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강산 마라톤에 스태프로 참가했다가 돌아온 4월3일 밤, 가로등도 없는 집 앞 골목 어귀가 어슴프레 환했다. 마당 넓은 집 담장 안에 목련이며 개나리가 망울져 피어나 머리 위를 비추고 있었기 때문이다. 집을 나서기 전 단단했던 꽃눈이 긴장을 풀고 환한 꽃으로 벌어진 것이다.

봄이 오는 속도를 재기 위해 밤새 꽃나무를 지켜도 꽃이 피는 것을 확인할 수는 없다. 졸린 눈을 비비며 창밖을 내다보면 어느새 환하게 핀 봄꽃을 만날 수 있을 뿐이다.

몇 년 전만 해도 금단의 땅이었던 북녘에 머물렀던 사흘 동안에도 민족의 봄이 그리 멀지 않음을 느낄 수 있었다. 아직 꽃이 피지는 않았지만 단단한 꽃눈은 분명 봄을 잉태하고 있었던 것이다.

군사분계선을 넘어 북쪽 땅으로 들어가는 초입에서 버스 위에 올라와 검문을 하는 북한군 장교의 매서운 눈초리는 맵찬 겨울이었다. 관광이 허용된 지역과 마을 사이에는 아직도 분단을 실감케 하는 철조망이 완고했다.

그렇지만 구룡연을 오르는 길에 만난 북한 안내원들은 부드러운 눈빛과 따뜻한 목소리로 관광객들을 맞았다. 어떤 안내원들은 카메라 촬영에도 아랑곳하지 않았다. 감자와 도루묵을 구워파는 아가씨들은 짓궂은 농담까지도 능수능란하게 받아넘겼다.

통일기원제 현장에 나온 환경감시원들은 독도문제와 북일 월드컵 예선 등 현안문제와 관련해 자신의 견해를 먼저 밝히며 우리의 생각을 확인하고 싶어했다. 반세기를 넘어선 분단과 이념의 벽이 그들의 모든 것을 눈에 설게 만들었을 뿐 남과 북은 반만년을 함께 살아온 한겨레였던 것이다.

전대협의 임수경대표가 통일축전에 참가한다며 평양을 방문하고 문규현신부, 고 문익환목사가 현행법을 어기며 방북했던 1980년대 후반만 하더라도 민족의 계절은 꽁꽁 언 겨울이었다. 그러나 1998년 6월 고 정주영 현대 명예회장이 소떼를 몰며 방북하고 2000년 6월 남북 정상이 평양에서 얼싸안는 순간 우리는 통일이 그렇게 꿈처럼 다가올 것임을 예감할 수 있었다.

낭만적으로 통일을 바라보는 시선에 대한 염려섞인 우려를 모르는 것은 아니다. 155마일 휴전선이 건재하고 금강산 가는 길에도 총검을 든 남북의 군인이 금방이라도 방아쇠를 당길 듯한 자세로 서로를 노려보고 있었다.

통일인 된 뒤에 감당해야 할 엄청난 통일비용을 우려하는 목소리도 있다. 하지만 통일비용을 영원히 안고갈 수도 있는 분단비용과 분단상황에 대한 심리적 부담, 이산의 아픔에다 견줄 수는 없을 것이다.

금강산의 한 자락, 관광특구 안에 머문 짧은 방북이었지만 통일에 대한 확신을 가지고 돌아오는 길은 행복했다. 이제 봄이 오는 속도를 재기 위해 밤새 꽃나무를 지키는 조바심으로 통일을 바라볼 필요는 없을 것 같다.

남과 북이 조금씩 닫아놓은 빗장을 풀고 마음과 마음으로 만나다 보면 시나브로 민족의 봄이 올 것이다. 어찌 보면 그렇게 자연스레 다가오는 통일이어야만 한다. 남북이 서로를 흡수하려는 하드랜딩이 아니라 소프트랜딩 방식이 되어야만 하는 것이다.  그렇게 보면 통일은 이미 시작됐다. 통일이여 부디 봄꽃처럼 오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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