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원회관에서 희생자 유물·유품전 연 서재관의원

한국전쟁 발발 이듬해인 1951년 1월20일 이름도 아름다운 단양군 영춘면의 ‘느티마을’에 미군 비행기 넉 대가 날아들더니 피난민 400여명이 살고 있던 곡계굴에 30여분 동안 맹폭을 퍼붓고 돌아간다.

드럼통 같이 생긴 소이탄이 동굴 입구에 떨어져 동굴 속으로 불길과 연기가 밀려들자 주민들이 뛰쳐나오기 시작했고 빗발처럼 쏟아지는 폭격에 300여명이 순식간에 목숨을 잃은 이른바 ‘곡계굴 사건’의 진상이다.

AP통신을 통해 세상에 널리 알려진 영동군 노근리사건에 비해 피해자 수도 훨씬 많지만 곡계굴 사건은 그 참혹한 진상이 널리 알려지지 않았다. 한양 조씨 60세대 150여세대를 비롯해 대부분 일가족이 몰살을 당해 죽음을 입증하기 어려운 경우가 많았고, 전쟁통에 영춘면사무소 마저 소실돼 당시 주민들의 신상을 입증할 자료도 미비했기 때문이다.

미군에 의한 대규모 양민학살이 이런저런 이유로 50여년의 세월 속에 고스란히 묻혀버린 셈이다.

해마다 음력 12월12일 한동네가 동시에 제사를 지내고, 유족들끼리 합동추모제를 여는데 그쳤던 곡계굴 학살의 진상을 알리기 위한 희생자 유물·유품전이 6월13일~6월15일까지 국회의원회관 1층 로비에서 열렸다.

유물·유품은 동굴 속에서 발견된 유골 가운데 일부와 그릇, 숟가락, 동전 등 가재도구 등 50여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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