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죄인이에요”
한 신부님의 소개로 사무실을 방문한 60대 초로의 내방객이 던진 첫마디였다. ‘아니, 이 분이 무슨 큰 잘못이라도 하셨나?’라는 생각에 순간 긴장했고, 그렇게 노인은 지난 50여 년 동안 지고 살아온 천형과도 같았던 ‘보도연맹-좌익’의 짐을 하나씩 풀어놓았다. 국민보도연맹 피해유족 곽태영씨는, 6.25 한국전쟁이 발발하던 1950년 여름 어느 날 경찰의 소집통지를 받고 나가시던 부친을 붙잡지 못해 “내가 조그만 더 지혜로웠다면, ‘시골에 계신 할아버지가 돌아가셨다’고 해 아버지를 사지로 보내지 않았을 텐데”라고 자신을 자책하며 그렇게 말했던 것이다.
지난 6월 18일, 충북도청에서 열린 ‘충북지역 민간인학살 진상규명을 위한 간담회’를 계기로 우리 지역의 뜻있는 단체 및 인사들이 ‘충북지역 민간인학살 진상규명을 위한 대책위원회(준)’를 결성하고, 피해유족들의 신고와 제보를 접수받고 있다. 접수된 사례들은 대부분 ‘국민보도연맹’ 관련 피해유족들로, ‘품앗이 할 수 없다’, ‘비료 준다’, ‘그냥 도장만 찍으면 된다’는 강권에 못 이겨 보도연맹에 가입해 전선이 밀리는 1950년 7월을 전후해 그 어떤 재판이나 적법한 절차 없이 군ㆍ경에 의해 학살되었다고 증언하고 있다.
그동안 학술연구자료와 언론사취재자료 등을 통해 확인되는 충북지역내 민간인학살 피해자들은 이미 잘 알려진 영동군 노근리, 단양 괴개굴에서의 미군에 의한 민간인피학살 이외에 국민보도연맹관련 피학살자들만 5000여명에 이르는 것으로 보고되고 있다. 또한 전국적으로는 13만 피학살자에 100만 유족이라고 할 정도니, 희생된 당사자들뿐만 아니라 그 유족이 당해야 했던 한 맺힌 원한을 어떻게 다 말로 표현할 수 있겠는가? 그들의 억울한 사연과 가슴의 한을 그대로 둔 채 어떻게 민족의 화해와 상생을 말할 수 있겠는가? 50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진실규명이 이루어지지 못하고 있으니, 우리를 매어놓고 있는 불의와 질곡의 사슬은 너무나 견고하기만 하다.
이 같은 민간인학살에 대해 국제적으로는 전쟁중인 경우라 하더라도 인류가 영원히 금해야할 반인도적 범죄이며 전쟁범죄라고 규정하고 국제협약과 재판을 통해 단죄하고 있다.
그나마 다행스러운 것은 전국적인 민간인학살사건에 대한 실마리를 풀 수 있는 민간인학살통합특별법안이 작년 47명의 국회의원을 통해 청원되었다는 것이다. 그들이 왜, 어디서, 얼마나 학살되었는지, 학살의 주체는 누구인지 밝힘으로써, 지난 50여 년 동안 숨겨져 왔던 진실을 규명하고 억울한 피해자들의 명예를 회복해 다시는 이러한 불의한 역사를 되풀이하지 말자는 것이 이 법안의 취지이다.
이제 정말 시간이 없다. 공식적인 사실관계를 입증할 수 있는 자료는 철저히 은폐되고 폐기된 채, 당시 초등학생이었던 피학살자의 아들은 환갑을 넘어 칠순을 바라보고 있고 혹은
한 분 두분 평생을 안고 살아온 한의 응어리를 풀지 못한 채 돌아가시고 있기 때문이다. 땅에서 풀면 하늘에도 풀려있을 열쇠가 우리에게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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