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월 한달 온 국민을 흠뻑 취하게 했던 월드컵에서 한국이 예상치 못한 4강 신화를 일구어 낸 가장 큰 공로자는 두말 할 필요도 없이 히딩크 라는 데 누구도 이의가 없을 것입니다.
그가 아니었다면 한국축구는 4강은 그만두고 16강에도 오르지 못했을 것이 너무도 자명하기 때문입니다.
우리 팀이 의외의 선전을 거듭하면서 히딩크의 지도력이 하나 둘 회자(膾炙)되더니 이제는 아주 ‘히딩크학’으로까지 불리면서 온 나라가 온통 히딩크 예찬으로 침이 마르고 있습니다.
그런데 히딩크가 한국축구 팀을 맡고 첫 번째 손 댄 것은 우리사회의 금기나 다름없는 학연, 지연, 권위주의 깨기였다고 합니다. 그가 그런 금단의 고질병을 깨고 실력위주로 선수를 뽑아 조련시킨 것이 오늘의 결과를 가져 왔다는 게 정설입니다. 아는 사람은 다 아는 얘기지만 우리 체육계에 학연 지연 서열 등 연(緣)에 얽힌 파벌이 우심 하다는 것은 잘 알려진 비밀입니다.
말이 나왔으니 말이지만 우리사회의 가장 큰 병폐 중 하나는 내 사람 네 사람, 내 학교 네 학교, 내 지역 네 지역 하는 편가르기임은 아무도 부인 할 수 없습니다. 물론 농경사회였던 지난날에야 그러한 연고(緣故)주의가 상부상조의 미덕이 됐던 것도 사실입니다.
그러나 그것이 상부상조를 뛰어 넘어 기득권을 지키려는 수단으로 악용되고 결국은 사회를 분열시키면서 망국 병 이 돼 있는 것을 우리는 보아 왔고 또 보고있습니다.
생각해 보십시다. 총 선거든 지방 선거든 정책과 이념을 내 걸고 심판을 받으려는 후보가 과연 몇 이나 있었습니까. 하나같이 학연, 지연, 혈연을 앞 세워 득표활동을 벌이고 거기다 목을 걸지 않았습니까. 또 기업인들을 봅시다. 그들이 경영논리를 좇아 정상적으로 회사를 키우려 하기 보다 연줄을 찾아 헤매고 그것이 성공의 요체가 돼 온 것도 흔히 보아온 사실입니다. 그러니 전통 있는 명문 학교를 가기 위해 온 사회가 난리를 쳐 대는 것이 아닐까요.
재미있는 얘기가 있습니다. 청주시내 어떤 기관에는 각종모임이 수 백 개 에 달한다고 합니다. 산악회 낚시회 꽃꽂이회 등의 동호회는 그렇다 치고 11개 시·군 향우회에 그것도 모자라 면 향우회도 있고 초등학교, 중학교 고등학교 대학 대학원 동창회가 출신학교별로 모두 구성이 돼 있다고 합니다. 어디 그것뿐이겠습니까. 공무원 동기 계에 동갑 계, 종씨 계, 동네 계, 아파트 계에 심지어 아파트 통로 계, 딸 만 낳은 사람들의 딸 계까지 있다고 하니 그저 놀라울 뿐입니다.
어느 모임이건 애초 취지야 친목을 도모하고 서로 도우며 지내자는 순수한 것이겠으나 결과적으로는 그것이 이익 집단화되고 목소리가 커져 패를 가르는 붕당(朋黨)이 되는 것은 명약관화합니다. 하기야 누구는 우리 사회가 그러한 모임의 활성화로 돌아가는 것 아니냐는 말을 하기는 합니다.
하지만 그러한 모임들이 은연중에 유형 무형으로 다른 사람들에게 폐해를 주고있다는 사실에 대 해서는 생각하는 이들이 없다는데 문제가 있다고 하겠습니다. 따지고 보면 경상도와 전라도의 지역갈등은 무엇이겠습니까. 정치인들의 지역감정, 학연조장은 무엇이겠습니까. 결국은 국민들의 파벌의식, 패거리의식이 그 바탕이 아니겠습니까. 못된 정치인들이 그러한 국민정서를 이용하는 것일 뿐입니다.
히딩크가 지연, 학연, 서열주의 등을 깨고 합리주의를 택한 것은 대단한 것이 아닙니다. 우리가 평소 지역감정을 없애자, 학연을 없애자 입으로 만 떠들고 실천은 하지 않던 것을 그는 몸으로 실천했던 것뿐입니다. 왜냐고요? 그 사람은 지연 학연, 그런 것 모르는 나라에서 온 사람이기 때문입니다. 틀렸습니까?
7월입니다. 육사(陸史)는 ‘7월은 청포도가 익는 계절’이라고 했는데 11일이 초복이니 이제 여름도 제 철에 들어선 듯 합니다. 월드컵은 탈 없이 끝났지만 서해 교전으로 남북관계가 다시 긴장돼 걱정입니다.
저작권자 © 충북인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