봄은 바람과 함께 다가온다.
실개천의 얇게언 얼음속으로 졸졸졸 흐르는 물소리. 나뭇가지에 물오르는 소리, 쑥,냉이,봄꽃들 새싹돋는소리, 겨우네 텅빈 놀이터에 아이들이 모여 왁자지껄 떠드는 소리는 봄바람과 함께 나른하면서도 기분 좋게 들려온다. 물러가는 동장군 등뒤로 따스한 햇볕이 움츠려 있던 대지와 식물들을 물오르게 하고 세상을 윤택하게 만들어 가고 있다.

이른봄의 햇볕은 아낙의 고운 피부를 검게 그을리게도 하지만 식물들에게는 더없이 좋은 성장의 영양분이 된다. 줄기는 곧고 튼튼하게 하며 수확을 예비한 꽃망울을 돋아나게 하는 봄볕. 사람들이 느끼지 못하는 사이에 꽃은 피어나고 날씨가 따듯해지면서 하늘에는 구름의 양도 늘어나고 거리를 다니는 사람들의 옷차림도 눈에 뜨일정도로 밝아졌다.

겨울이 춥고 길수록 봄은 화사하고 향기롭다고 한다. 봄은 또한 기다릴때가 좋을지 모르겠다. 사랑하는 사람을 기다리듯 설레임 속에서 어서 만나기를 기다리는시간, 봄기운을 피부로 시각으로 느낄수 있을때는 이미 기다림의 다리를 건너선 뒤일것이다.

봄볕이 따스한 오후에 아파트앞 정원을 걷다보니 매화나무 가지마다 금방이라도 터질 듯 꽃망울이 촘촘히 맺혀 봄볕에 반짝거리며 빛나고 있고, 옆에 서 있는 산수유도 노란 꽃망울을 가득 매달고 있다. 왕겨로 덮어둔 화단에는 상사화 새싹들이 얼굴을 내밀며 세상구경을 시작한다. 아직 묻어있는 흙조차 털어내지 못했지만 얼굴에는 벌써부터 초록미소가 가득하다. 우리가 추위에 움츠려 있는동안 그들은 잠자던 나뭇가지와 땅속에서 경이의 생명을 꽃피우려 산고를 치르고 있었던 것이다.

며칠후면 눈송이 같은 매화가 만발해 바람이라도 불어오면 꽃잎은 눈처럼 흐날리며 노란 산수화와 함께 꽃향기는 온 동네를 가득 채울 것이다. 초여름이 되면 하얀 매화 꽃은 새파란 매실을, 산수유는 갓난아기 손가락 같은 열매가 조롱조롱 맺혀 지나는 사람들의 발길을 멈추게 하리라.

나는 문득 푸른하늘을 올려다본다. 봄이 오는 길목에 서서 이렇게 감상적일수 있었던 것이 언제였던가. 인생자체는 결코 순간이 아닌 충분히 느끼며 생각할수 있는 여유로움이 있어야 하건만 삶의 무게에 눌려 계절의 오고감도 외면한체 살아온 시간들이 가슴을 시리게 한다. 나는 벤취에 앉아 잠시 눈을감고 유년의 뜰을 거닐어본다.
단발머리에 해맑게 웃는 아이들이 들로 산으로 지칠줄을 모르고 뛰어다니며 바람몰이를 한다. 어느날은 새파랗게 웃자란 보리밭 사이로 다니며 냉이도 캐고 밭뚝에 지천으로 자라는 쑥도 뜯고, 햇볕 따스한 날은 간이 베어 툭툭 불거져 구멍난 양은그릇을 들고 맑은 물이 찰랑찰랑 고여있는 논에서 우렁이를 하나가득 잡아오기도 했었다. 어머니가 끓여주던 냉이 된장국과 우렁 된장 찌게는 생각만 해도 입안에 침이 고여오고, 들판에서 불어오던 상큼하고 달짝지근한 봄 냄새와 바람에 잔잔하게 물결치던 논물이 종아리를 간지럽히던 기억은 지금도 아련하다.

이제 머지 않아 개나리가 피고 진달래꽃들도 피여 원색의 채색화가 펼쳐질것이다. 새소리는 더욱 청아하게 들릴것이고 춘광은 더욱 눈부시게 빛나리라. 가슴 포근한 봄날의 훈풍이 움츠렸던 거리의 겨울잔상을 녹이듯 화창한날, 봄의 생명력과 괘활함이 싱싱한 젊음을 보는 것 같이 마음이 설레여온다.

지천명을 훌쩍 넘어서 맞이한 이 봄날에 나는 꿈이라는 씨앗을 정성스레 심어 싹을 틔우고 매화꽃이 만발하면 꽃그늘에 서서 지조의 삶도 다짐하리라.

저작권자 © 충북인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