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장정(大長征)은 끝났습니다. 전 세계의 시선이 쏠린 가운데 온 나라를 흥분의 도가니로 몰아 넣었던 꿈의 구연(球宴) 제17회 월드컵은 31일 동안의 불꽃 튀는 열전을 마치고 대미(大尾)의 막을 내립니다. 지난 한달 우리 국민들은 월드스타들의 환상적인 묘기와 명 승부에 탄성을 지르면서 한국팀의 투혼에 넋을 잃고 열광했습니다.
뭐니뭐니해도 이번 월드컵의 가장 큰 충격은 우리 한국 팀의 선전입니다. 월드컵 70년사에 이런 이변은 일찍이 없었습니다. 오로지 16강 진출이 전 국민의 염원이었는데, 그런데 16강을 넘고, 8강을 넘고, 4강 고지에까지 오르다니…, 참으로 믿겨지지 않는 일이 벌어 진 것입니다. 누가 폴란드를 꺾고 포르투갈을 꺾고, 이탈리아를, 스페인을 꺾으리라고 감히 생각이나 했겠습니까. 정말 자랑스러운 우리 선수들입니다.
이번 한국팀의 선전은 선수들의 승리를 넘어 온 국민의 승리입니다. 언제 우리 국민이 이처럼 하나가 되어 본적이 있습니까. 이런 엄청난 전 국민의 대동단결은 이 땅에 역사가 있은 이래 처음이 아닐까 싶습니다. 한국팀의 선전은 지(智)와 덕(德)을 겸비한 히딩크라는 명장(名將)과 그를 따른 선수들, 그리고 국민들이 삼위일체가 되어 이룩한 쾌거입니다.
‘붉은악마’들의 노고에 찬사를 보내지 않을 수 없습니다. 그들이 있었기에 온 국민이 한 덩어리가 될 수 있었고 그들의 성원이 선수들에게 백만 원군이 된 것이 틀림없습니다. 한 알의 불씨가 광야를 태우듯 ‘붉은악마’들이야 말로 우리 팀에게 용기와 힘을 주었고 국민들을 하나로 묶는 원동력이 되었습니다. 칭찬에 입이 마른다해도 하등 지나침이 없다 하겠습니다.
우리 국민들, 이번에 맘놓고 소리한번 실컷 쳐보았습니다. 언제 이렇게 신명나게 소리치고 놀아본 적이 있었습니까. 기껏해야 관광버스 아니면 밀폐된 노래방에서 목청 돋구던 일이 고작이던 우리 국민들이 아니었습니까. 그 국민들이 가슴속에 억눌렸던 에너지를 월드컵이라는 커다란 놀이판에서 피를 토하듯 한꺼번에 쏟아낸 것입니다. 월드컵은 바로 ‘해방구’였던 것입니다.
이번 월드컵에서 우리가 얻은 것은 자신감입니다. 우리도 할 수 있다는 자신감, 그것이 가장 큰 소득이 아닐까 나는 생각합니다. ‘붉은악마’들의 카드섹션 ‘Pride of Asia’도 결국 우리 한국의 자신감을 뛰어 넘어 ‘아시아의 자부심’을 강조한 것일 터입니다. 동북아의 작은 나라 한국이 전 아시아인의 자부심을 일으켜 세운 것입니다. 대견한 일입니다.
승패가 갈리는 승부의 세계에서 영원한 승자도, 영원한 패자도 없다는 것이 이번 월드컵에서도 입증되었습니다. 어제의 승자가 오늘 패자가 되고 오늘의 패자가 내일 승자가 되는 것이 승부의 세계인 것입니다. 그것이 자연의 법칙입니다.
정상문턱에서 주저앉긴 했지만 무엇보다 대회가 무사히 끝난 것이 다행입니다. 혹시 무슨 일 이라도 일어나지 않을까, 얼마나 걱정을 했습니까. 참으로 다행입니다.
모두들 수고했습니다. 선수들도 수고하고 ‘붉은악마’도 수고하고 국민들도 수고했습니다. 이번 월드컵은 우리 국민 모두의 승리, 위대한 승리입니다. 하지만 또 다른 걱정도 있습니다. 광적(狂的) 열광 뒤에 오는 정신적 공황(恐慌) 말입니다. 사회적으로나 개인적으로나 그런 금단현상을 극복하는 일이 급선무입니다.
이제 모두 제 자리로 돌아가야 하겠습니다. ‘붉은악마’들도 열기를 식히고 제 자리로 돌아가고 직장인들도 제 자리로 돌아가고 학생들도 제 자리로 돌아가야 하겠습니다. 그리하여 흐트러진 주변을 정리하고 평상심(平常心)을 되찾아야 하겠습니다. 잔치는 끝났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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