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신의 집에서 처참하게 살해된 채 발견된 이모군 사건은 20년간의 가정폭력이 부른 비극으로 결론지어지고 있다.
가정폭력 근절책 아쉬워, 처벌강도 높이고 보호시설 확대해야
11월 21일 오후 3시 40분 청주시 Y중학교 2학년 이모군이 자신의 집에서 처참하게 살해된 채 담임교사와 급우들에 의해 발견됐다.
평소 결석을 하지 않던 이군이 연락도 없이 학교에 오지 않자 담임교사는 이군 친구들을 데리고 이군 집을 찾았던 것. 발견 당시 이군은 흉기에 의해 7∼8차례나 머리를 얻어 맞아 형체를 알아볼 수 없을 정도로 처참한 모습이었다.
그러나 이군의 집에는 없어진 물건이 없었고 집안이 흐트러져 있지도 않았다. 더욱이 살해에 사용된 것으로 보이는 흉기(손도끼)는 물로 깨끗이 닦여져 있었으며 방문 또한 잠겨진 상태였다.
용의자의 윤곽은 쉽게 드러났다. 경찰은 범행 수법이나 정황으로 미뤄 단순 강도사건이 아니며 원한이나 면식범의 소행으로 단정지었다.
숨진 이군의 가정상황을 확인한 경찰은 이군의 아버지 이모씨(49)를 유력한 용의자로 보고 이씨와 이군의 어머니 신모씨를 찾는데 수사력을 모았다.
이군이 살해된 채 발견되기 7시간전인 21일 아침 8시 대전시 유성구 Y아파트 신축공사 현장에서 이군의 아버지 이씨가 투신 자살한 채 발견됐다.
또한 이씨가 투신한 장소에서 200여m 떨어진 곳에서 발견된 이씨 차량의 주차브레이크와 뒷좌석 바닦에 핏자국이 있었으며 조수석 의자 뒤에 달린 주머니에서 신문지로 싼 칼이 발견됐다. 트렁크에는 휘발유통 2개와 삽이 실려 있었다.
경찰은 이씨가 평소 의처증 증세를 보이며 수시로 아내 신씨를 구타해 왔으며 이를 이기지 못한 신씨가 지난 9월 가출, 모 여성단체의 보호를 받다가 11월 초순 협의이혼한 점 등으로 미뤄 이씨가 청주에서 아들을 살해 한 뒤 대전으로 가 자신도 스스로 목숨을 끊은 것으로 보고 있다.
경찰 관계자는 “이씨가 평소 심각한 의처증으로 수시로 폭력을 휘두르고 가족들을 모두 죽이고 자신도 죽겠다는 말을 해 왔다. 11월 20일 저녁 이웃 주민에 의해 이씨가 이군의 집에 들어가는 것이 목격됐다”고 말했다.
또한 이씨가 강원도 모 암자에 머물다 20일 “청주에서 집안일을 정리하고 22일 돌아오겠다”고 하며 암자를 나선 것으로 확인돼 이씨가 아들을 살해했을 것이라는 심증이 더욱 굳어지고 있다.

부인도 살해 가능성

이씨의 전 부인 신씨의 행방도 의문이다. 신씨는 이군이 살해된 것으로 추정되는 20일 보다 하루 앞선 19일 이군의 집에 있는 모습이 주민들에 의해 목격됐다. 이씨가 아들을 처참하게 살해할 당시 신씨도 현장에 있었을 가능성도 있는 것이다. 그러나 경찰은 아들을 살해한 이씨가 전부인 마져 살해했을 가능성이 짙다고 보고 있다.
이씨의 차에서 발견된 흉기와 삽, 휘발유통 등은 아들을 살해할 당시 사용하지 않았던 것들이며 차안에 혈흔이 남아 있는 것도 이씨가 신씨 마져 살해했을 가능성을 높여주고 있는 것이다.
경찰은 이씨의 차안에서 발견된 고속도로 통행료 영수증을 통해 21일 새벽 2시 25분에 청원 I.C를 빠져나간 사실을 확인, 신씨의 시신을 찾기 위해 청원에서 대전, 이씨의 본적지 주변의 야산과 하천 등을 상대로 수색을 벌였으나 신씨 사망의 단서는 찾아내지 못했다.
또한 신씨와 이군의 혈액형이 같아 이씨의 차량에서 발견된 혈흔이 신씨의 것인지 또는 이군의 것인지는 밝혀내지 못한 채 국립과학수사연구소에 감식을 의뢰한 상태다.
신씨는 81년 이씨와 결혼한 뒤 줄곧 의처증 증세를 보이는 남편의 폭력에 시달려 온 것으로 전해지고 있다.
식당을 운영하면서도 이씨는 아내 신씨가 손님과 마주치지 못하도록 주방에서 못 나오게 했으며 유치원에 다니는 아이의 자모회에 다녀오기만 해도 ‘어떤 XX를 만나고 왔느냐’며 식당바닥에 넘어뜨리고 옷을 찢는 등 폭행을 일삼아 왔다는 것이다.
심지어 이씨는 아내를 방에 가두고 소변 마져도 방에서 해결하라고 까지 했으며 생업도 포기하고 아내 주위를 맴돌며 감시를 해왔던 것으로 알려졌다.
20여년간이나 남편의 폭력에 시달려 온 신씨는 지난 9월 모 여성단체에 이같은 사실을 알리고 보호를 받아 왔다. 결국 11월 초순 남편과 협의이혼한 신씨는 11월 15일 숨진 아들과 함께 살기 위해 여성단체의 만류도 뿌리치고 집으로 돌아갔다.
이 여성단체 관계자는 “신씨가 보호시설을 나가겠다고 해 극구 만류 했다. 전 남편이 이혼에 합의했으나 또다시 신씨를 괴롭힐 것 같았다. 그러나 신씨는 아들과 함께 모자보호시설에 입소해 살겠다며 희망에 찬 모습으로 아들에게 돌아갔다”고 말했다.
결국 경찰의 추정대로 신씨마져 이씨에 의해 살해 됐다면 전 남편의 서슬퍼런 폭력을 벗어나 아들과 함께 새 삶을 살아보려는 희망에 찼던 중년의 여성은 아들에게 돌아간지 불과 5일만에 변을 당한 것이다.


가정폭력 이미 심각한 수준
신씨를 2개월여동안이나 보호하고 있던 여성단체는 이 사건을 접하고 놀라움과 안타까움을 누르지 못한 채 가정폭력 근절책을 강력하게 호소하고 있다.신씨가 여성단체의 보호를 받으며 이혼 소장을 작성하는 등 이혼을 요구하자 이씨는 이혼에 응해주겠다며 11월 6일 협의이혼했다.
과정만으로 보면 사건이 원만히 해결된 것 처럼 보이지만 이혼 판결문을 찢어 버리는 등 이씨의 태도가 미심적었다는 것이 이 단체 관계자의 전언이다.
이 관계자는 “대부분의 폭력 가장들은 아내에게 의지하는 경우가 많아 이 경우 또한 아내와 재결합하기 위한 마지막 방법으로 협의이혼을 선택했던 것 같다. 따라서 신씨에 대해 귀가를 만류 했지만 신씨는 이혼한 마당에 어쩌지 못할 것이라며 집으로 돌아갔다”며 “좀 더 신씨를 보호하고 있었더라면 이같은 참극은 빚어지지 않았을 것”이라고 안타까움을 감추지 않았다.
이와 함께 가정폭력을 근절하기 위한 보다 적극적인 대책이 마련돼야 한다며 가정폭력사범에 대한 처벌을 강화할 것을 주장했다.이 단체 관계자는 “신씨가 당한 피해에 대해 증명할 수 없어 이씨를 사법처리 하지 못한 채 이혼으로 끝낸 것”이라며 “20년간 가정에서 폭력을 휘두른 이씨를 처벌만 했더라도 참극은 막을 수 있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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