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납부의무 공유한다’ ‘채무 승계 말도 안돼’ 설왕설래
국민건강보험공단이 지역가입자의 보험료 체납분에 대해 직장으로 옮긴 세대원들에게 일괄 부과해 직장가입자들이 반발하고 있다.
특히 체납 세대원이었다가 직장으로 옮긴 가입자들에 대해 보험료 납부 고지나 독촉 없이 압류예고를 하고 있어 지나친 처사라는 불만을 사고 있다.
지난해 까지 농촌지역 지역보험에 가입 했던 문모씨(27)는 지난 2월 대학을 졸업한 뒤 직장에 취직했다. 부모님 밑에서 세대원으로 가입했던 건강보험도 당연히 지역에서 직장가입자로 전환됐고 문씨의 급여에서 공제해 보험료를 납부하고 있다.
그런데 지난 9월 문씨의 직장으로 국민건강보험공단으로부터 급여 압류 예고장이 배달돼 왔다. 문씨의 아버지가 14개월 분 건강보험료와 가산금을 합해 41만원을 체납했다며 이를 20일 뒤까지 납부하지 않을 경우 건강보험 적용이 정지됨은 물론 문씨의 급여까지 압류하겠다는 것이었다.
주민등록상 주소만 부모님 집에 두고 서울에서 학교를 다녔던 문씨로서는 보험료 체납 사실을 알지 못했을 뿐 더러 지금껏 아무런 통지 없이 갑자기 급여를 압류하겠다고 하는 공단측의 처사가 도저히 이해할 수 없었으나 급여가 압류될 경우 직장내에서 불이익을 당할 것을 우려 울며 겨자먹기로 납부했다.
“아버님이 농사일이 제대로 안 돼 한 두달 미루다 보니 체납하게 됐다고 하셨다. 물론 자식으로서 당연히 부모님이 내지 못한 보헙료를 납부 할 수 있는 일이지만 한번도 납부고지나 독촉 없이 급여를 압류하겠다는 데에는 화가 치밀었다”고 말했다.
문씨 만이 이러한 경우를 당한 것이 아니다. 박모씨(32)는 문씨 보다 더욱 황당한 일을 겪었다.
박씨는 97년 대학을 졸업 한 뒤 직장생활을 하다 99년 IMF로 인해 회사가 부도가 나자 다시 부모님 세대의 지역가입자로 건강보험에 편입된 뒤 지난해 9월 재취업이 돼 현재 직장보험에 가입돼 있다. 그런데 건강보험 공단은 박씨의 아버지가 96년부터 지금껏 50여개월에 거쳐 보험료를 체납해 왔으며 이를 아들인 박씨가 대신 갚지 않으면 급여를 압류하겠다는 것이었다.
그러나 부모님이 체납한 기간중 박씨가 지역보험에 가입한 것은 20개월에 불과해 50여개월분을 모두 납부하기는 억울하다고 생각한 박씨는 공단측에 사실 확인을 했고 공단측은 그제서야 박씨가 가입됐던 20개월 분만 납부하면 된다는 답을 해왔다.
박씨는 “보험료 고지서에 분명히 납부 의무자가 세대주로 명시돼 있다. 그러나 이를 체납했다고 해서 5년전 까지 들춰 직장에 다니는 자녀에게 급여 압류 운운하며 부과하는 것은 이해할 수 없으며 채무승계와 다름없다”고 말했다.
그러나 국민건강보험공단에서는 이같은 부과에 대해 아무런 문제가 없다는 입장이다.
공단측은 그 근거로 ‘국민건강보험법’을 들고 있다. 현행 국민건강보험법 제68조(보험료의 납부의무) 2항에는 ‘지역가입자의 보혐료는 그 가입자가 속한 세대의 지역 가입자 전원이 연대하여 납부한다. 이 경우 가입자 1인에게 행한 고지 또는 독촉은 당해 세대의 지역가입자 모두에게 효력이 있는 것으로 본다’고 명시하고 있다.
지역가입자 세대원이 10명이고 세대주에 대해 10차례 보험료 납부를 고지 또는 독촉 했다면 배우자는 물론 자녀 무두에게 10차례 고지한 것으로 본다는 것이다.
문씨와 박씨 모두 자신에게는 고지나 독촉 없이 압류 예고장이 날아 왔지만 그동안 이들의 부모에게 수차례 독촉한 만큼 문씨와 박씨에도 효력이 적용되며 체납분 부과는 물론 압류예고도 정당하다.
이같이 건강보험공단이 직장보험으로 편입한 지역 체납자 자녀에게 까지 압류를 내세우며 보험료 징수에 나서고 있는 것은 지역·직장 통합과 의약분업으로 인해 공단의 지출이 크게 늘어나 적자에 시달리기 때문이라는 분석이다.
국민건강보험공단 청주청원지사 관계자는 “의약분업 이전 병·의원에 지급되던 보험액이 한달에 7000∼8000억원에 불과하던 것이 의약분업 이후 1조4000억원 이상으로 크게 증가했다. 그러나 보험 가입자들의 납부액은 90%선에도 미치지 못해 부족한 금액을 은행에서 차입해 지급하고 있는 실정”이라고 밝혔다.
이 관계자는 또 “법에 의해 체납자 재산에 대한 압류나 경매까지도 실시하고 있으며 지역에서 직장으로 편입된 가입자라 하더라도 지역가입시 체납된 금액은 세대원이라면 누구나 납부해야 한다. 다소 불만이 있는 것은 사실이나 법이 허용하는 한 최대한 징수하기 위해 노력한다”고 덧붙였다.
실제 공단 청주청원지사에서 문씨와 박씨 경우와 같이 직장가입자에게 세대주의 체납분을 징수한 경우가 올 초만해도 한달에 40∼50건에 달했으며 10월을 전후해 체납분이 상당수 해소되고 있는 것으로 전해지고 있다.
그러나 법이 허용한다 하더라도 5∼6년 전 체납분 까지 취직한 자녀에게 부과하는 등 공단의 징수 방법에 문제가 있다는 지적이다.
한 가입자는 “건강보험 공단은 법에 명시돼 있다는 말로 모든 것을 정당화 하고 있지만 그렇다면 몇 년 이상 길게는 10년 동안이나 체납한 가입자가 있는데 공단은 그동안 뭘 했는가. 직무유기라고 밖에 볼 수 없다. 건강보험이 별 문제가 없을 때에는 안일하게 대처하다가 적자가 발생하고 여론의 지탄을 받자 발등에 불이 떨어진 양 허둥대는 것이다. 법만을 강조할 것이 아니라 국민들에게 충분히 홍보하고 이해시키는 작업을 먼저 해야 할 것”이라고 꼬집었다.

건강보험 공단 직원
체납 징수 독촉에 시름

국민건강보험이 적자에 시달리고 이에 대한 책임의 소재를 놓고 정치권에서 조차 설전이 벌어지는 등 보험료 징수 업무를 담당하고 있는 직원들의 자리는 그야말로 바늘 방석 이다.
감사 등을 통해 체납자에 대한 관리를 일일이 점검하고 있으며 재산이 확인된 경우 압류나 경매 등의 조치를 취하지 않으면 징계 까지도 각오해야 하는 상황이다.
과거와 달리 지역보험 체납자들의 자녀가 취직해 직장보험으로 편입될 경우 어김없이 징수절차에 들어가고 있는 것도 이러한 공단 내 분위기를 반영하고 있는 것이다.
징수업무를 맡고 있다는 한 직원은 “세대 가입자 1인에게 행한 고지는 모든 세대원들에게 같은 효력을 갖는다는 조항에 대해 참 편리한 법이라며 비아냥 대거나 심할 경우 욕설 까지 퍼붓는 사람도 있다. 물론 그 개인의 입장은 충분히 이해 한다. 납부 고지서나 안내문 등을 통해 납부를 유도하는 것이 합리적일 것”이라며 “그러나 체납분 해소에 시달리는 일선 직원 입장으로서는 그럴 여유가 없다. 위에서는 한마디로 법대로 하라는 식이다. 압류나 경매 등에 소홀할 경우 호된 질책과 함께 징계 까지도 각오해야 한다”고 전했다.
이 직원은 지난 10월에 실시된 감사를 예로 들며 “감사가 일일이 체납자 관리 대장과 처분 내역까지 확인하며 지적하기도 했다. 이런 마당에 융통성을 발휘하기란 여간 어려운 것이 아니다”며 고충을 털어 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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