속되는 광경에 박수를 치는 사람들은 그것을 진두지휘했던 당시 서울지검장 최환이란자가 실은 1980년 5월 광주(사태) 직후 전두환에 의해 만들어진 국가보위비상대책위원회 내무분과위원이었던 사실에는 별로 관심을 가지지 않는 듯했다. (학살의 주범을 응징하기 위해) 5. 18 특별법 제정을 천명한 대통령 김영삼이 그 법의 제정 기초위원장을 맡긴 자는 그 때(전두환 시절) 5공 헌법의 선진성을 역설했던 민정계 의원 현경대였다. (중략) 어떻게 이런 일들이 가능하게 된 것일까…- 드러난 폭력보다 드러나지 않은 폭력, 즉 우리 안의 폭력에 오히려 전율이 느껴지는 부분이다.
우리는 간혹 운동권 출신들이 입신한 후에 이런 자기체화된 폭력을 그야말로 의식없이 저지름으로써 어느 한 순간에 정체성을 죽이는 경우를 종종 목격한다.
문교부장관이 되자 대학생들에게 훈계조의 편지를 올렸다가 망신을 당한 이해찬씨가 그렇고, 노동운동의 대부를 자처하던 김문수가 오히려 1996년 12월 26일 노동법과 안기부법 개정안이 날치기 통과될 때 거수기 역할을 한 것도 그렇다.
특히 국회의원에 당선된 뒤 “한국 노사관계에 획기적인 개혁을 이룰 복안을 갖고 있으며 어느 나라보다 독특한 노사관계 모델을 제시하겠다”고 포부를 밝힌 김문수는 지금 노사관계는 커녕 이회창씨의 병풍을 막는 전위대로 전락했다. TV에 비치는 그의 얼굴은 이미 70년대 투쟁시절의 고뇌하는 모습이나 정치인 초기의 논리와 신념에 밝았던 표정이 아니다. 핏발과 증오만 가득하다. 지금 혁신계도 아니고 그렇다고 보수도 아닌 어정쩡한 회색분자로 평가되는 것은 스스로의 업보다.
우리 안의 폭력은 또 얼마든지 있다. 정당을 넘나드는 소수 목소리를 기대했던 386 국회의원들의 직무유기, 그들은 이미 유권자들에게 설 땅을 잃었다. 벗겨진 이마와 기름진 얼굴이 어찌 그리 닮아 가는지 모르겠다. 국민들을 기만한 것이다. 기껏 국민경선을 통해 대통령후보를 뽑아 놓고도 집안 싸움으로 바람 잘 날이 없는 민주당, 이건 파쇼다. 그런데도 대부분의 국민들과 언론은 무감각하다. 폭력에 대해 침묵하는 것 또한 폭력이다. 이런 방관이 결국 개인은 없고 집단만 득세하는 기형의 사회를 만들었다. 자신의 정체성을 집단이라는 틀 속에서만 확인할수 있는 사회, 여기서 자율은 거추장스럽다. 교통사고로 여러명이 죽어도, 누가 억대의 사기를 쳐도, 부도덕한 인물이 지역유지로 행세해도 나만 아니면 그만이라는 이 체화된 폭력의식, 우리는 이것을 경멸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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