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주변에 색(色)이 폭발하고 있다. 월드컵을 직후로 물감 쏟아지듯 붉은 색이 넘쳐 나오고 있다. 현대는 색채의 시대인 것이다. 사람들은 같은 물건을 하나 사더라도 모양과 색이 아름다운 물건을 선호한다. 색은 점차 우리사회가 갖는 문화적 의미가 무엇인가를 표현하는 중요한 언어로 떠오르고 있다. 우리문화를 전반적으로 읽고 체험하도록 하는 매체로서 색은 존재한다. 색이 단순히 색채만을 뜻하지 않기 때문이다. 일찍이 동양에서의 색은 단지 색깔이나 모양의 외양적인 면만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정신적인 면까지 색 속에 넣어두고 있다.
한국 축구 복의 화려한 붉은 색은 본래 부귀영화와 복(福)을 상징하는 의미로 태극기에서 온 것이다. 고구려 사신총 등 그림에 나타나고 국왕이 입던 홍포의 색이었던 적(赤)색은 五方에 나타나는 五色중 하나로 한국인의 심금과 감성을 구수하게 울릴 수 있는 색이기도 하다. 우리 나라 선수들이 1983년 청소년 대표팀으로 멕시코 4강 전에 올랐을 때 ‘붉은 악마’란 이름을 얻은 후 12번째 선수가 된 응원단에게 새로운 의미로 읽히게 된다. TV, 신문, 옥외광고 등 전국 곳곳에서 자발적이며 동일한 집단적인 표출은 붉은 물결로 출렁인다. 붉은 악마들의 다섯 바퀴 붉은 파도를 지켜보며 하나가 되는 초자연적인 힘은 지난 시대의 아픔도 잊게 한다. 광주항쟁 관련의 집단 열풍들을 경험했던 세대들은 우리사회가 치러야할 붉은 색 혐오감마저 극복되길 바란다. 민주화 과정, 노동자 대 투쟁의 현장에서 붉은 색을 기피하는 자기검열이 시도되었던 기억으로부터, 반공체제에서 개개인의 심리를 파고드는 감정으로 각인 된 붉은 색을 잠시라도 잊고자 한다. 오직 붉은 악마가 상징화한 애국심으로 축구대표를 상징하는 색으로 받아들인다. 냉전을 경험하지 못한 10대에서 20대가 주축이 된 붉은 악마는 신세대로 순수 애국심이 수직 상승된 효과를 보게 한다. 붉은 물결은 마치 헤겔의 ‘아름답고 자유로운 필연성’의 명제를 연상케 한다. 아름다움과 화합하는 자유스런 삶의 법칙을 그대로 보여준다. 붉은 색의 심미적인 참여야말로 자의식을 가진 인간의 가장 순수한 형태이다. 그것은 또한 순수하게 인간임을 절실히 느낄 수 있도록 혼을 불어 넣어주고 삶의 의미를 부여하는 것과 같다. 삶이란 어차피 인간간의 교류를 통하여 거듭 자신의 존재를 확인하고 정리하는 순환의 과정인지 모른다. 고뇌와 아픔을 함께 하는 현대인의 삶 그 자체에서 느껴지는 심미적인 태도로서 붉은 색의 행렬에 동참한다. 적어도 고독한 현대인의 내면의 문제, 희석된 삶의 문제를 들려줄 수 있는 몸부림인 것이다.
붉은 색의 거리 응원 전을 보면서 성남에서 외국인노동자들이 길거리에서 외쳤던 피켓 문구가 떠올려졌다. “크레파스 물감회사 사장님 ‘살색’이란 이름을 꼭 없애주세요.” 이들은 살색이란 색은 황인종을 기준에 의한 피부색이란 것이었다. 인종에 대한 차별로 얼룩져있는 사회, 레드컴플렉스가 깔려있는 사회에 아무리 월드컵을 성공적으로 끝내더라도 외국인 노동자들이 한국을 외면 해버린다면 진정한 붉은 색의 승리를 말하기 어려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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