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런데 기자의 칼럼에 대해 네티즌이 띄운 글은 예의가 차려지지 않은채 첫 문장부터 호전적이었다. 기자는 글은, 특히 자기와 생각이 다른 사람을 설득하려는 글은 가능한한 감정이 배제된 이성적이고 논리적인 것이어야 설득력을 확보할 수 있는 것이라는 주장을 이 자리에서 펼 생각은 없다. 이런 의견조차도 자유로이 존재해야 백화제방의 민주주의가 생명력을 갖는다는 신념때문이다.
어쨌거나 그 네티즌이 ‘충청리뷰 왜 이러나’라는 제목으로 띄운 글은 제목이 시사하는 것처럼 신랄했다.
그가 이 글을 통해 하고 싶어한 말은 분명해 보였다. 노사관계를 바라보는 기자의 기본 시각이 경영자 편에 경도돼 있는 것 아니냐는 것이다. 기자가 기업의 시각에서 노동운동을 매도하고 있다고 ‘매도’하고 싶었던 듯 했다. 더구나 그가 자기 글에 스스로 붙인 타이틀은 진보적 언론의 대명사로 알려진 충청리뷰가 언제 자본논리의 전파자가 됐느냐는 점을 통박하고 싶은 것 같았다.
그런 기자가 얼마전에는 특정기업으로부터 “너무 하는 것 아니냐” “다른 기자는 가만 있는데 왜 당신만 우리회사 기사를 계속 쓰느냐”는 반읍소형 항변때문에 한동안 번민에 빠졌다. 월드텔레콤을 둘러싸고 제기되는 부당노동행위 논란과 회사 대표이사의 잇딴 뇌물공여 사건으로 촉발된 도덕성 시비 문제를 충청리뷰만 홀로, 그것도 비판적으로 보도한 데 대해 하소연을 해 온 것이다. 사실 기자도 그 기업이 뛰어난 기술력으로 고부가가치 제품을 생산하는 보기드문 첨단회사라는 점에서 내심 부담감이 없던 건 아니었다. 그러나 사회의 규칙을 지키지 않는 기업인에게까지 너그럽게 면죄부를 줄 수만은 없다는 게 기자의 생각이기도 했다.
기업도 법인격을 갖춘 사회의 구성원인 이상 사회가 합의한 공동체적 가치를 존중하고 이행해야 하는 건 너무 당연하다는 것이 기자의 신념인 때문이다. 훌륭한 기업, 존경받는 기업의 평판은 건전한 기업가 정신과 윤리가 없이 기술력만으론 얻어지지 않는다.
어느 편에도 기울지 않고 사회를 냉철히 관찰해야 하는 동시대의 옵서버 -관측자- 로서 진실 추구를 위해 끊임없는 지성적 회의(懷疑)를 해야 하는 것이 기자의 숙명이라면 기자는 이를 회피할 생각이 없다.
충청리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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