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정모 선수가 조국인 한국에 올림픽 출전사상 첫 금메달을 선사한 1976년 몬트리올 올림픽은 적자투성이었다. 이 때문에 몬트리올시는 물론 캐나다 정부까지 천문학적인 재정적자 문제로 골머리를 앓아야만 했다. 그리고 냉전이 한창이던 1980년 모스크바 올림픽 역시 미국을 비롯한 서방측의 보이콧으로 피멍이 들었다.
그로부터 4년 뒤. 소련 등 동구권의 보복성 불참 속에 열린 1984년 제 23회 LA올림픽 역시 재정적자가 우려됐다. 하지만 LA대회는 보란 듯이 대성공을 거뒀다. 올림픽 조직위원장 피터 위버로스의 탁월한 CEO적 경영능력 덕분이었다.
위버로스는 이 대회서 올림픽 사상 처음으로 스폰서십을 도입했다. 그는 대기업 스폰서들로부터 1억3000만 달러를 긁어(?) 모으는 수완을 발휘하며 결산서에 2억 달러 이상을 남겼다.
LA올림픽 성공에 고무받은 미국민은 연방정부가 해결못하고 있던 천문학적인 재정적자를 해결할 영웅으로 위버로스를 환호했다. 당시 미국은 일본의 경제침략에 쩔쩔 매던 때였다. 그러나 자본논리만 좇은 LA올림픽은 돈으로 오염된, 미국만을 위한 대회였다는 세계인의 혹평을 감수해야 했다.
동시대인 80년대. 크라이슬러의 아이아코카 회장 역시 미국의 우상으로 떠오르며 대통령 후보로 운위됐다. 만성 적자에 허덕이던 크라이슬러를 정상화시킨 아이아코카의 경영능력에서 미국민들은 크라이슬러와 비슷한 처지의 무기력한 미국을 구원할 희망을 읽었던 것이다. 그러나 대중의 인기는 변덕같았고 그는 정치판에 뛰어들지 않았다.
1992년 대선때 경제에 대한 미국의 깊은 불안감은 괄목할 무소속 후보를 부각시켰다. 컴퓨터 및 정보처리 분야에 뛰어들어 큰 재산을 모은 텍사스의 부호 로스 페로였다. 미 정부의 경제무능에 대한 국민의 좌절감이 페로를 유망 대선 주자로 떠올렸던 것이다. 하지만 그 역시 이내 스러졌다.
월드컵 신화를 일군 정몽준 의원에게 정계는 물론 이 사회의 모든 스포트 라이트가 쏟아지고 있다. 월드컵 성공에 도취돼 있던 지난 6월 기자와 만난 한 기업인은 “경제에 정통한 정몽준 의원같은 인물이 대통령 후보로 나선다면 주저없이 그를 선택하겠다”고 말했다. 싸움박질로 날을 지새는 정치권에 대한 환멸감을 그 기업인을 포함한 대중은 ‘새얼굴 기대심리’로 나타내고 있는 것이다.
미국이 그랬던 것처럼 IMF이후 한국인들은 경제문제를 가장 중요한 논점으로 인식하는 듯 하다. CEO 대통령에 대한 여망론이 그 증거다.
하지만 우리는 정몽준 의원에 대해 아는 것이 많지 않다. 기업경영의 일선에 거의 없었던 그가 설령 뛰어난 CEO적 자질을 갖고 있다고 해도 여전히 그에게는 물음표가 많다. 더구나 4선이라고는 하지만 당조직을 경험하지 않은 무소속이다.
더구나 CEO와 대통령의 자질론은 같을 수 없다. CEO는 조직의 모든 중심목표를 이익의 극대화, 부의 창출에 맞춰 나가기만 하면 된다. 하지만 정치는 다르다. 얼키고 설킨 모든 이해집단간에 조화를 이뤄내며 사회의 부를 균배하는 고도의 능력이 요구되는 때문이다. 쉽게들 말하지만 ‘국가경영’은 ‘기업경영’과 전혀 별개이며, 또 달라야 한다.
물론 이런 결론이더라도 기성 정치권에 존경할 만한 지도자를 갖지 못한 우리의 고민이 해결되는 것은 아니지만...
저작권자 © 충북인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