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이사 셉티모(Leisa Septimo) 그녀는 필리핀인 이었다. 지난 95년 스물 여덟 살의 라이사가 신랑을 찾아 대한민국 김포공항에 내린지 7년, 이제 그녀는 이미순(35)이라는 한국의 ‘아줌마’로 황홀한 변신을 했다.
아울러 필리핀 아이들을 가르치던 초등학교 교사에서 한국의 유치원생을 가르치는 유치원 선생님으로 바뀌었다.
라이사가 한국을 알게 된 것은 ‘통일교’라는 종교를 통해서다. 그 종교적 인연이 필리핀에서 태어나 한국인으로 살게 하고 한국 땅에 뼈를 묻어야 하는 인생의 전환점이 될 줄 어찌 알았으랴. 9남매(6남 3녀)의 셋째로 태어난 그녀는 대가족에도 불구하고 아버지가 미국과 목재 무역상을 했기 때문에 쪼들리지 않는 상대적으로 넉넉한 가정에서 생활했다. 그러나 고등학교 시절 한 선생님으로부터 통일교를 접한 이후 그녀의 인생은 달라지기 시작했다. ‘민다나오 대학’에서 수학을 전공한 그녀는 초등학교 교사 생활을 시작했지만 종교적인 마음에 더 이끌려 1년만에 그만두고 종교 활동에 관여하게 된다.
마닐라를 오가며 교육을 받으면서 한국행을 결심, 드디어 95년 10월 낯선 한국 땅을 밟게 된다. 김포공항에서 현재 남편(40)을 처음 만나 7개월여의 교제 끝에 결혼하여 청주 시댁에서 신혼살림을 시작했다.

매서운 한국의 맏며느리 체험

남편은 맏아들이었다. 그때까지 그녀가 살아온 필리핀의 사회 문화적 관점으로 볼 때야 맏아들이라고 특별한 책임이 있을리 없다. 그렇지만 한국의 문화는 어떤가. 외국인이 맛본 맏며느리의 시댁살이가 궁금하지 않을 수 없었다.
먼저 말이 통하지 않아 가장 힘들었다고 말한다. 당연한 얘기다. 문제는 문화적 차이에서 오는 갈등이었다. 예를 들자면 우리나라는 청소를 할 때 걸레로 방바닥을 박박 문질러야 제대로 하는 것으로 친다. 그런데 필리핀에서는 빗자루 같은 것으로 대충(?) 쓸어내는 것이 일상적인 청소다. 그러니 그렇게 청소를 하고 있는 며느리를 보아야 했을 시어머니가 성에 찻을 리 만무했고 그녀는 힘들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청소, 요리 등 문화적 행동 양식이 달라서 오는 부적응에다 한국적인 고부(姑婦)간 역할 및 이해도 힘들었던 것이다.
“시어머니와 2년간 같이 살았는데 너무 힘들었다”는게 그녀의 솔직한 토로였다. 적응의 어려움은 ‘한국의 추위’ 때문에 더 혹독하게 느껴졌던 것 같았다. 필리핀은 연중 편균 기온이 섭씨 27도를 보이는 열대 지방이다. 인터뷰 내내 추위를 얘기할 때면 온 몸이 움추러드는 그녀를 볼 수 있을 만큼 추위로 인해 겪은 고생의 감도를 느끼게 했다.
그녀의 추위에 대한 공포는 시골집 시댁에서 나와 남편 회사의 사택으로 분가를 하게되는 계기가 되기도 했다.
그러나 한국적 가족애와 효(孝)에 대해 느끼는 감정을 묻자 한국적 정서에 묻어있던 7년 세월의 더께를 감지할 수 있었다.
아직 어설픈 우리말이었지만 그녀는 “아버님이 아프면 맏며느리인 제가 먼저 달려가야 하고..... 필리핀에서는 형제들이 똑같이 책임과 역할을 하는데 여기서는 장남 한 사람한테 많은 것을 기대해서 참 어려워요.”라고 말했다. 하지만 유교적 풍속에 대해 많은 부분을 받아들이며 이해하고 있었다.

“시어머니는 시어머니”

고부간 갈등에 대해 느끼고 있는지를 물었다. 대답은 예상외로 간단하면서도 정곡을 찔렀다.
“어찌되었든 시어머니는 시어머니예요. TV를 봐도 그렇고 시어머니들은 다들 수다(잔소리를 의미하는 것 같았다)를 떨잖아요.” 그러면서 그녀는 ‘자기 시어머니는 예외’임을 강조했다.
한국인에 대한 인상을 묻자 “어디서든 좋은 사람도 있고 나쁜 사람도 있게 마련”이라는 말로 대신했다. 다만, “왜 그래!”하는 식으로 말을 과격하고 빠르게 한다고 지적한다. 속 마음이야 안 그렇겠지만 상대에게 상처를 준다는 것이다.
그녀는 지난 1월부터 청주시 흥덕구 신봉동 나이팅게일 유치원 교사로서 영어를 가르친다. 이 유치원 원장 김은희씨는 “라이사 선생은 인정도 많고 실력도 있는 교사”라며 “열심히 살려고 노력하는 모습이 아름답다”고 거들었다.
매워서 먹기에 고생스럽던 김치와 된장국도 잘 먹고 남편을 위해 열심히 준비한다는 그녀는 치솟기만하는 물가가 걱정스러운 평범한 한국의 아줌마였다. 아직 친정 필리핀을 방문하지 못해 친정부모를 보고 싶은 마음을 전화 통화로 대신하고 있지만 얼마전 남동생이 한국에 와 여간 기쁜게 아니다. 하루 빨리 친정부모도 초청하고 싶다.
각자 너무 바빠서 남편과 많은 대화를 할 시간도 부족하다는 그녀는 행복을 더 소중히 키워갈 수 있도록 열심히 살아가고 있다며 사랑하는 남편이 여기 있으니 영원히 한국에 살 것이고 뼈를 묻게 될 것이라며 씽끗 웃어 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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