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게 '무대'는 신비롭고 특별한 공간이다. 누군가에게 감동을 주기 위해 만들어졌지만 동시에 깊은 감동을 받는 곳. 공연자와 관객 간에 호흡을 긴밀히 느낄 수 있는 장소. 보잘것없는 '나'를 이 순간 가장 특별하게 만들어 주는 곳. 아마추어 공연인으로 산 10년이라는 짧지 않은 시간 동안 나는 다양한 장르의 무대를 경험하며 예술에 대한 갈망을 충족했다. '지금쯤이면 무대의 소중함을 더 여유롭고 노련한 마음으로 느낄 수 있을 것 같다'라고 느낄 즈음, 갑자기 나의 오만을 무너뜨린 일이 발생했다. 어느 날 세상을 덮친 역병은 사람 간에 이어진 모든 접촉을 차단하고, 한 공간에 있는 순간을 전부 죄악시하게 했다. 무대 예술인들의 생계가 위협받는 매일을 보낸 지 1년이 넘어갔으니, 나 같은 아마추어에게 무대의 기회가 오는 것은 하늘의 별 따기와도 같았다. 가뜩이나 삭막한 삶이 더 버석버석해지는 것 같았다.

그래서 이번 공연은 더욱 소중했다. 남은 날짜가 30일도 채 되지 않은 상황에서 확정된 우리의 공연은 다신 없을 기회라는 이름으로 나를 혹독하게 단련시켰다. 매번 더 강하게 느끼는 감정이지만, 무대에 올라가는 사람에게는 특별한 책임감이 필요하다. 공연자가 아마추어라는 이유로 형편없는 무대를 곱게 봐줘야만 하는 관객은 없기 때문이다. 한 사람 한 사람의 관객이 공연을 보며 들일 소중한 시간을 더욱 감사히 여기며, 프로의 실력을 보여줄 수 없는 내가 관객에게 보여줄 수 있는 감동은 오직 '노력'뿐이기에, 그러니 나는 준비 기간 내내 무대에서 내가 느낄 행복 이상의 가혹함을 스스로 부여했다. 공연일은 최근 교통사고로 주저앉은 내 허리가 나을 시간을 기다려주지 않고 무섭게 다가왔다. 매일 흘리는 땀방울이 많아졌다.

공연 당일, 새벽 다섯 시에 일어나 부지런히 아침을 먹었다. 배부른 상태로는 뛸 수 없고 그렇다고 배고프면 힘이 없으니 미리 에너지를 비축해두어야 한다. 리허설 전엔 모두의 분장이 끝나야 하니 서둘러 분장을 마쳤다. 워밍업을 시작했다. 부상 방지를 위해 리허설 전에도 몸은 따끈하게 풀려있어야 한다. 공연 전 세 시간 동안은 계속해서 땀 흘리는 몸 상태로 만들어야 한다. 그렇다고 너무 심하게 몸을 풀면 막상 무대에서 힘이 빠질 수도 있으니, 적당한 완급조절은 필수다. 팽팽하게 긴장의 끈을 당기고 끊어질락 말락 한 상태로 몇 시간을 버텼다. 그리고, 무대 위에서 활시위를 당겼다. 관객과 나의 호흡을 완전하게 이을 수 있도록.

그런데 없었다! 내가 당긴 끈을 받아줄 강렬한 눈빛들로 가득 차 있어야 했던 관객석은 텅 비어있었다. 우리를 비추는 건 하얀 조명과 카메라의 빨간 불빛뿐. 코로나 환자의 수가 급격히 늘며 온라인 상영으로 결정된 우리의 공연이었다. 처음으로 관객 없는 무대에 올라왔다는 사실이 무섭게 다가왔다. 무대 위로 생생하게 느껴지던 관객의 숨소리는 오직 나의 상상에만 존재했다. 관객의 시선이 강제로 당겨주는 것 같던, 무대 위에서만 느낄 수 있는 특별한 풀업(Pull-up)도 당연히 없었다. 고독했다. 무대 위엔 오직 몸에 새겨온 훈련만이 남았다. 긴장의 끈이 바닥에 흐물흐물 늘어져 버릴 것 같았다.

무대의 짜릿함이 주춤하며 뒷걸음을 칠 것 같던 그 순간, "그저 춤추라"던 속삭임을 떠올렸다. 카메라 너머 있을 관객들에게 무대의 열정을 전달하려면 다시 긴장의 끈을 잡아당겨야 했다. 춤췄다. 남은 힘을 바닥까지 긁어다 무대 위로 올려 관객을 그리워하는 내 마음을, 미처 전에 상상하지 못했던 고독감을 메웠다. 영원 같은 4분이 흘렀다. 빈 관객석을 향해 커튼콜 인사를 하는데 눈물이 났다. 마스크로 반 넘게 가린 표정이 카메라 너머까지 닿을 것 같지는 않았다. 서로 호흡을 나누던 일상이 얼마나 소중한지를 그토록 그리워했던 관객석 앞에서, 가장 고독했던 그 무대에서 느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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