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구상에 모든 생명 있는 것들은 누구나 할 것 없이 이 세상 어머니들의 아름다운 고통의 소산이다. 봄날, 여린 싹들이 어둠을 떨치고 세상을 향해 솟아오를 수 있었던 것은 어머니의 품을 닮은 땅의 힘찬 숨결과 포근하고 다사로운 온정이 있었기에 가능한 것이다. 오월은 아직 여물지 않은 어린순들의 해맑은 모습을 지니고 있다. 연초록의 영롱한 그 빛을 바라보고 있으면 가슴이 떨려온다. 이렇게 봄의 빛깔은 내게 기대와 설렘으로 채색을 해준다.

내겐 늘 오월의 풀잎 같은 아들 녀석이 둘이나 있다. 수험준비에 바쁜 고3인 둘째 녀석이 나를 보고 싱긋이 웃더니 빨간 카네이션 한 송이를 슬그머니 내밀었다. 어버이 날이라고 나름대로 준비를 한 모양이다. 어머니가 계셔서 행복하다며 카네이션 한 송이 가슴에 달아주고는 발갛게 상기된 얼굴로 달려 나갔다. 꽤나 쑥스러웠던 모양이다.

나는 빨간 카네이션을 가슴에 단 채, 학교로 향하는 녀석의 등 뒤를 물끄러미 바라보다 그만 울컥 목이 메었다. 자식들을 한 없이 깊고 넓은 품으로 보듬어 안으시며 꿋꿋하게 세워내시는 분. 그 어떠한 잣대로도 잴 수 없는 무량한 사랑을 품고 계시는 분이 어머니가 아니셨든가! 그런데 지금 ‘어머니’ 그 어머니란 말을 내가 듣고 있다. 두 아들 앞에 어미라는 이름으로 서 있는 내 모습이 너무 부끄럽고 초라했다.

두 아들을 키우며 나는 종종 친정어머니를 떠올린다. 철없던 시절, 아카시아 꽃이 청초하게 피어나던 오월 이었다. 세상에 둘도 없는 효녀가 될 것처럼 뭉클한 가슴으로 어머니 가슴에 빨간 카네이션 한 송이 달아 드리고 학교로 향했다.

요즘엔 학교에서 급식을 하지만 70년도엔 도시락을 싸가지고 다녔다. 보충수업 끝나고 자습까지 하는 날엔 저녁까지 두개를 싸갈 때도 있다. 그 당시엔 사물함이 없어 그날그날 필요한 책들을 끙끙거리며 가지고 다녀야 했다. 아침 출근 시간, 시내버스 안은 언제나 콩나물시루처럼 사람들로 빽빽했다. 평소보다 유난히 승객들이 더 많을 땐 여차장이 버스 문에 매달려가는 위험천만한 광경도 자주 볼 수 있었다. 그날따라 두개의 도시락을 가방에 넣었다. 승객들이 얼마나 많던지 마치 머리와 몸이 분리되는 마술을 보는 듯 했다. ‘ 금수장 내리실 분’하고 큰소리로 외치는 차장의 소리를 듣고도 미처 빠져 나오지 못해 한정거장을 더 가서야 겨우 내릴 수 있었다. 금수장은 지금의 상당공원자리다. 지금은 다른 곳으로 학교를 옮겼지만 그 곳에 여고가 있었다.

내 가방은 여닫는 곳이 자석으로 되어있어 작은 충격에도 쉽게 열리고 닫힌다. 그때는 지금처럼 메는 가방이 아니었다. 버스에서 내리려고 안간힘을 쓰다가 그만 어떤 아저씨 다리에 가방이 걸리자 가방뚜껑이 열리며 두개의 은빛도시락이 거리로 튕겨져 나왔다. 마치 유명한 어느 설치 미술가의 작품을 보고 있는 듯, 차도와 인도사이에서 영롱한 아침햇살에 은빛비늘을 반짝이며 알몸으로 뒹구는 나를 보았다. 순간 하늘과 땅이 한 순간에 붙어 버린것만 같았다.

그 위로 어른들의 혀 차는 소리, 여학생들이 소프라노로 놀라는 소리, 베이스로 울려오는 남학생들의 짓궂은 놀림은 바람처럼 우우거리며 내 귓전을 맴돌았다. 나는 두 눈을 질끈 감은 채, 강한 접착제에 달라붙은 듯 그 자리에서 꼼짝도 하지 못했다. 수많은 눈빛들 속에서 나는 점점 이글거리며 타오르는 숯덩이가 되어갔다. 그때 누군가가 달려와 허겁지겁 주변을 추슬렀다. 나는 이때다 싶어 뒤도 안돌아 보고 냅다 집으로 달려갔다. 어머니를 보는 순간 도시락을 단단하게 싸주지 않았다고 원망과 질타를 쏟아 냈다. 맑은 하늘에 날벼락 치는 소리를 어머닌 영문도 모른 채 잠자코 다 받아 주셨다.

불과 한 시간 전 쯤, 어머니 가슴에 달아 드렸던 빨간 카네이션은 어머니 심장의 선혈 인 듯, 빨간빛이 더욱 선명했었다. 그날 이후 빨간 카네이션을 볼 때마다 그 빨간 꽃잎, 꽃잎들이 꼭 어머니 가슴속에 내가 만들어 놓은 핏 멍울인 것만 같아 내 가슴은 얼음이 된다.

이제 나는 그때의 어머니 나이가 되어 두 아들을 키우고 있다. 가끔 툴툴대는 녀석들을 쥐어박고 싶을 때마다 어머니가 생각난다. 항상 부지런 하시고 깔끔하신 어머니는 아버지와 함께 큰 병원 한번 안가시고 아직도 우리들의 든든한 담이 되어 주신다. 봄이면 ‘화단에 꽃이 좋다. 너 꽃 보러 오지 않으련?’여름에는 ‘애호박전 지져 놓았다’하시고, 가을엔 달랑 한 그루뿐인 대추나무에 대추알이 발갛게 조롱거리면‘얼른들 오너라. 대추 털자.’ 겨울이면 ‘군고구마 구워 놓았다’하시며 자식들을 부르신다. 손수 메주를 쑤어 된장, 고추장 담가 주시고 김장철엔 오남매 불러 모아 김치 버무려 나누어주신다. 좋은 것, 맛난 것은 꼬불쳐두었다가 손자며 자식들에게 내 놓으시는 어머니!

어느 날 문득, 바라보니 까맣던 머리에 하얗게 서리가 내렸다. 이미 손과 얼굴엔 검버섯도 찾아오고 칼칼했던 어머니의 성품은 꺼져가는 불씨처럼 스러지고 있었다. 나 어린 시절 어머니에겐 당찬 모습이 있었다. 어린마음에 그 모습이 자랑스러웠었다. 그렇게 언제까지나 한결같을 줄 알았는데 이제 어머니의 기력은 세월 속으로 우수수 빠져 나가고 있었다.

어머니 젊고 건강 하실 땐 철몰라 가슴 아프게 해 드렸다. 이제야 돌아보니 어머닌 슬 골도 시리다, 치아도 안 좋다 하신다. 가고 싶은 곳, 먹고 싶은 것 마음대로 할 수 없다 하시는 어머니! 많이 야위신 모습, 합죽해진 볼을 쳐다보다 왈칵 울음이 쏟아질 뻔 했다. 늙으면 비단금침도 소용없다며 한 살이라도 더 젊을 때 하고 싶은 것 하라는 말씀이 내 가슴에 쾅쾅 못질을 해댄다.

이제, 어머니 앞에 몇 번의 꽃이 피고 질런지. 꽃이 만발한 오월인데 으스스 한기가 찾아든다. 어머니들에게 자식이란 도대체 무얼까?

영원히 가시고기의 어린새끼일 뿐이다. 영원히.

04. 오월

**가시고기**: 가시고기의 암컷은 알을 낳은 뒤 얼마 있다가 생명을 다하고, 수컷은 혼자서 알을 보호 하느라 보금자리를 떠나지 않는다. 작은 새끼들이 알에서 깨어나 움직이면 새끼를 돌보느라 지친 수컷은 보금자리 근처에서 죽음을 맞이한다. 어린새끼들은 죽은 수컷의 살을 뜯어 먹으며 영양보충을 한다. 가시고기 보금자리 옆에는 수컷 가시고기의 뼈만 앙상하게 남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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