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우전선이 오락가락 하면서 올 여름 장마는 큰 비 없이 그저 그렇게 물러가지 않나 싶습니다. 무엇보다 아직 수해가 없었으니 다행이긴 하지만 예년보다 많은 태풍이 잇따라 올라온다니 긴장이 되긴 합니다. 21일이 중복, 23일이 대서(大暑), 제철 만난 더위는 한층 기승을 부릴 것입니다.
지난 날 선조 들은 한 여름이 되면 계곡으로 들어가 탁족놀이를 하거나 냇물에서 물고기를 잡는 천렵(川獵)으로 여름을 보냈습니다. 탁족(濯足)이란 글자 그대로 발을 씻는 것을 이름인데 중국의 초사(楚辭) 어부편과 맹자 이루장(離樓章)에 나오는 동요 ‘창랑의 물이 맑거든 갓끈을 씻고 물이 흐리거든 발을 씻으리라’한데 그 연원을 둡니다.
동국세시기에 보면 요즘 같은 한 여름이 되면 삼삼오오 숲 속으로 들어가 청간옥수(淸澗玉水)에 발을 담그고 세속을 벗어난 삶을 즐겼다고 적고 있습니다. 도처에 푸른 산이 어우러진 자연 속의 지혜로운 여름나기였다고 하겠습니다.
조선시대 팔도의 이름난 피서지로는 금강산과 안변의 석왕사, 심방의 약수포, 원산의 명사십리해수욕장, 인천의 월미도 등이 손꼽혔다고 합니다. 그러나 그러한 피서는 상류층인 양반계급의 이야기 일뿐 여름내 농사에 매달려 살아야 하는 보통 백성들에게는 언감생심 생각할 수도 없는 호사일 뿐이었습니다. 일제치하는 물론 해방이 되고 나서도 일반국민들의 피서는 냇물에서 멱을 감거나 둥구나무 아래서 장기를 두고 천렵(川獵)을 하는 것이 고작이였습니다.
바캉스 철을 맞아 또 ‘민족의 대이동’이 시작됐습니다. 버스터미널과 철도역, 공항은 벌써부터 피서를 떠나는 사람들로 북적대고 고속도로는 넘치는 차량들로 홍수를 이루고 있습니다.
이제 전국의 피서지는 몸살을 앓을 것입니다. 이름난 해변, 명산은 떼지어 모여든 사람들이 때를 만나 한바탕 축제를 벌일 것이기 때문입니다. 휴가문화가 일천하다보니 조용히 쉬면서 심신의 피로를 풀기보다 먹고 마시고 춤추고 노래하며 왁자지껄 소란으로 지새우는 잘못된 피서풍습이 이미 우리사회에 정착되어 있는 것입니다. 그렇다보니 피서지가 북새통이 돼 피서길이 고생길이 되고 피로를 풀기는커녕 오히려 스트레스를 안고 돌아오는 것이 우리의 휴가문화가 되어 있습니다.
땀흘린 뒤의 휴식은 노동의 기쁨을 일깨워 줍니다. 다람쥐 쳇바퀴 돌 듯 하는 판에 박힌 일상을 떠난 휴식은 누적된 피로를 씻어 주고 심신의 밸런스를 되찾게 해줍니다. 그처럼 휴식은 삶에 활력을 불어넣어 재충전을 시켜준다는 점에서 꼭 필요합니다. 하지만 오늘 우리의 휴가문화는 그렇지 못하다는데 문제가 있습니다. 오죽하면 휴가후유증이란 희한한 증세 마저 유행이 되는 것이 아닐까요.
그러면 다른 뜻 있는 여름휴가는 없을까? 내가 아는 어느 공직자는 해마다 여름이면 흙 냄새나는 고향을 찾아 마을 어른들을 찾아뵙고 일손을 돕는 농촌 체험을 아이들과 함께 하면서 즐겁게 보내고 있습니다. 그들은 몇 일 동안의 휴가를 통해 가족들의 유대와 뿌리를 확인하고 농촌을 이해하는 계기를 만들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니 휴가가 뜻 깊고 즐거울 수 밖 에요.
휴가의 진정한 의미는 흥청대고 노는 것이 아니라 차분히 쉬는 것입니다. 그런 의미에서 여름휴가는 개인적으로나 사회적으로나 생산적인 것이 되어야 합니다. 월드컵에서 4강신화를 이룩한 국민들이라면 휴가문화도 그에 걸 맞는 성숙한 모습을 보여야 하지 않을까요. 나는 그렇게 생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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