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의원 낙선한 뒤 묘지이장 사업에 투신
아산ㆍ탕정 단지 이장 사업권으로 인생역전

김현수 전 청주시장이 10대 국회의원으로 일하던 시절 비서관으로 정당인 생활을 시작해 30년 가까이 지역 정치판을 유전해 온 박문희(53) 열린우리당 충북도당 상무위원이 돈벼락을 맞았다.

2002년 지방선거에서 충북도의원에 출마했다가 고배를 마신 뒤 돈에 맺힌 한을 풀기 위해 시작한 묘지이장사업이 3년만에 대박을 터뜨렸기 때문이다. 묘지이장에 ‘대박’이라는 단어를 갖다 붙이는 것이 적절하지는 않지만 삼성전자가 아산·탕정에 조성하는 제2산업단지 내 분묘 3000기의 이장을 맡았다고 하면 대박임에 분명하다. 1기당 이전비용이 150만원 정도임을 고려할 때 사업비가 무려 45억원에 이르기 때문이다.

김현수씨의 식객으로 정치인생 시작 학창시절부터 김대중 전 대통령의 열렬한 지지자였던 박씨가 본격적으로 정치인생에 뛰어든 것은 1978년 10대 국회의원에 당선된 김현수의원의 비서관으로 일하게 되면서부터다. 이를 계기로 친구의 형이었던 김현수 전 의원의 집에 머물며 시작된 ‘식객 생활’은 결혼을 해 신접살림을 차리게 된 1986년 3월까지 계속된다. 서울에 동교동계나 상도동계가 있었다면 김현수씨의 식객으로 수동계(?) 생활을 했던 것이다. 박씨는 김현수씨가 1985년 12대 국회의원에 다시 당선되자 김씨가 운영하던 상포·장의사의 경영을 맡아 3년 동안 운영하기도 했다. 이때 상포사를 운영한 경험은 3년 전 분묘이장사업을 시작하는데 밑바탕이 되기도 했다. 도의원 연거푸 낙선, 사업시작신민당에서 통일민주당, 평민당, 국민회의, 통합민주당, 열린우리당에 이르기까지 지역에서 직업 정치인으로만 살아온 박씨가 선출직에 도전한 것은 1998년과 2002년. 청원을 지역구로 도의원 선거에 도전했지만 연거푸 고배를 마시게 된다. 특히 2002년 선거에서는 당선을 목표로 최선을 다했지만 당시 충북에 몰아쳤던 한나라당 바람과 선거자금 부족으로 3위에 머물러야 했던 아픈 기억을 지니고 있다. 사업을 시작한 것도 다음 선거에서 쓸 정치자금을 여유있게 마련하기 위해서였다는 것이 박씨의 설명이다. 직업정치인으로 머물면서 눈덩이처럼 늘어난 빚도 만만치 않았기 때문에 반전의 기회에 도전할 수밖에 없었다는 것이다. 박씨는 그러나 “돈을 충분히 벌어놓고 보니 돈선거를 하는 시대가 지나간 것 같다”며 너털웃음을 웃었다.
도로공사, 아산·탕정에서 대박

2002년 지방선거에서 낙선한 뒤 한달만에 묘지이장사업에 뛰어든 것은 부용면에 살며 사업을 하는 친구 박 모씨의 권유가 계기가 됐다. 고속철도 공사과정에서 무연고 분묘에 대한 이장이 돈되는 사업(?)임을 알아보고 이를 박씨에게 권한 것이다.

박씨는 도내 골프장과 도로 확·포장, 도로신설 등 각종 개발에 앞서 진행되는 분묘이장 사업에서 착실히 영역을 넓혀 그동안 한국도로공사가 발주한 공사만 400여기를 따냈다. 사업비가 3000만원 이상인 사업은 입찰을 해야 하기 때문에 전국을 직접 누비며 발품을 판 결과 수억원에 이르던 빚을 모두 갚고 “지금은 불편함 없이 살만하다”는 것이 박씨의 설명이다.

그러나 여기까지는 시작에 불과했다. 2005년 3월말 아산·탕정 산업단지 개발에 따른 묘지 3000기 이장사업을 발주받았기 때문이다. 이 사업은 분묘이장 사업비가 45억원 대에 이를 것으로 추산되는 그야말로 대박 건이다.

삼성 박근희사장이 초등학교 동창
‘강남 뽕밭’을 손에 넣은 것 같은 박씨의 인생역전은 30년이라는 정치인생을 통해 얽히고설킨 인간관계와도 무관치 않다. 또 하나 무시할 수 없는 것은 초등학교 인맥. 미원에 있는 금관초등학교를 나온 박씨의 초등학교 동창생 가운데에는 삼성전자 중국 총괄사장인 박근희씨가 있는데 삼성 관련 인맥은 친구인 박사장을 통해 만들어졌다. 문희상의원의 비서관을 지낸 뒤 지금은 사업을 하는 강호영씨도 초등학교 동창이다.

이밖에 연청 도 사무총장으로 일하면서 중앙정계 인사들과 맺은 인맥도 진진하다.
박씨는 지난 3월 열린우리당 도당위원장 선거 과정에서도 홍재형당선자와 대립각을 세웠던 구 당직자들과 달리 홍재형당선자 편에 섰다. 사업도 사업이지만 내년 도의원 선거에 3번째 도전장을 던진다는 구상 아래 내린 판단이다.

도내 모 국회의원과도 인척 아닌 인척
박씨는 충북이 지역구인 A국회의원과도 인척 아닌 인척관계에 있다. 박씨의 새어머니가 A의원의 작은어머니였던 사실을 지난해 총선을 준비하는 과정에서 알게 됐기 때문이다. 지금은 고인이 된 박씨의 새어머니는 박씨의 친어머니가 막내동생을 낳은 지 사흘만에 세상을 뜨자 훗날 박씨의 아버지와 재혼을 해 남매를 낳은 것으로 확인됐다.

박씨는 “지난해 총선 과정에서 이 사실을 우연히 알게 됐다”며 “세상이 넓고도 좁다는 사실을 뼈저리게 느꼈다”고 말했다.

정성스런 마음이 복이 된다
어찌 됐든 일반인들이 꺼리는 업종인 분묘이장업에 종사하면서 박씨는 ‘정성스러운 마음이 복이 된다’는 신조로 일하고 있다. 아무도 찾지 않는 무연고 분묘를 개장해 유골을 수습하고 납골당에 안치하는 과정에서 ‘외로운 영혼을 달랜다’는 심정으로 일을 한다는 것이다.

지금까지 그가 개장한 분묘만도 수천여기로, 무덤을 열면 흔적도 남아있지 않은 분묘부터 미이라 상태로 존재하는 분묘까지 그 형태도 가지가지라고 한다. 또 이장과정에서 각종 껴묻거리나 썩지 않은 복식 등이 출토되기도 하는데 이는 대학박물관에 기증하고 있다.

박씨는 “수많은 무덤을 열며 어차피 한 줌 흙으로 돌아가는 인생인데 왜 아귀다툼을 하며 욕심을 부릴까하는 생각에 잠기게 된다”며 삶을 통달한 사람처럼 말을 마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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