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종관 개인전- 서울 예술의 전당 미술관

어느 시골분교의 관사에서는 하루에도 몇차례씩 붕어빵 굽는 소리가 들린다. 정으로 붕어빵 틀을 깨는 둔탁한 울림이 지나고 나면 갓 잡아올린 듯한 통통한 붕어빵들이 톡톡 틀에서 떨어지는 소리까지.
이처럼 한여름밤 붕어빵을 굽는 장사꾼의 손익계산법은 무얼까. 더구나 밀가루 대신 석고로 구어진 ‘석고붕어빵’들을 말이다.
관사를 가득 메운 붕어빵들을 구경 온 마을사람들은 화가가 그림은 안그리고 딴짓한다고 핀잔을 주기도 하고, 계란판 가득 높다랗게 쌓아놓은 것을 보고는 어디다 납품하는 거냐고 묻기도 한다.
“붕어들은 내 방식대로 맛나게 굽고 맛나게 팔아야죠. 그런데 얼마에 팔아야 할지 고민이네요. 붕어빵들은 천원에 4갠데, 제 붕어들은 원가가 400원이니까 글쎄 얼마를 받아야 할까요?”
오히려 손님에게 가격을 묻는 붕어빵 장사꾼은 이 곳 별방초·중학교 미술교사이자 서양화가 이종관(45)씨다. 이씨는 이번에 손수 구운 석고붕어빵 1500여마리를 데리고 서울로 전시를 떠난다. 예술의 전당 미술관에서 8월 11일부터 18일까지 붕어빵을 주제로 전시를 하기 때문이다.

‘왜 붕어빵이냐구요?”

그가 가장 많이 받는 질문은 왜 붕어빵을 만들기 시작했냐는 것이다. 그 답을 듣는 과정에선 뜻밖의 인도이야기가 먼저 들려왔다. 14년간 광장에서 격렬한 춤으로 구도를 펼치는 중부터 인도에 왔다가 머물러 버린 한국 예술가들의 삶까지. 짤막한 일화들이 엮어지고 있었다.
그럼 인도와 붕어빵은 무슨 관련이 있을까? 그 이유는 코믹했다. 이씨가 화가이면서, 교사, 그리고 또하나의 신분을 꼽자면 인도 산티니케탄의 비스바라티 대학의 그래픽과정을 밟고 있는 외국인 학생이라는 것. 98년부터 지금까지 4년여간 여름방학 겨울방학을 이용하여 공부를 하고 있다. 학교에 무급신청을 내고 학부과정을 밟으려고 했지만 뜻대로 되지 않아 방학때마다 인도를 찾아간다고 한다.
처음 붕어빵기계를 손에 넣게 되었을때는 장사꾼의 기본적인 셈이 깔려 있었다. 밀가루로 만든 밋밋한 전병을 주식으로 삼고 있는 인도사람들에게 달콤한 팥이 꽉찬 통통한 붕어빵은 한마디로 확실한 ‘대박상품’이 될 수 있었기 때문. 그러나 개인사정으로 무거운 기계를 한번도 날라보지도 못하고 창고에 방치하게 됐다. 그리고 어느날부터 그는 밀가루 대신 석고의 농도를 조절해가며 붕어빵을 굽기 시작했다.
“처음 틀에서 나올때의 오동통한 붕어의 따뜻한 온기가 아직도 생각납니다. 때론 창고를 메운 겹겹히 층으로 쌓여있는 붕어들을 볼때면 제사를 지내고 다시 방문을 열고 들어설때의 엄숙함이 느껴지기도 합니다. 그래서 붕어들은 창백한 흰색이 가장 어울리는 것 같습니다”
붕어빵을 만드는데는 꼬박 1시간 반이 걸린다. 24개의 틀을 일렬로 세우고 농도를 맞춘 석고를 차례로 붓고, 다 익으면 석고붕어들을 떼내고 유성왁스와 석유를 결합한 시료로 틀에 남은 찌꺼기를 말끔히 제거한다. 처음에는 2시간을 훨씬 넘기던 과정들이 이제 많이 단축됐다고 한다. 시간을 요하며 지루할 것 같은 작업들에 대해 그는 심심하지 않게 보낼 수 있었던 ‘놀이’였다고 답한다.

붕어빵, 단순한 오브제로 끝날것인가.

붕어빵 전시의 가장 분명한 색깔은 남들이 안하는 소재로 오브제(Object)를 시도했다는 것이다. 그러나 여기에는 낱개와 군집의 오브제들의 배열, 그것에 따르는 의미부여 과정이 과제로 남아있다.
“사람들은 메시지를 부여하라고 많이 요구하더라구요. 벽, 천장, 바닥을 기본으로 설치를 구상중이에요. ‘어떻게 할까’하는 궁금증을 유발시키고 은밀하게 드러내고 싶어요. 그것이 전시장을 찾는 재미가 되도록 말이죠. 이번 전시에서 얻고자 하는 것은 ‘유연하게 내면의 카테고리를 푸는 과정’을 보여주는 것입니다”
“붕어빵은 누구나 쉽게 소유할 수 있잖아요. 값싸고 또한 나도 한번쯤 만들 수 있을꺼란 생각도 들고 말이죠. 전시도 이처럼 어렵게 풀어 나가고 싶지 않아요. 제일 편하게 가고 싶어요, 내가 작업에서 느꼈던 자유로움과 재미를 관객에게 이동시키고 싶습니다. 아주 은밀하게 말이죠. 즉, ‘보여만 줄 뿐 말하지 않는 법’을 담아내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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