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대체 무엇이 이렇게 온 국민을 열광시키는 것일까. 무엇이 도대체 이렇게 온 국민을 하나로 묶는 것일까. 참으로 기이한 일 입니다.
나는 지난 14일 한국과 포르투갈전이 열린 인천 문학 경기장을 찾았습니다. 16강으로 가느냐, 아니면 탈락이냐 하는 절체절명의 승패도 관심이었지만 말로만 듣던 ‘붉은악마’를 직접 체험하고자 함이었습니다.
지하철과 국철, 다시 지하철을 갈아타면서 경기장에 도착한 것은 서울을 떠난 지 1시간 30분이 지난 뒤였습니다.
경기장 주변은 이미 ‘Be The Reds’라는 로고의 빨간 셔츠를 입은 수 천명의 ‘붉은악마’들이 각지에서 몰려와 집결하고 있었습니다. 대부분이 20, 30대였지만 10대들도 많이 보였습니다. ‘붉은악마’들은 미처 준비하지 못한 관중들에게 티셔츠를 그냥 나누어주었습니다.
그것을 하나 받아 입고 나도 ‘붉은악마’가 되었습니다. 그렇게 하지 않고서는 입장할 분위기가 아니었습니다. 경기장 주변은 귀를 찢는 흥겨운 음악소리가 뒤 엉켜 몇 시간 뒤 의 열광을 예고했습니다.
경기시작 3시간 전인 5시 30분 입장이 시작됐습니다. 수용인원 5만이라는 다 목적 경기장은 돛단배 모형을 테마로 했는데 그 엄청난 규모에 숨이 막혀 오는 듯 했습니다. 순간 가슴속에서 그 무엇이 솟구쳐 오르는 듯한 뜨거움을 느끼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아, 우리나라가 이렇게 많이 컸구나’하고 탄성이 새어 나왔습니다.
스탠드에 붉은 악마들이 줄지어 자리잡고 경기시간이 가까워 오면서 장내는 술렁이기 시작했고 경기장은 서서히 열기가 휩싸여 왔습니다. 조명등이 켜지자 경기장은 환상적으로 변했습니다.
‘붉은악마’들로 하여 입추의 여지없는 스탠드는 빨갛게 채색이 되고 여기 저기서 ‘대∼한민국!’ 소리가 들리기 시작하더니 갑자기 ‘와!∼’하는 함성이 메아리 칩니다. 몸을 풀기 위해 선수들이 그라운드로 나온 것입니다. 이때를 기다렸다는 듯 ‘붉은악마’ 들은 선수들의 이름을 연호하면서 열광하기 시작합니다.
경기시간이 임박해 오자 장내는 긴장감에 휩싸입니다. 과연, 결과는 어떻게 될까? 이길 수 있을까? 아니라면? 마음이 졸여 옵니다. 드디어 두 나라 선수들이 입장하고 간단한 의식이 끝나자 경기 개시 휘슬이 울립니다.
잔디 위에서 선수들이 체스놀이 하듯 일진일퇴를 거듭합니다. ‘붉은악마’ 들은 우리선수가 볼을 잡기만 하면 자리를 박차고 일어나 와! 와! 빨간 손수건을 흔들면서 함성을 내 지릅니다. ‘대∼한민국!’ ‘오, 필승 코리아!’ 소리가 거대한 함성이 되어 출렁이고 스탠드를 뒤덮은 대형 태극기가 물결치듯 넘실댑니다. ‘붉은악마’들은 1분이 멀다하고 자리를 박차고 일어나 발을 구르면서 열광합니다.
후반 25분 드디어 골이 터집니다. 이영표의 센터링을 받은 박지성이 절묘하게 황금의 골을 차 넣은 것입니다. 꿈이 현실이 되는 순간이었습니다.
경기장은 열광의 도가니로 뒤 덮였고 관중들은 서로 끌어안고 감격의 눈물을 흘립니다. 월드컵 축구 48년 만에 한국이 첫 골을 기록하는 극적인 순간, 얼마나 기다리고 기다렸던 순간이었습니까.
온통 환희의 도가니, 경기장이 활화산이 되어 용암을 내뿜는 그 시간은 지역도, 계층도, 연령도, 빈부도, 남녀도 없었습니다. 오직 하나 ‘대한민국’이 있을 뿐이었습니다. 감동의 90분 드라마를 끝내고 선수들이 그라운드에 나와 승리를 자축하는 세리머니를 펼치자 분위기는 절정에 달했습니다.
자정이 넘은 시간 서울로 돌아왔을 때 거리는 여전히 소란이라고 할 만큼 흥분이 계속되고 있었습니다. 태극기를 몇 개씩 꽂고 함성을 지르면서 경적을 울리고 굉음을 내며 질주하는 자동차들, 거리에서, 맥줏집에서, ‘대한민국!’을 연호하며 기쁨을 만끽하는 ‘붉은악마’ 와 직장인들. 그들은 마치 거사에 성공한 혁명군을 방불했습니다.
그라운드에서, 응원석에서, 거리에서, 광장에서, 그리고 가정에서 온 국민이 하나가 된 2002년 6월 14일의 감격은 그렇게 이어졌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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