쌀이 남아돌아 걱정이라고 합니다. 예나 이제나 걱정이 끊이질 않는 나라이다 보니 웬 만한 걱정이야 걱정이랄 것도 없겠지만 쌀이 모자라서가 아니라 남아서 걱정이라 하니 아무래도 걱정치고는 즐거운 걱정이라고 해도 좋을 듯 합니다.
정부발표에 따르면 지금 국내의 쌀 재고량은 927만 섬이라고 합니다. 소비는 매년 줄고 생산량과 수입은 자꾸 늘어나다 보니 현재 전국의 창고는 빈곳이 없을 만큼 꽉 들어차 포화상태라는 것입니다. 거기다 올 추수가 끝나는 10월이면 400만 섬 가까이 더 늘어나 1318만 섬이 되리라 하는데 이는 적정 재고의 두 배가 넘는 엄청난 량입니다.
하기야 쌀이 남는 것은 모자라는 것보다야 열 배 낫다고 할 수 있습니다. 해마다 보릿고개면 쌀이 모자라 조반석죽(朝飯夕粥)도 감지덕지 요, 초근목피(草根木皮)로 연명하던 것을 기억하고 있기에 쌀이 남아도는 것을 탓할 것은 없습니다.
쌀이 남는다고 쓸 곳이 없는 것은 아닙니다. 우선 식량이 모자라 고통을 겪고 있는 북한을 돕는 일, 에티오피아, 소말리아, 아프가니스탄과 같은 해외 빈국을 돕는 일, 가축사료로 쓰는 일등 방법은 얼마든지 있습니다. 그러나 문제는 정부가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 한다는데 있다하겠습니다.
우선 북녘동포들을 돕는 일이 바람직하다 하겠으나 ‘받는 건 없이 퍼 주기만 하느냐’는 야당과 보수언론, 일부국민들의 거센 반대 에 눈치를 보지 않을 수가 없고 빈국을 지원하자니 500억이 넘는 막대한 수송비가 부담입니다.
그렇다고 묵은 쌀을 그대로 두자니 창고도 없을 뿐 더러 있다해도 경비가 연5900억이나 소요돼 배 보다 배꼽이 더 큰 실정입니다. 그러니 정부가 끙끙 앓기만 할 수밖에 없는 것도 무리가 아닙니다. 고육책으로 300만 섬을 사료로 쓰기로 한 모양이지만 뒤가 개운치 않기는 마찬가지입니다. 사람이 먹는 곡식을 소 돼지에게 먹일 수 있느냐는 국민 정서도 그렇거니와 한 쪽에서는 먹을 것이 없어 굶어 죽는 사람이 속출하는 판에 한쪽에서는 쌀이 남아 짐승에게 먹인 다는 것은 아무래도 도리가 아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말입니다. 우리는 왜 이렇게 편협하고 인색해야 하는 겁니까. 피를 나누지 않은 유럽 여러 나라들은 물론 일본 중국, 그리고 북한을 ‘악의 축’이라고까지 몰아 부치는 미국마저도 인도적 차원에서 식량을 지원하고있는 것을 두 눈으로 보면서 명색이 같은 민족이라는 우리가 그들을 외면하는 것은 어떤 논리로 구실을 댄다해도 설득력도 없고 옳다고 볼 수도 없습니다.
죄 받습니다. 날마다 북한동포들의 참상이 전해져 오는데 ‘상호주의’니 하는 궤변이나 늘어놓는 것은 인간의 도리도 아니고 민족으로서도 할 짓이 아닙니다. 인간애와 민족애를 조금만이라도 생각한다면 그런 소리는 차마 할 수 없을 것입니다. 어떠한 이념도, 체제도 민족에 우선 하지는 못 합니다. 뒷날 후손들이 ‘북의 동포들이 굶주릴 때, 그때 당신들은 무엇을 했느냐’고 묻지 않는다고 누가 말 할 수 있겠습니까.
남는 쌀, 걱정 할 것 없습니다. 북한에 넉넉히 좀 줘서 배곯는 동포들 살려주고 가난한 나라들도 도와주면 됩니다. 그리고 국내의 극빈자들, 무의탁노인들, 결식아동들, 고아원 양로원 등에 골고루 나누어주면 얼마나 좋습니까. 그래도 남으면 사료로 쓰고요. 우리는 늘 쉽게 갈 수 있는 길을 두고 어렵사리 먼 길을 돌아가려 합니다. 쉬운 것을 어렵게 풀려고 하기 때문이지요.
이번 가을은 남쪽이나 북쪽이나 모두 걱정 없는 그런 계절이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남쪽은 남는 쌀 치우니 좋고, 북쪽은 주린 배 면하니 좋은 그런 좋은 계절 말입니다.

저작권자 © 충북인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